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숨을 죽이고 렌즈를 들여다봤다.
우체국 앞 대기줄.
그 맨 끝에 서 있던 하얀 털뭉치가 조금씩,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입에 문 편지가 구겨질까 봐 조심스럽게 물고 있는 게 보였다.
저 작은 봉투 안에 뭐가 적혀 있을까.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뭘까.
궁금했지만, 그보다 먼저 공포가 밀려왔다.
심장이 목까지 차올랐다.
'제발... 제발...'
나는 기도하듯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성은 차갑게 속삭였다.
넌 미르한테 이름을 가르쳐준 적 없잖아.
13년 동안 "미르야, 미르야" 부르기만 했지.
"아빠 이름은 최준혁이야"라고 말해준 적 없을 걸.
앞에서 또 한 마리가 반송당했다.
삼색 고양이였다.
편지에 빨간 도장이 찍히자,
녀석은 고개를 푹 숙이고 돌아섰다.
등 뒤로 보이는 꼬리가 축 처져 있었다.
저 고양이도 주인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었을 텐데.
주인 이름을 몰라서,
그 마음을 전하지 못하고 돌아가는 것이다.
이제 미르 차례였다.
하얀 털뭉치가 창구 앞에 섰다.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미르를 내려다보셨다.
인자한 눈빛.
하지만 그 눈빛 속에는 수천,
수만 마리의 편지를 반송해 온 피로감도 서려 있었다.
오늘도 대부분의 편지가 빨간 도장을 받았을 것이다.
이름을 아는 아이는 많지는 않았으니까.
"주인의 이름을 아니?"
성인이 물으셨다.
나는 렌즈 앞에서 눈을 질끈 감았다.
차마 볼 수 없었다.
미르가 "아빠"라고만 울고,
편지에 빨간 도장이 찍히고,
풀이 죽어 돌아서는 모습을.
그 장면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미르가 반송당한 편지를 물고 터덜터덜 돌아가는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다.
그건 내 잘못이었다.
내가 이름을 안 알려줬으니까.
1초. 2초. 3초....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렌즈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무서웠지만, 확인해야 했다.
나는 떨리는 눈을 억지로 떴다.
미르가 입을 벌렸다.
편지가 창구 위로 툭 떨어졌다.
그리고 녀석의 입이 움직이는 게 보였다.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300만 광년 떨어진 별에서 나는 소리가 들릴 리 없었다.
하지만 입 모양은 읽을 수 있었다.
"최... 준... 혁."
나는 숨이 멎는 줄 알았다.
뭐라고?
지금 뭐라고 한 거야?
나는 렌즈에 눈을 더 바짝 붙였다.
혹시 내가 잘못 본 건가.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본 건가.
성 프란치스코 성인이 편지를 집어 드셨다.
겉면을 확인하셨다.
잠시 멈칫하시더니, 미르를 다시 한번 내려다보셨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셨다.
성인의 손이 책상 위로 움직였다.
파란 도장을 집어 들어 편지에 찍었다.
편지 위에 선명한 파란색 잉크가 번졌다.
빨간색이 아니었다.
반송이 아니었다.
발송 승인.
미르의 편지가 통과된 것이다.
나는 멍하니 굳어 있었다.
눈앞이 흐려졌다.
렌즈가 뿌옇게 보여서,
고장인가 싶었는데 내 눈에 눈물이 고인 거였다.
나는 황급히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냈다.
1초라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미르가 꼬리를 살랑 흔들었다.
성인에게 고개를 까딱 숙여 인사하더니,
편지를 다시 입에 물고 우체국을 나섰다.
녀석의 발걸음이 가벼워 보였다.
아까 반송당하고 돌아가던 삼색 고양이와는 완전히 다른 걸음걸이였다.
당당하고, 기뻐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한참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가슴이 벅차올랐다.
미르의 편지가 나한테 온다.
무슨 내용인지는 모르겠지만,
미르가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담긴 편지가.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떻게... 어떻게 알았지?"
나는 미르에게 이름을 가르쳐준 기억이 있었나 싶었다.
그런데 미르는 알고 있었다.
최준혁.
내 이름 석 자를.
머릿속이 복잡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혹시 내가 통화할 때 들었나?
아니면 택배 받을 때 이름을 말하는 걸 들었나?
그런 걸로 기억할 수 있는 건가?
그때.
머릿속에서 어떤 장면이 번개처럼 스쳐 지나갔다.
12월 1일.
화장터.
입관실.
관 뚜껑.
"아..."
나는 그제야 기억했다.
내가 언제 미르에게 이름을 알려줬는지.
그날 밤, 나는 잠들 수 없었다.
베란다 망원경 앞을 떠나 침대에 누웠지만, 눈이 감기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미르가 편지를 물고 창구 앞에 서 있던 모습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뒤로 겹쳐지는 또 다른 장면.
관 뚜껑 안쪽에 미르에게 보내는 마지막 글자들.
내가 울면서 적었던 그 문장.
미르는 그걸 보고 있었던 걸까.
눈을 감고 누워 있었지만,
어딘가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걸까.
영혼이 되어 관 뚜껑 위에서 내려다보고 있었던 걸까.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을 울었다.
"봤구나... 네가 봤구나..."
미르에게 닿았다.
내 마지막 인사가.
내 이름이.
그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터질 것 같았다.
바보같이 울면서 적었던 그 세 글자가,
진짜로 미르한테 전해진 것이다.
나는 이불을 끌어안고 소리 없이 울었다.
슬픔이 아니었다.
안도였다.
그리고 감사였다.
"고마워, 미르야. 기억해 줘서 고마워."
나는 천장을 보며 중얼거렸다.
어둠 속에서 바람이가 다가와 내 옆에 누웠다.
녀석의 따뜻한 체온이 전해졌다.
나무도 발치에 와서 웅크렸다.
세 식구가 함께하는 밤.
아니, 저 별에 있는 미르까지 네 식구.
나는 눈을 감았다.
오늘 밤은 좋은 꿈을 꿀 수 있을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