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달랐다.
녀석은 너무나 편안해 보였다.
마지막 순간까지 병마와 싸우느라 푸석했던 털에는 은은한 윤기가 흘렀고,
살이 쏙 빠져 홀쭉했던 볼살은 다시 통통하게 올라 있었다.
미르는 지장보살님의 무릎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켰다.
앞발을 쭉 뻗고, 허리를 아치형으로 만들었다가, 뒷발을 쭈욱 폈다.
뒷발.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그 뒷발은,
혈전 때문에 차갑게 식어 마비되었던 다리였다.
바닥에 힘이 들어가지 않아,
질질 끌리던 그 다리였다.
하지만 지금 미르는 그 뒷발로 힘차게 보살님의 무릎을 딛고 서 있었다.
"아..."
나도 모르게 탄식이 흘러나왔다.
미르는 가볍게 점프하여 지장보살님의 어깨로 올라갔다.
그 움직임에 무게감이 없었다.
날개라도 달린 듯 가벼워 보였다.
녀석은 높은 곳에서 지구 쪽을,
정확히는 내가 보고 있는 이 렌즈 쪽을 내려다보았다.
거리가 300만 광년이나 떨어져 있는데.
분명히 녀석과 눈이 마주친 것 같았다.
"미르야... 아빠 보여? 나야, 아빠야... 아빠야..."
나는 렌즈에 대고 중얼거렸다.
눈물이 차올라 시야가 뿌옇게 흐려졌다.
나는 황급히 옷소매로 눈물을 닦아냈다.
1초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이 환각이라도 좋았다. 미쳐서 보는 헛것이라도 좋았다.
네가 안 아픈 것만 확인하면 되니까. 다리가 나은 것만 보면 되니까.
렌즈 속의 미르가 입을 벌렸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입 모양은 분명했다.
냐앙-
그리고 녀석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그 특유의 눈인사를 보냈다.
호박색 눈을 천천히 감았다가 뜨는, 고양이들만의 사랑 표현.
'나 괜찮아, 아빠. 걱정 마.'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나는 망원경을 붙잡은 채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베란다 바닥의 냉기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정말 있었다.
성경 말씀대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자에게 기적이 임했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그리고 지장보살님이 내 아이를 지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아들 미르는,
그곳에서 가장 아름답고 건강한 모습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흐으으..."
참았던 울음이 터져 나왔다.
어두컴컴하던 내 절망의 우주에,
가장 밝은 호박색 별 하나가 뜨겁게 떠오르고 있었다.
"흐으으..."
베란다 바닥에 주저앉은 채, 나는 렌즈에 눈을 박고 짐승 같은 울음을 토해냈다.
시야가 자꾸만 눈물로 흐려졌다.
옷소매로 닦아내고, 또 닦아냈다.
1초라도 놓치면 저 빛나는 고양이가 연기처럼 사라져 버릴까 봐,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까웠다.
렌즈 너머의 세상은 여전히 총천연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장보살님의 무릎 위.
그곳에 나의 미르가 있었다.
'미르야... 우리 미르...'
13년 전, 내 품에 처음 안겼던 하얀 솜뭉치.
입양은 가장 먼저 왔지만,
4개월 먼저 태어난 바람 이를 친형처럼 따르며 의지했던 나의 첫 고양이.
바람이 뒤에 숨다가도, 잘 때가 되면 꼭 내 팔베개를 고집하던 사랑스러운 아이.
그 미르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줌 노브를 아주 미세하게 조정했다.
녀석의 상태를 더 자세히 보고 싶었다.
렌즈 속 미르의 모습이 선명하게 클로즈업되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털이었다.
죽기 직전, 병마와 싸우느라 푸석푸석하고 윤기를 잃었던 털이 아니었다.
마치 갓 목욕을 하고 빗질을 마친 것처럼,
장모종 터키시 앙고라 특유의 긴 털이 한 올 한 올 살아나 은은한 빛을 뿜어내고 있었다.
바람에 털이 날릴 때마다 반짝이는 가루가 흩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
투명한 호박색 눈동자.
마지막 날, 점점 초점을 잃어가던 그 탁한 눈빛은 온데간데없었다.
녀석은 지장보살님의 무릎에 턱을 괴고, 나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있었다.
마치
"아빠, 나 때깔 좋지?"
하고 자랑하는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 시선을 붙잡은 건 녀석의 다리였다.
미르는 자리에서 일어나 지장보살님의 어깨로 가볍게 점프했다.
도약할 때 뒷다리 근육이 탄력 있게 수축했다가 펴지는 게 보였다.
착지할 때도 흔들림 없이 네 발로 사뿐히 내려앉았다.
심장이 가라앉는 느낌이었다.
"다 나았구나... 진짜 다 나았어..."
혈전으로 차갑게 식어 질질 끌고
구석으로 숨던 그 뒷다리가 아니었다.
저곳에는 고통이 없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그 건강한 모습을 눈으로 확인하자,
안도감과 동시에 억눌러왔던 기억의 댐이 무너져 내렸다.
가장 보고 싶지 않았던,
하지만 뼛속 깊이 각인되어 나를 괴롭히던
12월 1일의 기억이 렌즈 속 건강한
미르의 모습 위로 잔인하게 오버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