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품는 일
“내 몸이 내 몸 같지 않아.”
약 280일 동안 이 말이 참 와닿았다.
임신 중 덜컥 걸린 대상포진 때도 그랬고,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 출산도 어떤 예고 없이 훅 찾아오는 느낌이랄까.
목요일, 병원에서는 자궁문이 1도 열리지 않았다고 했는데, 싸한 느낌에 일요일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4cm가 열려있었다. 예상 밖의 전개였다.
참 다행인 건, ‘촉’은 신기하게도 들어맞을 때가 꽤 많다는 것이다.
예상보다 출산휴가를 늦게 쓰는 바람에, 출산 직전까지 할 일이 많았다.
긴 머리부터 잘라야 했고, 아기와 관련된 가구도 들여야 했고, 아기 옷 빨래며, 출산 가방 싸는 일 등 하루하루 미션 수행을 하느라 분주했다.
미리미리 준비를 안 한 탓도 있지만, 퇴근하면 그저 눕고 싶을 정도로 회사일이 정말 바빴다.
“산후조리원에서 주문하면 돼~ 요새는 하루 만에도 오잖아”라고 하지만 어느 정도는 갖춰져야 추가로 뭐가 필요할지 알겠다 싶어서
사들이고 정리하기를 매일 같이 했다. 참고로 아기가 쓸 물건은 빨고, 닦고, 소독하는 등의 노동이 추가로 들어간다.
그래도 출산하고 나서 못 먹는 게 더 많다고 하니 꼬박꼬박 챙겨 먹으며 디데이를 맞이하고 있었다.
2월의 마지막 주는 날씨도 따뜻해져서 남편과 자주 산책을 나갔다.
해질녘에 맞춰 집 근처 산도 오르고, 음료 한잔씩 들고 한강을 가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막달 임신부 치고 꽤 고난도 산책이었던 것 같다.
토요일에도 신나게 한강 산책을 나섰고, 돌아와서는 언니가 웨이팅을 하며 구매대행 해준 단팥 크림빵을 야무지게 먹었다.
임신을 하고 나서는 다리가 저린 느낌이 들거나 화장실에 가고 싶어 새벽에 자주 깼는데, 일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에도 잠에서 깼다.
근데 여느 때의 느낌과는 확실히 달랐다. 아랫배가 싸르르하게 아픈 게, 오랜만에 느끼는 생리 첫날 같달까.
화장실로 바로 가서 이슬 비침을 확인했는데, 아닌가 싶기도 하고, 또 이슬이 비친다고 분만으로 이어지진 않는다고 해서 좀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바로 진통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진통을 기록하고 남편을 깨웠다.
“나 뭔가 아랫배가 아파. 이슬 비슷한 걸 본 것 같기도 해.”
다섯 시에 깬 우리는 ‘이슬 비침’, ‘막달 이슬’, ‘이슬 출산’을 검색하며 잠을 못 이뤘다.
의외로 규칙적인 진통이 아침까지 없어서 어제 남겼던 단팥빵을 야무지게 먹었다.
그리고 출산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느낌에 분유 포트와 열탕 냄비 연마제를 열심히 제거하고,
며칠째 열어놓은 출산 가방용 캐리어에 나머지 짐을 넣은 뒤 문 입구에 세워뒀다.
(이때까지만 해도 난 며칠 뒤에 출산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중간중간 1분 내외로 느껴지는 진통도 앱에 기록해뒀는데, 아픈 정도는 세지 않고 쿡쿡쿡 쑤시는 느낌이었다.
점심쯤 되어, 남편이 점심 준비를 했다. 그때부터 진통이 세지는 느낌이 들어, 점심을 스킵했다.
입맛이 없어서라기 보다도, 오늘 만약 분만을 하게 되면 공복시간으로 인한 수면마취가 불가능할 수 있어서였다.
오후 4시쯤 조금 센 진통이 30초간 느껴졌다. 그리고 그 간격이 15분 정도에 한 번씩 찾아왔다.
때가 왔구나, 병원에 전화를 하고 집을 나섰다.
출산 후에 남편이 말하길 그날 왠지 집에 다시 돌아올 것 같았다고 한다. 분만을 막 앞둔 사람이라기에는 꽤 의연해 보였다고 한다.
사실 의연했다기보다 진통이 짧고 꽤 규칙적이어서 30초만 지나면 평화가 온다는 생각을 하며 꾹 참았던 것 같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쯤에는 배를 부여잡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는 바로 내진검사를 했다. 이미 4cm가 열려있단다.
그때까지는 꽤 덤덤했다.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오늘 손주 보시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친구들 카톡방에도 바로 오늘이라고 알렸다.
일요일이기도 했고, 책임 분만제 병원이라 의사 선생님을 기다렸다.
점점 진통이 세졌다. 진통이 올 때는 숨도 못 쉬게 아팠다. 사실 자연분만이라면 4cm가 열렸을 때쯤 무통주사를 맞을 수 있는데,
제왕절개라 꾹 참으며 선생님을 기다렸다. 진통이 올 때 뭐라도 붙잡고 싶어 남편 손을 잡았는데 손에 피가 통하지 않을 정도로 꽉 잡았다.
7시쯤 선생님이 오셨다는 이야길 들었고, 드디어 수술실로 들어갔다.
8개월 정도 꾸준히 진료를 봐주신 선생님이 들어오시면서 “분만 진통을 다 겪었네요. 고생했어요 정말.”이라고 말씀하시는데
이미 출산을 한 것처럼 마음이 놓이고,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본격적인 분만 시작인데도 말이다.)
그리고는 소변줄을 꼽고, 간호사 선생님과 마취 전문의 선생님 지시에 따라 옆으로 누워 무릎을 감싸안는 새우등 자세를 했다.
척추 쪽에 하반신 마취 주사가 들어갔다. 그때까지만 해도 몸이 덜덜덜 떨리고 추웠는데, 주사가 들어오니 하반신이 뭔가 점점 따뜻해졌다.
그리고 바로 누워 몸 위로 천이 둘러지고, 나의 배 위쪽에 커튼이 쳐졌다.
수술의 느낌은 나는데, 고통은 전혀 없어서 생각보다 무섭지 않았다. 15분 정도 지났을까, 마침내 우렁찬 “응애” 소리가 들렸다.
간호사 선생님이 “아기 건강하게 나왔어요~” 하며 남편을 데리고 들어왔고, 아기를 보여주시고 가족사진 촬영도 해주셨다.
정말 정신없는 와중이긴 했지만 내 뱃속에 있던 아기가 생각보다 작고 여려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물론, 사진 찍을 때만큼은 렌즈를 똑바로 쳐다보고 미소를 지었지만 말이다.
그리고 다행히 점심을 거른 덕분에 공복시간이 유지되어 수면마취에 들어갔고, 한 시간 정도 후처치를 한 뒤, 회복실로 옮겨졌다.
예정일보다 10일 정도 일찍 태어났으니 약 270일 정도를 뱃속에 있었고,
미미한 진통을 제외하고, 아프다 싶은 진통은 약 4시간 정도를 겪었고,
수술 시작 15분 만에 아기가 태어났다.
후련할 것 같았던 임신부로서의 신분이 이렇게 종지부를 찍게 되었다.
물론, 생각보다 후련함은 짧았고, 또 다른, 아주 새로운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