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
미르를 데리러 가야 했다.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카운터에 말을 해야 하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다.
"어제, 고양이를 맡겼는데..."
"아, 미르 보호자님.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멍하니 대기석에 앉아 하늘을 바라봤다.
잠시 후 수의사가 나를 찾아왔다.
아침에 발작이 온 이후로 살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자 안에 기초 수습과 염까지 마친 미르를 보고서야,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가슴을 쥐어잡는 듯한 먹먹함이 나를 사로잡았다.
사실 자고 있다고 믿고 싶었다.
털결이 아직 살아 있고, 외상도 없었으니까.
미르가 잠든 상자를 들고 진료실을 나가려는데,
차마 문을 열 수가 없었다.
미닫이문이어서 열고자 하면 충분히 열 수 있었지만,
미르가 들어 있는 상자로 그 문을 밀고 싶지 않았다.
수의사가 문을 열어주어 그 공간을 빠져나왔다.
24시간 동물병원이라 그런지 낮 시간에도 많은 사람이 있었다.
다 큰 성인 남자가 동물병원에서 커다란 박스를 들고 울고 있었다.
순간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지만,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길을 터주었다.
동물병원에서 박스를 들고 서럽게 울고 있다는 건,
누구나 짐작이 갔을 테니까.
미르를 안고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주변 사람들의 '어머, 어떡해'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냥 계단을 타고 내려왔다.
이 상태로 도저히 집까지 걸어갈 수 없을 것 같아서 택시를 잡으려는데,
순간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는 멍한 상태가 지속됐다.
택시를 잡고, 어찌어찌 집에 왔다.
박스를 열어 미르를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바람이와 나무에게는 인사를 시켜줘야
할 것 같아서 상자를 열어 바닥에 두었다.
미르는 그대로 자고 있는 것 같았고,
여전히 살아 있는 것 같았다.
바람이와 나무가 상자 주위를 돌면서 냄새를 맡았다.
자리를 잡고 한동안 냄새를 맡다가 자리를 떴다.
이제는 알았겠지.
동료가 갑자기 사라진 게 아니라, 고양이 별로 갔다는 사실을.
누군가는 바로 화장할 수 없어서 이틀 정도
함께 지내며 마음의 준비를 한다고 한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돌릴 때마다 잠자는 것 같은
미르와 마주치는 먹먹함을 견딜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그날 오후 7시로 화장을 예약했다.
애인이 찾아왔다.
가만히 있다가 울다가 다시 일하는 나를 보며 위로해 주었다.
그렇게 위로를 받으며 화장장으로 향했다.
화장터는 너무나 잘 되어 있었다. 입관실과 화장터, 안치실, 휴게실까지.
반려동물을 정말 가족처럼 느끼는 세상이 되었다는 게 실감 났다.
기억나는 건, 발도장을 스탬프로 남기겠냐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그러겠다고 했는데,
이미 사후 경직이 시작된 터라 미르의 발을
억지로 펼치려는 모습에 그냥 그러지 말라고,
울면서 고개를 저었다.
입관실에는 내가 한때 역작이라 불렀던 사진이 커다란 스크린에 떠 있었다.
그 사실을 영정사진으로 쓸 생각은 전혀 못했지만 말이다.
미르 사진을 사전에 보내놨는데 그 사진이 스크린에 있었고,
그 아래 잠들어 있는 미르가 있었다.
사실, 애인은 우리 집 애들을 딱히 좋아한다는
느낌이 사귀는 동안 들지 않았다.
하지만 화장터에서 소리 놓아 우는 모습에,
또 다른 새로운 현실과 마주한 것 같았다.
장례지도사와 화장을 진행하는 사람들 모두
예의를 갖춰 행하는 게 더 슬펐다.
화장 기계에 들어가는 미르에게 인사를 하며,
이제는 진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잠시 기다리는 동안 화장터를 둘러봤다.
납골당에는 참 많은 아이들이 잠들어 있었다.
신기한 건 간식을 갈아주고,
주기적으로 와서 편지도 남기고 간다는 것이었다.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었다.
금강이라는 고양이였는데,
4~5년 전에 고양이 별로 간 듯했다.
한 달 전까지도 편지가 남아 있었는데, 너무나 애틋했다.
그 사이에 그는 취업을 했고, 진급을 했고, 이사를 했다.
그 모든 중심에 그 고양이가 있었다.
그 서사에는 금강의 부재가 너무도 슬펐고 아쉬웠다고 한다.
꿈에라도 나와서 술 그만 마시라고 잔소리 좀 해달라는 이야기.
요즘 납골당에 고양이 친구들이 많이 와서 외롭지는 않겠다는 이야기.
그런 넋두리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되겠구나 싶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다가,
정적을 깨는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납골당을 나가 둘러보았다.
일곱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가 세상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고,
네 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는 천진난만하게 화장터를 누비고 있었다.
열 살이 넘은 강아지의 죽음을,
한 아이는 실감하고 한 아이는 아직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7년 넘게 함께했던 친구가 죽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얼마나 슬플지,
어렴풋이 가늠할 수 있었다.
그렇게 화장터에서 시간이 흘러 미르는 한 줌의 재가 되었고,
그 한 줌의 재는 푸르스름한 스톤이 되어 머나먼 여행을 떠났다.
아니, 잠시 나를 보듬기 위해 여행을 왔다가 자신의 별로 돌아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