결혼을 하고 1년 동안 15kg가 늘었다. 더는 안 되겠다 싶어 5개월을 노력해 10kg를 빼냈다. 증가도 감량도 다 내가 해낸 것들이라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고 있다.
10kg 감량에는 당연히 운동과 식단이 병행됐다. 5개월간 퇴근하고 주 2회에서 3회간 피티를 받으며 난생처음으로 운동의 순기능을 체감했다. 자신감이 잔뜩 붙어서 별안간 면허를 따기도 했으니.
무엇보다, 힘든 에피소드를 땀과 함께 흘려보내며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을 받았다. 어떠한 걱정거리도 운동을 하는 순간에는 생각나지 않았다. 그건 걱정을 못 멈추는 인간에게는 큰 변화였다. 운동이 끝나면 상쾌한 기분이 들고 뭐든 해낼 수 있을 것 같은 긍정적인 마음이 드는 게 너무 좋았다. 아 이래서 사람들이 운동을 하는구나 싶었다.
하던 운동을 계속하고 싶었지만 PT는 가격이 부담되어 꾸준히 하기에는 무리였다. 한 달 정도 운동을 쉬면서 뭘 해야 오랫동안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복싱을 배워보기로 했다.
#상담
퇴근 후 동네 복싱장을 찾아갔다.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무언가를 바삐 하고 있었다. 근데 각자 하는 게 다 달라. 뭐지 이 분위기! 낯설다. 관장님은 내게 이런 종류의 운동을 해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아니요! 피티는 5개월 정도 하긴 했는데…땀이 유난히 많이 나는 체질이라 걱정이라고 했더니 그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 어쩔 수 없는 거군요. 생각지도 못한 답변에 당황. 그때 누군가 운동을 마치고 복싱장을 나섰고 관장님이 크게 뭐라뭐라 외쳤다. 아이고 깜짝이야. 대사는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대충 잘가라는 인사 같았다. 낯설다 낯설어. 커리큘럼이 어떻게 되는지 물어보고 샤워실도 살펴보고 1개월만 등록을 했다. 그래 일단 한 달만 해보자.
#복싱 1일차
어느 금요일 퇴근 후. 다시 한번 쭈뼛거리며 복싱장에 들어섰다. 입구부터 들리는 관장님 목소리에 다시 한번 위축됐다. 아이고 깜짝아. 목소리가 참 크시다. 상담 왔을 때도 느꼈지만 복싱장은 더웠다. 많은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운동을 하고 있다. 공기부터 다르다. 띵띵 울리는 복싱벨도 낯설게만 느껴졌다.
챙겨 온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뻘쭘하게 탈의실에서 나오자 관장님이 다가와서는 복싱은 1라운드가 3분이라고 했다. 벨이 울리면 3분 동안 줄넘기를 시작하고, 다시 띵띵 울리면 30초 쉬고, 또 울리면 3분 뛰고, 그렇게 3세트를 하면 된다고.
스트레칭으로 가볍게 몸을 풀고 언제 해봤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줄넘기를 시작했다. 30초 만에 발이 걸렸다. 30초만 했는데 왜 힘들지? 생각하며 다시 뛰는데 관장님이 다시 나타나서는 가볍게 뛰세요~했다. 그건 어떻게 하는거죠ㅎㅎㅎ? 라고 되묻자 거울 아래쪽을 가리키며 시선은 여기를 보고 무게는 뒤가 아니라 앞으로 주면서 가볍게 뛰어보라고 했다. 엉망이었다. 관장님은 하하 웃으며 하다 보면 본인이 알게 돼요! 하며 사라지셨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그냥 모든 게 쑥스럽고 웃겼다.
몇 번을 걸리고 다시 뛰고 하다 보니 산발이 됐다. 피티 할 땐 묶은 머리가 풀어지는 일은 없었는데, 복싱은 다르구나. 계속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이 거슬렸다. 결국 집에서 쉴 때처럼 정수리에 상투를 틀고 뛰었다. 와 밖에서 이런 모습으로 있어본 적 처음이다. 근데 창피한 거 모르겠고 벌써 힘들다.
