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나의 우주가 닫혀 버린 날

by 커다란고양이

2025년 11월 30일

그날은 유난히 일정이 많은 날이었다.

오후 4시, 나는 미사곡 연습을 위해 성당으로 향했다.


평소와 같던 신부님의 강론을 들으며 가족의 건강과 평화를 빌었다.

당연히 그 안에는 미르, 바람, 나무의 이름도 있었다.

미사가 끝난 뒤엔 늘 청년회의 회식이 있었다.

그날도 역시 같았다.

새벽 1시.


술기운에 기분 좋게 도어록 비밀번호를 누르고 집에 들어왔다.


"아빠 왔다!"


평소라면 이 소리에 미르가 가장 먼저 현관 앞으로 달려 나와야 했다.

하지만 현관은 비어 있었다.

싸한 정적.


"미르야?"


나는 작은 원룸을 바라봤으나, 바람이와 나무만 보였다.

베란다 쪽을 보니, 어둠 속에 하얀 덩어리가 보였다.

미르였다.

녀석은 차가운 베란다 타일 위에 배를 깔고 엎드려 있었다.

내가 다가가도 일어나지 않고,

그저 호박색 눈만 꿈뻑꿈뻑하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미르야, 왜 거기 있어? 추운데."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녀석이 삐져서 그러는 줄 알았다.

술김에 "간식 줄까?" 하며 스틱 간식을 흔들었다.

그 소리에 바람이와 나무가 후다닥 달려왔다.

하지만 미르는 움직이지 않았다.

간식 소리라면 자다가도 튀어나오던 아이가,

고개만 살짝 들었다가 툭 떨구었다.

그제야 술이 확 깼다.

나는 베란다로 달려가 미르를 안아 올렸다.

녀석의 몸이 물 먹은 솜처럼 축 늘어졌다.


"미르야! 왜 이래!"


놀라서 녀석을 거실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러자 미르가 앞발로 바닥을 긁으며 기어가기 시작했다.

방구석, 어두운 틈새를 향해서.

뒷다리는 움직이지 않았다.

마치 고장 난 장난감처럼,

뒷다리를 질질 끌며 구석으로,

더 깊은 구석으로 숨으려 했다.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양이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하면

집사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숨는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 미르가 그러고 있었다.

나를 피해서, 마지막을 맞이할 자리를 찾아서 기어가고 있었다.


"안 돼! 미르야, 안 돼!"


잠깐이겠지, 다시 돌아오겠지...

여러 번 미르를 들었다 내려놨으나 동일한 행동이었다.

잘못됐다.

무언가 잘못되었다.


24시간 운영하는 병원에 전화했는데, 지금 와도 된다는 소리를 들었다.

케이지, 케이지가 없었다.

뼈가 문제 있으면 안 되니 사각케이지에 넣고 가야 할 것 같았다..

가냘프게 우는 미르를 낚아채듯 케이지에 넣고 병원으로 달렸다.

그 와중에 병원비를 걱정하는 내가 참 모자랐단 생각도 들었다.

미르는 약하게 냐아... 하며 울었다.


병원에서의 진단은 '비대성 심근증으로 인한 혈전'.

혈전이 대동맥을 막아 하반신이 마비된 것이다.

통증이 어마어마했을 거라고, 수의사가 말했다.


내가 회식 자리에서 웃고 떠들던 그 시간 동안,

미르는 혼자 그 고통을 견디며 베란다에 엎드려 있었던 것이다.


입원 수속을 밟고 집에 돌아온 시간은 새벽 4시가 넘어서였다.

일단 응급처치를 하고 설명을 들었다.

그 와중에 나는 앞으로 마비면 어떻게 케어할지 물어봤으나

수의사는 나에게 비장하게 말했다.

예후는, 거의 좋지 않다고.

일단 고비를 넘기고 생각하자고.


면회를 하는데 미르가 나를 보고 나서야 누웠다.

아침에 오겠노라 고개를 돌렸는데,

지금 와서 보면 그러지 말걸,

좀 더 봐주고 올걸 하는 후회가 들었다.


잠이 올 리가 없었다.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휴대폰만 쳐다봤다.

병원에서 연락이 오지 않을까.

연락이 없으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는데.

제발 아무 일 없기를.


오전 11시.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내가 먼저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미르 보호자입니다. 아이 상태 좀..."

수화기 너머, 수의사의 목소리는 당황스러워 보였다.

"아, 보호자님. 연락이 안 되셔서..."

"네? 무슨 소리세요?"

"아까 오전 9시 50분경에 미르가... 별이 되었습니다. 바로 전화드렸는데 연결이 안 돼서..."


머리를 둔기로 얻어맞은 것 같았다.

연락이 안 되다니?

나는 휴대폰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벨소리는 한 번도 울리지 않았는데?

나는 떨리는 손으로 통화 기록을 확인했다.

부재중 전화는 없었다.

그러다 문득, 차단 목록을 확인했다.


[032-XXXX-XXXX (차단됨)]


스팸 전화가 너무 많이 와서,

모르는 번호나 070, 02로 시작하는 번호들을

습관적으로 차단해 둔 게 화근이었다.

내가 내 손으로, 미르의 마지막 소식을 알리는 전화를 막아버린 것이다.


"아......"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하느님이 야속했다. 원망스러웠다.

어제 성당에 가서 미사를 드렸잖아요.

평화를 빌었잖아요.

그런데 그 대가가 이거예요?

미사 드리고 온 다음 날, 이렇게 허망하게 데려가시는 게 어디 있어요.

마지막 가는 길 지켜보지도 못하게,

전화 한 통 못 받게 만드는 게 당신 뜻입니까?

미르의 시신을 수습하러 가는 길,

나는 하늘을 향해 삿대질을 하며 울부짖었다.

나의 우주는 그렇게,

원망과 후회 속에서 12월 1일 오전에 완전히 닫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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