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느 정도 일상을 되찾아가고 있었다.
재택근무도 무난히 소화하고,
밤에는 망원경으로 미르를 보며 하루를 마무리했다.
그러다 결심했다.
미르를 그렇게 보내고 나니 평소에 관리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참에 둘 다 건강검진을 받자.'
최대한 금액이 덜 드는 곳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에
양파마켓, 포털사이트를 뒤져 꼼꼼하고 저렴한 곳을 찾아 예약을 했다.
방문 8시간 전 금식을 지켜야겠다.
일단 바람이부터 검진이 필요하지만,
나무도 덩달아 금식을 시켜야겠다.
빈 사료만 바라보는 애들을 애써 외면했다.
케이지에 넣는 순간, 세상의 서러운 소리를 내는 바람이었다.
꾸어엉, 우어엉.
바람이는 케이지에만 넣으면 운다.
그렇게 30분을 걸어 동물병원에 도착했다.
"13살이면 노묘니까 정밀 검진 추천드려요."
그 말에 최대한 받을 수 있는 검사는 받기로 결심했다.
혈액검사, 소변검사, 심장 초음파, 복부 초음파, 치과 검진 등등.
모든 항목에 체크했다.
한 시간 반 정도 걸렸던 것 같다.
병원에서도 하도 떠나가라 울어 민망할 정도였다.
결과는 바로 나왔고, 일부 검사 결과만 다음 날 답변받을 수 있었다.
솔직히 바람이는 뚱뚱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그런 건 아니었다.
고지혈증도 없고, 간도 비뇨기계도 깨끗했다.
뼈도 관절도 나이에 비해 엄청 건강하다고 했다.
하지만.
췌장 염증 수치가 높아 관리가 필요하다고 했다.
계속 약을 먹어 수치를 낮추고, 영양제로 관리를 해야 한다는 것.
사람도 췌장은 위험한 장기기에,
막상 췌장 염증 수치가 높다고 하니 뭔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치석과 치주염, 구내염이 너무 심해 스케일링과 발치는 필수라는 사실.
문득 이런 생각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미르도 만약에 미리 검사를 했더라면... 어떻게 됐을까.
뭐, 일단 이런저런 생각을 하면서 바람이를 집으로 데려왔다.
집에 돌아오니 나무가 구석에서 나오지 않았고,
한참이 지나서야 나와 바람에게 하악질을 해댔다.
병원 냄새, 다른 동물 냄새, 다른 사람 냄새가 나서 그랬을까?
생각해 보니 나무는 한 번도 혼자 집에 있던 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랬을 것 같다.
하지만 다음은 너야.
이틀 뒤, 나무 차례가 왔다.
역시나 연좌제로 바람이도 강제 금식.
나무는 전체적으로 괜찮았는데, 담낭에 슬러지,
간에 약간의 초음파로 문제가 보인다고 했다.
일단 초음파적 소견이라 한 달 뒤 재검이 필요하다곤 했다.
두 마리를 한곳에서 하다 보니 할인이 들어가긴 했다.
하지만... 순식간에 두 마리에 100만 원이 공중분해됐다.
"정말... 내가 너네들을 지갑으로 길렀구나..."
집으로 돌아와, 나는 바람이와 나무를 꼭 안았다.
"너희 둘, 오래오래 건강하게 살아줘. 알았지?"
바람이가 그르렁대며 대답했고,
나무는 내 뺨을 핥았다.
'이별이 무섭다.'
솔직히 인정했다.
바람이와 나무를 떠나보낼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혔다.
그래서 더 이상 새 아이는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았다.
사랑하면 떠나보내야 하고,
떠나보내면 또 이렇게 아플 것이다.
'미르, 바람, 나무. 셋이면 충분해.'
나는 그렇게 다짐했다. 더 이상 사랑의 빚을 지지 않겠다고.
남은 두 아이와의 시간을, 후회 없이 채우겠다고.
일주일 뒤, 바람이의 스케일링 예약 날짜가 다가왔다.
설명을 듣는데 아찔했다.
수면 마취 중 쇼크사가 일부 올 수 있으며...
마취 중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며...
깨어나더라도...
이런 이야기들 때문에 그럴 거면 그냥 스케일링을 안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스케일링 발치를 하지 않으면,
사람과는 다르게 전신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니.
딜레마였다.
결국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바람이를 맡기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오고 두 시간이 흘렀을까.
마취에 들어가니 20분 내로 전화 오게 되면 꼭 받으라는 무시무시한 소리를 들었다.
다행히 전화는 오지 않았고, 발치까지 마무리됐다.
진작 했어야 했나.
입냄새도 전혀 나지 않았고, 애가 홀쭉해진 것 같았다.
홀쭉해진 바람이만큼 나의 잔고도 더할 나위 없이 홀쭉해졌다.
오랜 기간 앓아 온 구내염을 위해 2주간 열심히 약을 먹여야겠지.
발치 후 아파서 그런가. 사료도 먹지 않았다. 습식 사료, 습식 간식마저도.
그에 비해 나무는 여전히 잘 먹었고,
바람이가 안 먹는 것을 아주 잘 해치워 버렸다.
그날 밤, 나는 망원경으로 미르를 봤다.
미르는 여전히 평화롭게 자고 있었다.
"미르야, 바람이랑 나무는 건강해. 걱정 마."
나는 렌즈에 대고 속삭였다.
미르가 눈을 뜨고, 나를 보며 눈인사를 보냈다.
'잘했어, 아빠.'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