관장님이 다시 와서 몇 세트를 했냐고 물었다. 모르겠는데요ㅠ 하며 웃자 원래 모르면 0번이라며 1세트만 더 하라고 했다. 아악 다음부터는 기필코 잘 세리라. 뛰는 모습을 지켜보던 관장님이 아까보다 많이 가벼워졌다면서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늘 거라고 했다. 오오 신기해라.
줄넘기를 완료한 후 워밍업 운동? 체력단련? 암튼 그걸 했다. 총 5개가 있고 매주 바뀌는 식이다. 관장님이 4키로짜리 케틀벨을 건네주시길래 '피티 하면서 15키로도 들었는데 4키로는 할만하겠군 후후'라고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여기는 '싱글 레그 데드리프트'였다. 한쪽 다리를 들고 내려가야 하니 죽을 맛이었다. 와 복싱 장난 아니네. 체력 얼마나 필요한 거야 대체.
그 외에도 슬로우버피, 런지 니킥 등 5개의 근력운동을 30개씩 3세트 하라는 미션을 주고 떠나신 관장님. 혼자서 하나씩 쳐내다 보니 상담 때 본 각개전투 회원들이 생각났다. 이래서 각자 바빴구나. 근력운동을 마치자 이미 땀으로 샤워한 상태였다. 와 이제 그만해도 될 것 같은데. 관장님이 이제 가장 힘든 게 남았는데 할 수 있겠냐고 물었다. 죽을 거 같은데요. 근데 해볼게요! 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관장님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웃었다.
복싱 기본 스텝은 다리를 어깨너비만큼 한 후 11자로 가볍게 뛰는 거다. 그래서 줄넘기를 하는 거였군…띵띵 벨이 울리고 관장님이랑 거울 앞에서 스텝 연습을 했다. 예상대로 11자를 유지하면서 3분간 뛰는 건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줄넘기 줄이 없으니 한 결 낫긴 했지만. 11자가 어느 정도 유지되면 좌우로 1센티씩 움직여가며 뛰기도 했다. 거울 속 내 모습이 웃겨서 자꾸만 웃음이 났다.
3분이 지나고 띵띵 벨이 울렸다. 2세트까진 어찌어찌했는데 3번째가 되자 못할 것 같았다. 아악!!! 고성을 지르며 멈추려고 하자 관장님이 안 돼!!!!! 계속해!!!!! 하면서 내 팔을 가볍게 툭툭 쳤다. 정말이지 관장님은 목청이 좋다. 귀가 떨어져 나갈 뻔.
웃음이 나자 자세가 흐트러졌다. 관장님은 집중해엨!!!! 하면서 고함을 치셨다. 큭큭 자꾸만 웃음이 났다. 관장님은 재미있으신 분 같았다. 40초 남았어!!!!!! 하는데 아니 40초가 왜 이렇게 길어요. 5초가 5분 같아. 거울 속에 나를 째려보며 죽기 살기로 뛰었다. 관장님은 지금 눈빛 좋다며 칭찬을 해주셨다. 그리고는 마지막 3분 끝.....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애플워치로 심박수를 보니 180이었다. 헉헉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시계를 봤는데 체육관에 들어온 지 1시간 30분이 지나있었다. 뭐야 여기 대체. 관장님은 마지막으로 노래 두 곡이 바뀔 때까지 스텝퍼를 타며 종아리를 풀어주고 가면 된다고 했다. 오늘은 첫날이라 마무리 줄넘기를 안 하는 거지만 원래는 줄넘기 3세트가 마무리라는 말과 함께....
끝나고 탈의실에서 거울을 보는데 혼이 쏙 빠져있었다. 뭐야 이런 운동 처음해봐.....속옷이랑 마스크는 물에 담갔다 뺀 수준이었고 사지가 후들거렸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짜릿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고 내린 것 마냥 이상한 쾌감이 들었다. 복싱은 뭘까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