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거나 나쁜 동재>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느그 동재, 우리 동재가 돌아왔다. <비밀의 숲>에서 각종 밈을 만들어 내며, 인기 아닌 인기를 끌었던 빌런 서동재가 스핀오프 <좋거나 나쁜 동재>로 찾아왔다. 1,2화에 그치는 단발성 스핀오프가 아닌 10화로 구성된 본격 스핀오프 드라마는 한국 드라마에선 처음 선보이는 시도로 기대를 끌었다. 무엇보다 동재 아닌가! 어디에나 있고 어디에도 없는 동재! 주인공도 아니면서 주인공이 되어버린 동재!
<비밀의 숲>의 스폰서 검사, 서동재가 인기에 힘입어 주인공으로 돌아온다 했을 때, 많은 이들이 박수를 치면서도(서동재 역을 맡았던 이준혁 배우의 매력이 크다), 우려했던 건 미화였다. 검사라는 직업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도 있겠지만, 이 글에선 서동재의 캐릭터에 주목하고자 한다. 무엇보다 <좋거나 나쁜 동재>에서의 검사는 그리 정의로워 보이지도 유난스레 매력적으로 보이지도 않는다. 빌런의 입을 빌려서라도 그들에 대한 비판 역시 잊지 않는다. 한낱 인간에 불과하다고. 그러니 직업보다는 인간적 관점에서 접근해보려 한다. 동재에 대한 우려로 돌아가보면, 명백하게 나쁜 검사였던 서동재가 좋은 검사로 보이는 건 아닐까. 그렇게 결국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하는 범죄를 감싸주는 건 아닐까, 일단 한 발 물러서게 된다. 동재야 말로 나쁜 놈이긴 나쁜 놈인데 또 얼굴을 보면 이해가 되고 마는 그런 놈 아니었던가!
<좋거나 나쁜 동재>가 회를 거듭하며 우려는 현실이 되는 것처럼 보였다.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가 없는 동재. 머리 하나는 기가 막히게 빨리 돌아가는 동재. 위기는 반드시 빠져나가는 동재. 살인범에게 파묻힐 상황에서도 살아 돌아오는 동재.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가는 동재. 많은 시청자들이 외쳤다. “우리 동재 대검 가게 해주세요!” “이만하면 대검 가도 될 듯!” 어쩐지 짠하고, 어쩐지 변한 듯한 동재를 기어코 응원하고 만다.
현재의 동재는 일단 좋은 놈으로 보인다. 하지만 과거의 동재는 명백히 나쁜 놈이다. 그렇게 과거는 떼려야 뗄 수 없다는 듯 동재가 무슨 일을 해도 따라붙는다. 이미 받았던 뇌물은 국고 환수 되었고, 청주 지검으로 좌천도 되었고, 승진은 매번 미끄러지고, 기억조차 못하는 과거의 잘못에 발목을 잡힌다. 모범 검사로 뽑힌 후에도 결국 과거의 잘못이 드러나며 취소되고 만다. 그 이후에도 동재는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검사로서 본분을 다하기 위해 직무 정지가 되었음에도 후배 검사를 도와 사건 해결을 돕는다. 결국 동재는 제대로 한 건 해낸다. 이제 동재에겐 꽃길만 펼쳐질까. 드라마는 미화를 하고 말았다는 불명예는 얻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동재는 적지 않은 응원을 받을 것이다. 꽤나 큰 공로를 세웠고, 꽤나 많은 대가를 치렀으니까. 뭐,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는 결말이다. 어쨌든 개과천선 했으니까. 하지만 드라마는 이렇게 끝내지 않은 채, 줄곧 품어왔던 메시지를 동재의 앙숙이자 동료인 조병권 검사의 입을 통해 드러낸다.
“작년에 사람 죽여 놔 놓고 올해 사람 살렸다고, 작년께 없어지는 게 아니다.”
결국 동재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묻는다. 직무도 게을리하지 않고, 나름의 공로도 세워보지만, 무거운 과오는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오직 높은 곳을 향해 욕망만을 쫓았던 시간은 잃고 싶지 않았던 것을 잃게 만들고, 현실을 그리고 미래를 바꿔버린다. “가자~가자~ 대검.” 희망차게 뛰어올랐던 동재는 결국 면직 처분을 받은 채 어두운 복도에서 무릎을 꿇는다.
동재의 무너짐이 아픈 이유는 우리 역시 그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계기로든 인생의 어느 순간 우리는 다른 사람이 되길 택할 것이다. 좋은 쪽으로든 나쁜 쪽으로든. 어느 쪽이든 중요한 건 대가를 치르지 않고선 그 고비를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이다. 설령 현실에선 대가 따위 치르지 않는 사람이 수두룩하다고 해도, 우린 모두 알고 있지 않은가.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게 순리라는 걸. 그럼에도 동재는 동재다. 동재의 가장 큰 매력은 죽지도 않고 살아 돌아오는 것이니까.
법무부 검찰 비리 TF팀으로 돌아온 서동재는 지난 과거의 자신과 같은 이들을 쫓게 되었다. 부정한 자가 부정한 자를 쫓는다. 받아본 자가 받아먹는 자를 알아본다. 그렇게 동재는 다시 한번 과거를 청산할 기회를 얻게 된다. 돌아온 동재가 처음으로 찾는 대상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부장 판사다. 명백한 과오에도 불구하고 사건이 마무리되기 전까지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은 자.
“너 누가 보냈어?”
“부장님이요. 절 여기 부른 건 부장님입니다. 제가 똥 묻은 개라서 냄새를 아주 잘 맡거든요.”
그렇다. 드라마는 계속해서 반복해 말한다. 이 참혹을 만든 건 바로 본인이라고. 누구도 함정에 빠뜨리지 않았다고. 오직 자신만이 자신의 인생을 망친 거라고. 두 사람의 모습은 묵묵히 일을 하며 부장의 자리로 간 검사와, 결국 대검으로 가게 된 검사와의 비교를 통해 선명하게 드러낸다. 이토록 노골적인 권선징악, 환영이다. 비로소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는 것이니까. 동재는 부장 검사가 내던진 명함을 주어 올리며 말한다.
“모처럼 창피하지가 않습니다.”
앞으로도 동재는 옳은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모욕을 받을 것이다. 감히 네가 무슨 자격으로 이런 일을 하냐고. 그럴 때마다 동재는 “냄새를 아주 잘 맡거든요. 똥 묻은 개라서.”라는 말을 반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당당할 터였다. 돌려받아야 할 몫을 온전히 돌려받은 자, 대가를 치른 자가 보여줄 수 있는 최대한의 자존심이랄까. 그렇기에 동재를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가는 거라고. 이런 결말은 현실 미화보다는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최소한의 희망에 가깝다. 결국 또 바랄 수밖에 없다. 감찰 비리 TF팀에서 동재는 어떻게 변해갈지. 정말 바뀌었을지, 아니면 사람 바뀌지 않는다는 말을 증명할 것인지. 자신이 좋아했던 검사 일로 다시 돌아가려고 할지. 좋거나 나쁜 동재가 또다시 돌아오길 바라는 이유다. 이렇게 느그 동재는 우리 동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