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가 뻑뻑해졌다.
한계치에 다다랐다는 신호였다.
여기서 더 돌리면 나사가 풀려버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확인해야 했다.
저 별이 무엇인지. 아니, 내 마음이 어디에 닿아 있는지.
나는 눈을 질끈 감았다 뜨며, 있는 힘껏 노브를 비틀었다.
탁!
경통 안에서 무언가 걸리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그 순간.
지잉-
내 귀에만 들리는 듯한 고주파의 이명과 함께,
렌즈 안쪽에서 초록색 스파크가 튀었다.
전기 스파크가 아니었다.
그것은 낮에 봤던 그 수리점 주인의 눈동자를 닮은,
영롱하고 신비로운 에메랄드빛 섬광이었다.
그 빛은 렌즈 중앙에 나 있던 균열,
그 깨진 금 사이로 스며들고 있었다.
"윽!"
눈이 부셔 고개를 뒤로 뺄 뻔했다.
하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알았다.
지금 눈을 떼면 다시는 볼 수 없다는 것을.
그 남자가 말했던 '틈'이 열리고 있었다.
상처 입은 렌즈가 비로소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나는 눈물이 고이는 눈을 억지로 부릅뜨고 렌즈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균열이 프리즘 역할을 하며 빛을 굴절시켰고,
그 빛이 모여 하나의 거대한 홀로그램 같은 영상을 만들어냈다.
그리고 마침내.
내 눈앞에 기적이 펼쳐졌다.
"......!"
나는 숨 쉬는 것도 잊었다.
그것은 차갑고 황량한 우주의 행성이 아니었다.
렌즈 꽉 차게 들어온 세상은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두 개의 행성이었다.
하나는 은은한 분홍빛 구름에 싸여 있었고,
다른 하나는 싱그러운 연두색 초원으로 뒤덮여 있었다.
두 행성은 마치 왈츠를 추듯 서로를 중심으로 빙글빙글 돌고 있었다.
쌍성
그리고 시야가 더 깊숙이 빨려 들어갔다.
나는 분홍빛 구름에 싸인 행성 쪽으로 줌인되었다.
"말도 안 돼... 저게 다 뭐야?"
그곳은 중력을 거스르는 세상이었다.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거대한 나무들.
자세히 보니 그 나무 기둥 하나하나가 삼줄로 감긴 거대한 스크래처였다.
나뭇가지 사이사이에는 구름다리가 놓여 있었고,
그 위를 수십, 수백 마리의 고양이들이 뛰어다니고 있었다.
마치 거대한 캣타워 숲 같았다.
어떤 녀석은 구름 위에서 솜사탕 같은 것을 뜯어먹고 있었고,
어떤 녀석은 흐르는 강물가에 엎드려 목을 축이고 있었다.
강물 색깔은 익숙한 황토색, 바로 츄르 색이었다.
지구에선 볼 수 없는 풍경.
하지만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상상해 봤을 낙원.
나의 시선이 화면 오른쪽으로 이동했다.
두 행성 사이를 잇는 거대한 무지개다리가 보였다.
그리고 그 다리 입구 쪽에 범상치 않은 존재들이 보였다.
나는 내 눈을 의심했다.
호랑이였다. 동물원에 있는 호랑이보다 훨씬 큰,
집채만 한 백두산 호랑이가 커다란 바위 위에 배를 까고 누워 있었다.
그런데 그 호랑이의 배 위에서 고양이들이 꾹꾹이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호랑이 옆에는, 하얀 한복을 입고 긴 지팡이를 든 할아버지가 앉아 있었다.
곰방대로 연기를 뻐끔거리며, 옆에 있는 강아지들에게 육포 같은 것을 던져주고 있었다.
전래동화에서나 보던 산신령?
그리고 그 옆.
내 시선이 한 인물에게 고정되었다.
낡은 갈색 수도복,
허리에는 흰 밧줄 띠를 두르고,
맨발에 샌들을 신은 백인의 할아버지.
그의 어깨와 머리에는 비둘기와 참새들이 앉아 있었고,
그는 인자한 미소로 강아지의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저 복장... 어디서 봤는데.'
기억을 더듬었다.
성당 마당에 서 있던 동상.
그리고 세례 받을 때 대부님께 선물 받았던 상본(기도 카드) 속의 인물.
평화의 기도를 바칠 때마다 떠올렸던 아시시의 성자.
"성... 프란치스코?"
나도 모르게 성인의 이름이 튀어나왔다.
설마. 진짜로?
가슴이 벅차올랐다.
내 기도가 허공에 흩어진 게 아니었구나.
동물들의 수호성인이라는 말이 진짜였구나.
그리고 그들 중앙.
가장 크고 화려한 연꽃 방석 위에 앉아 있는,
황금색 법복을 입은 스님 한 분.
온화한 미소를 띤 그분은 내 짧은 지식으로 봐도 지장보살님이 분명했다.
불교 탱화에서 보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과 지장보살님이 나란히 앉아 아이들을 돌보는 모습이라니.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지만,
동시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안도감이 밀려왔다.
세상의 모든 신성한 존재들이 우리 아이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때였다.
지장보살님의 무릎. 가장 따뜻하고 안전한 그 명당자리.
그곳에 아주 익숙한 뒤태가 보였다.
새하얀 털.
마치 구름을 뭉쳐놓은 듯 풍성하고 긴 털이 바람에 살랑거리고 있었다.
단모종인 바람이 와는 달리,
걸을 때마다 찰랑거리는 우아한 장모(長毛).
터키시 앙고라.
내 가슴이 하고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다.
렌즈를 잡은 손이 미친 듯이 떨렸다.
나는 줌을 더 당기고 싶었지만 이미 한계였다.
대신 내가 렌즈 속으로 들어갈 기세로 눈을 밀착했다.
제발. 제발 맞았으면 좋겠다.
"......?"
내 입술 사이로 억눌린 신음이 터져 나왔다.
마치 내 시선을 느낀 것처럼,
그 하얀 고양이가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역삼각형의 작은 얼굴.
분홍색 코.
그리고 렌즈를 뚫고 들어올 듯 강렬하게 빛나는,
투명한 호박색눈동자.
맞았다.
막내 나무의 호박색 눈이 장난기 가득한 구슬 같다면,
저 눈은 깊고 고요한 보석 같았다.
13년을 매일 아침 눈뜰 때마다 마주했던 바로 그 눈.
나의 우주, 나의 첫 번째 고양이.
"미... 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