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화 빈자리

by 커다란고양이

제13화: 빈자리

미르를 본 다음 날 아침,

나는 평소보다 일찍 눈을 떴다.

커튼 사이로 새어 들어온 햇살이 눈부셨다.

침대 옆 작은 책상 위에는

노트북이 켜진 채로 대기 모드에 들어가 있었다.


어젯밤 감격에 겨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던 흔적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키며 거실을 바라봤다.

바람이가 작은 하우스에 몸을 구겨 넣어 들어갔다.

그 좁은 공간이 어디가 좋은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나무는 베란다에서 창가를 바라보고 있었다.

빽빽한 이중모라 그런지 추위는 그다지 타지 않는 모양이었다.

평범한 아침이었다.

하지만 뭔가 달랐다.


"미르야, 밥 먹자."


입 밖으로 나올 뻔한 말을 나는 황급히 삼켰다.

13년 동안 매일 아침 부르던 이름.

아침밥 주기, 물 갈아주기, 화장실 청소. 그 모든 루틴에 미르가 있었다.

사실 미르는 화장실이 더러우면 시위를 하곤 했다.

화장실을 빤히 바라보다, 울어버리기.

그럴 때 화장실을 갈아 주면 제일 먼저 사용을 했는데

이제는 교체를 해도 바로 오픈런을 하여 쓰는 손님이 없었다.

그래서 그랬나?

가슴 한쪽이 텅 비는 느낌이었다.


나는 노트북을 열고 재택근무를 시작했다.

오전 10시, 팀 회의 시간. 화상회의 창을 켜고 카메라 앞에 앉았다.


"준혁 씨, 지난주 작업 진행 상황 공유해 주시겠어요?"


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네, 지금 화면 공유하겠습니다."


나는 능숙하게 모니터를 전환하며 코드 리뷰를 시작했다.

하지만 시선은 자꾸 책상 옆 빈 쿠션으로 향했다.

예전에는 회의 중이면 어김없이 미르가 그 쿠션 위에 올라와 있었다.

가끔은 카메라 앞을 지나가며 팀원들에게 "미르다!" 소리를 듣기도 했고,

심지어 키보드 위를 걸어가서 채팅창에 "jjjjjjjj" 같은 암호문을 남기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죄송합니다, 고양이가..."라고 웃으며 사과했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은 없었다.


회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나는 간단히 컵라면을 끓여 먹으며 바람이와 나무에게 간식을 챙겨줬다.

두 녀석은 냠냠거리며 잘 먹었다.

예전 같았으면 하나의 간식을 미르, 바람, 나무순으로 줬을 텐데.

지금은 양손에 간식을 하나씩 들고 주는 게 가능해졌다.


오후 2시, 코드 작업 중.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만 방 안에 울렸다.

평소라면 무릎 위에서 골골송을 부르던 작은 온기가 없었다.

화면만 뚫어져라 바라보다가, 문득 고개를 들었다.

베란다 쪽 망원경이 보였다.

밤이 오면 다시 볼 수 있어.

그 생각만으로도 조금은 버틸 수 있었다.


저녁 6시, 업무 종료.

노트북을 덮고 기지개를 켰다.

바람이가 다가와 내 다리에 머리를 비볐다.


"바람아, 밥 줄까?"


나는 일어서서 밥그릇을 챙겼다.

바람이와 나무의 밥을 담으면서,

손이 자동으로 세 번째 그릇을 향했다.


"아..."


빈 그릇.

미르의 이름표가 붙은 식기.

사실 이름표가 붙었을 뿐이지 고정된 그릇을 통해 사료를 먹는 건 아니었다.

나는 그 그릇을 싱크대에 놓고 한참을 바라봤다.

버려야 할까. 아니면 이대로 둘까.

결국 나는 그릇을 씻어서 찬장 깊숙이 넣어뒀다가

다시 자리에 놓고 사료를 채워 넣었다.

버릴 수는 없었다.

밤 9시.

나는 베란다로 나가 망원경을 설치했다.

어젯밤보다 훨씬 익숙한 손놀림이었다.

렌즈를 남서쪽 하늘로 돌리고, 초점을 맞췄다.

그리고 배율 노브를 끝까지 돌렸다.


지잉—

익숙한 에메랄드빛 섬광과 함께,

렌즈가 열렸다.

고양이별이 다시 보였다.

거대한 캣타워 숲, 츄르 강, 그리고 무지개다리 입구.

나는 시야를 천천히 옮겨 미르를 찾았다.

그리고 그 무릎 위.


"미르야."

하얀 털뭉치가 여전히 그 자리에서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나는 한참을 그 모습을 바라봤다.


"아빠 오늘도 일 열심히 했어.

근데... 네가 없으니까 회의할 때 좀 심심하더라.

너 키보드 밟던 거 귀찮았는데, 이제 그게 그립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르가 귀를 쫑긋 세우는 것 같았다.


"내일도 볼게. 잘 자."


나는 렌즈에서 눈을 떼고, 하늘을 올려다봤다.

육안으로는 보이지 않는 그 별.

하지만 이제 나는 알고 있었다.

저 어딘가에 미르가 있다는 것을.


그리고 나는 매일 밤,

그곳을 향해 망원경을 켤 것이다.

공허함은 여전했지만, 이제는 견딜 만했다.

미르가 건강하게 지내고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으니까.

이전 12화제12화 망원경 속 또 다른 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