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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 사람 Sep 14. 2021

제왕절개는 할부라고요? 제왕절개 생생 후기

아이를 품는 일

임신을 하고 점점 배가 불러올 무렵, 나는 어떻게 출산을 할지 고민해본 적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체력도 양호하고, 골반도 좋은 편인 것 같고, 무엇보다 일시불을 선호하는 사람인지라 자연분만으로 결정이 치우쳐있었다.

또 다니는 병원의 입원비가 만만치 않아서 입원기간이 긴 제왕절개보다 자연분만이 효율적이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러나 막달쯤 아기의 머리가 10cm가 넘어서 아기의 건강과 순산을 위해 제왕절개를 선택했다.

38주 4일차 초음파, 위에서 본 태아의 머리. BPD는 biparietal diameter 로 태아의 머리 직경이다. 10cm가 넘어버렸다.


D-day, D+1


예정된 날짜에 낳았더라면, 아마도 전날에는 긴장이 되어서 잠을 설쳤을 법했는데, 일주일을 앞당겨서 나오는 바람에 그럴 겨를도 없었다.  

흔히들 자연분만은 분만 전에 느끼는 진통부터 낳는 순간까지 꽤 큰 고통이 있지만 회복이 빠른 편이라 일시불에 비유하고,

제왕절개는 분만의 고통은 비교적 작지만 회복이 더디고 수술부위의 아픔이 꽤 오래가는 편이라 할부에 비유하곤 한다.

생각해보면 10cm 정도를 절개하는 수술인데 아무는 데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저녁 분만이기도 했고, 분만 당일은 마취에서 풀리지 않아 아픔보다는 불편함으로 날을 지새운 것 같다.

입원실이 나오지 않아 딱딱한 가족 분만실 침대에 누워 말똥말똥한 정신으로 TV를 시청하고, 태어난 아가의 사진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냈다.

새벽 3시쯤 됐을까, 마취가 거의 풀린 느낌이 들 무렵 간호사 선생님께서 들어오셔서 배 위에 있던 뜨끈한 모래주머니를 빼주시고,

침대 패드 교체와 소변통을 비워주시고, 항생제와 진통제를 링거에 투여해주셨다. 조금 가뿐한 마음이 들어 이때 조금 잠을 잘 수 있었다.

정오가 되었을 때,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소변줄을 뺐다. 그리고 다행히 입실 가능한 입원실이 생겨, 걸어서(!) 이동했다.

물론 어기적 어기적 수액걸이에 몸을 의지하고 남편의 도움을 받으며 겨우 이동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저녁 수술이었는데, 벌써 걷냐며 회복이 좋다고 간호사 선생님들께서 칭찬을 해주셔서 괜스레 뿌듯했다.

보통 수술 다음날 소변줄을 떼고, 첫 과제가 바로 4시간 내 소변을 보는 일이다.

다행히 2시간 만에 소변을 봤고, 저녁 6시 드디어 32시간의 공복 후 첫 끼를 먹었다.

 

워낙 공복이기도 하니, 첫 식사로는 미음과 미역국이 나온다. 그리고 이제부터 미역국의 향연이 펼쳐진다.

아무리 페인 버스터를 하고, 간호사 선생님께서 주기적으로 진통제를 놓아주시지만, 누웠다가 앉는 것, 앉았다가 일어나는 것조차도 너무 힘들었다.

화장실 가는 것도 남편에게 부축을 받으며 가고, 자다가 자세를 바꾸려고 움직일 때도 찔끔찔끔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이때만 해도, 며칠만 지나면 퇴원을 할 수 있단 말이지? 그게 가능이나 할까? 싶을 정도로 처음 겪는 욱신욱신함이 있었던 것 같다.


Day+2


드디어, 아가의 얼굴을 볼 수 있는 날이다. 코로나다 보니, 자유롭게 모자동실 시간을 갖는 것도 어려웠고,

또 최소한의 수술 회복 시간이 필요해 바로 아기를 만나는 게 어려웠다.

물론 허락된 면회시간도 오후 12시, 저녁 7시 유리창을 사이에 둔 10분도 안 되는 시간이지만, 그 시간이 그렇게 소중하고 기다려졌다.

물론 만날 때마다 눈을 감고 있거나 자고 있었지만 오물거리는 입이나 찡그리는 표정이 신기해 열심히 카메라로 담았다.

이때부터 나를 비롯해 가족 모두의 휴대전화 사진첩의 지분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침, 점심, 저녁 식후에는 열심히 병원 복도를 걸었다. 수액걸이에 의지해서 어기적 어기적 몇 바퀴 돌기이지만 회복에 도움을 준다니 열심히 했다.

저녁에는 수액 바늘도 제거하고, 수술부위가 잘 아무는지 검진을 받은 뒤, 새로 드레싱도 했다.

여전히 앉았다 일어나는 것, 움직이는 것이 모두 어렵지만 팔에 꽂혀있던 바늘이 없어지니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들었다.


Day+3


조금이라도 배에 힘이 들어가면 억 소리가 절로 나고 심히 아프기 때문에, 수술 후 첫날 문득 걱정이 됐던 게 바로 ‘대변’이었다.

자연스럽게 복부에 힘이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그 고통을 상상했을 때 너무 잔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래서 주는 약이 ‘변을 무르게 하는 약’이다. 세상 이런 약도 있다니, 현대의학 최고다.

수술하고 2일 뒤부터 먹었는데, 덕분에 정말 편하게 일을 볼 수 있었다.

식사 후 수액걸이와 함께 복도 걷기가 당연한 일상이 될 무렵, 신생아 실의 콜이 왔다. 바로 ‘수유’였다.

아이를 직접 안을 수 있는 시간이기에, 떨리는 마음으로 신생아실 옆 수유실에 갔다.

신생아실 선생님께서, 안는 방법이나 수유자세 등을 친절히 알려주시는데 아기가 너무 작고 소중해 온몸에 힘이 들어갔다.

젖을 물어보겠다고 작은 턱과 입을 바쁘게 오물오물 거리는 것이 뭉클하고 또 기특했다.

물론 처음이라 어색하기만 하고, 또 코로나로 마스크까지 쓰고 수유를 하려니 아기 얼굴도 잘 안 보이고 더욱 어려웠다. (여러모로 망할 코로나다.)

15분 정도의 짧은 수유시간을 마치고, 선생님께서 유축기 사용 방법을 알려주시며 젖병과 함께 유축 과제를 내어 주셨다.

오후 다섯 시쯤 됐을까, 처음으로 유축이란 걸 해 보았다. ‘이게 그 말로만 듣던 초유인가?’ 싶은 노란색 모유가 나왔다.

신생아실로 20~30분 정도 열심히 유축한 초유를 가져다 드렸다.

선생님께서 “아유 우리 아기 배불리 먹겠네요”하는데 태어나 처음 엄마 노릇이라는 걸 했구나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더딘 회복과 함께 유축이라는 또 다른 세계가 열렸다.

처음으로 아기와 교감했던 수유시간, 그 와중에 잘생긴 귀. 그리고 첫 유축.


Day+4


누운 자세에서 앉거나 일어설 때 배로 전달되는 아픔이 여전히 큰 편이었지만, 누운 상태에서 자리를 바꾸거나 걸을 때 느껴지는 고통은 확실히 줄었다.

수액걸이가 없어도 천천히 걸을 수 있는 정도가 되니, 화장실 가기도 한결 수월해졌다.

전날 약 3일 만에 머리를 감았더니, 몸도 기분도 확실히 개운한 느낌이 들었다.

4시간 정도의 간격으로 열심히 유축을 해서 신생아실로 모유를 나르고, 하루 두 번 면회시간 외에 오전에 한번, 오후에 한번 수유시간을 가졌다.

미역국이 항상 있는 식사이지만, 입맛에도 잘 맞고 또 질 좋은(?) 모유를 주고 싶은 생각에 골고루 잘 먹으려고 했다.

다섯가지 반찬에, 미역이 가득한 미역국.

오후 무렵에는 외래 진료를 받았다. 2층에 위치한 진료실에서 의사 선생님을 뵙고, 수술한 부위의 실밥도 제거하고, 초음파 검사도 진행했다.

다행히 수술 부위 회복도 좋고, 자궁수축도 잘 되고 있었다. 그리고 드디어 내일! 퇴원도 할 수 있다고 하셨다.

간호사 선생님께 퇴원 선물도 받고 신생아 목욕, 수유 등에 대한 신생아 관리 교육도 짧게 들었다.

물론 바로 산후조리원으로 갈 계획이었지만, 아기와 함께하는 새로운 삶이 성큼 다가온 느낌이 들었다.


Day+5

수술부위가 아물고, 앉고 일어서기도 꽤 편해지면서 ‘나 좀 회복이 빠른가 보다.’ 하는 건방진 생각이 들 무렵, 젖몸살 비슷한 게 찾아왔다.

가슴이 단단해지고, 열감이 생겨 퇴원을 앞둔 새벽에도 잠을 못 이루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이다 유축을 하고

유튜브로 젖몸살, 가슴 마사지 관련 콘텐츠를 열심히 찾아보기도 했다.

빨리 산후조리원에 가서 푹신하고 편한 침대에 눕고, 마사지로 붓기며 뭉친곳이며 다 풀어주고 싶다는 생각이 참 간절하게 들었다.

5일 동안 있었던 입원실. 꽤 쾌적한 편이지만 침대가 참 불편했다. 생각하면 참 나쁜 입원실 가격. 특히 한 체격하는 남편은 저 간이침대에서 꾸깃꾸깃 지냈더랬다.

아침밥을 먹고 나니, 이제 신생아실 면회가 아닌 신생아실에서 아기를 데려와야 하는 순간이 왔다.

부랴부랴 방을 정리하고, 짐을 싸고, 수납을 했다. 그리고 신생아실 앞에서 담당 소아과 선생님을 만나 아기의 건강 상태, 발육 등 전체적인 아기 상태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특히 아기 혈액형이 O형이라고 하셨다. 나와 남편 모두 B형인데 나름 낮은 확률로 O형이 나와 괜히 특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툼한 이불 같이 생긴 겉싸개로 꽁꽁 싸맨 아기를 드디어 안았다. 아직 수술 부위의 통증도 느껴지고, 젖몸살로 잠도 못 잔 상태였는데

아기를 보는 순간 아픔이 싹 잊히고 책임감 같은 게 불끈불끈 솟았다.

퇴원하던 날 마주한 아기. 생후 6일차.


살면서 5 넘게 입원해본 적이 없고, 10cm 꿰매야 하는 상처가 난적도 없는  같은데 그렇게 보면  인생에서 가장 큰 수술이었던  같다.

때문에 앉을 때마다 이렇게 욱신거릴 줄 몰랐고, 걸을 때마다 이렇게 찌릿찌릿한 느낌이 있을지 상상도 못 했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 그런 아픔은 시간이 갈수록 작아지고, 진통제도 있다 보니 견딜 만도 했다.(과거는 추억이 된다고 하죠 ㅋ)

그러나 딱딱한 침대에서 불편한 몸으로 잠이 안 와  눈으로 밤을 보냈던 ,

코로나라 가족을 만나는 게 불가능하고, 아기조차 마음대로 볼 수 없었던 상황이  답답하고 힘들었었다.

결론은 할부든 일시불이든 세상에 모든 임신과 출산은 정말 위대하다. 물론 나도 그 위대한 일을 해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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