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를 키우는 일
제왕절개로 입원기간이 꽤 길었고 산후조리원 2주까지 하면 아기와 집에 왔을 무렵엔 어느덧 생후 20일쯤이 되어있다.
그렇게 보면 생후 50일까지 약 한 달간의 짧은 육아 고군분투 기록이지만, 30번은 울었고, 300번의 기분이 요동친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다.
나는 산후우울증 따위 없을 것이라 자신했지만 ‘잠’이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변하게 하는지 뼈저리게 느꼈던 순간이었다.
[산후 조리원 생활 요약]
2주 동안의 규칙적인 조리원 라이프는 단조롭고, 잔잔했다. 특히 코로나 때문에 모여서 배우고, 이야기하는 시간이 없어서 더 그랬는지 모른다.
하루 일과를 한 줄로 요약하면, “아침, 점심, 저녁 세끼와 두 번의 간식, 한 번의 마사지, 두 번의 모자동실, 3~4시간 간격의 유축 또는 수유 콜”이다.
조리원이 천국이라고 하지만, 막상 조리원에 들어와 보니 그 생활이 딱히 막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물론 따뜻한 도자기 그릇에 담긴, 맛 좋고 영양 가득한 식사와 호사스러운 마사지는 지금도 그립지만,
약간의 비현실적인 상황(이건 다분히 개인적인 느낌이다)과 이때부터 시작되는 쪽잠 생활,
모자동실에서 느끼는 막연함과 아찔함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특히 새벽녘 단단하고 무거워진 가슴 때문에 유축을 하는 30분의 시간은 참 생소하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이 루틴이 꽤 적응이 될만해지면 집으로 돌아갈 날이 훅 다가온다.
그때부터 육아 학습 모드와 쇼핑 잠재력의 시너지로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을 사들이며 성공적 현실 육아의 입장을 위한 만발의 준비를 했다.
이론과 이렇게 다를 수 있구나 싶은 게 바로 육아인 것 같다.
10년이 넘는 회사 생활을 하며, 위기상황 시 대처능력이나 이성적인 판단을 내리는 부분에 대해 굉장히 훈련되어 있다고 생각했는데
처음 겪는 ‘엄마’라는 신분 그리고 책임져야 할 ‘신생아’와 지내는 일상은 하루에도 몇 번의 위기는 물론,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할 순간을 마주했다.
위기의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울음’에 대한 대처의 경우, 이게 배고픔인지 졸려서인지, 기저귀 때문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 올바른 판단을 내리기 어려웠다.
특히 너무 ‘자주’ 울기 때문에, 분명 1시간 전에 밥을 줬는데, 또 기저귀를 막 갈았는데도 우는 경우 도대체 뭐 때문인지 모르겠는 때가 많았다.
조리원에서 돌아와 대혼란을 겪고 있을 무렵, 산후도우미 선생님은 나에게 정말 큰 도움이 되었다.
약 2주 (Working day로 10일) 동안 함께해주신 도우미 선생님 덕분에 체력적인 보충은 물론, 아기의 신호를 파악하는데 장족의 발전을 이뤘다.
물론 만나는 선생님이 누구냐에 따라 만족감은 다르겠지만, 나는 좋은 선생님을 만나서 불편 없이 지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선생님께서 계시는 9시부터 6시까지 나는 잠을 자거나, 가벼운 산책을 하거나, 그리고 단유 마사지를 받으러 가기도 했고,
선생님께 수유나 목욕 노하우를 전수받기도 했다. 그리고 육아는 물론 집 청소와 간단한 반찬도 만들어주셔서 참으로 든든했다.
특히 안정적인 수유 패턴이 만들어져, 1~2시간밖에 잘 수 없었던. 아니, 눈만 감았던 그 새벽시간이 나름 2~3시간 잠의 형태로 발전했다.
약 3시간 또는 3시간 30분 간격의 안정적인 수유 패턴이 잡힌 것이다. 수유 패턴만 잡혀도 아기 울음에 대한 내 판단에 믿음이 생기곤 했다.
생후 30일을 신생아 졸업이라고 하지만, 개인적으로 생후 50일 전후가 신생아 졸업으로써 의미가 큰 것 같다. 아기의 성장이 보이는 타이밍이랄까.
낮시간에도 늘 입고 있던 속싸개나 스와들업도 잘 때만 사용하게 되고, 배를 바닥에 깔고 고개를 드는 터미 타임도 끙끙해내려고 하고,
흑백모빌에도 꽤나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고, 목 튜브와 함께 욕조에서 아기 수영도 즐기는 시기가 약 50일쯤 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스스로도 엄마로서의 신분을 조금씩 받아들이는 때가 이쯤 인 것도 싶다.
[50일까지 아기 성장 요약]
먼저, 50일까지 62.5cm, 5.7kg 정도로 자랐다. (현재까지 키가 크고, 몸무게도 조금 나가는 편인 아기다.)
1. 수유
조리원에서 왔을 때만 해도 80ml를 겨우 먹고, 들쑥날쑥했던 시간이 50일쯤 되면 점차 120~130ml 3시간 30분에서 4시간 정도의 텀이 생성되고,
하루 6~7회 정도를 먹는다. 50일의 기적이라 함은 새벽 수유가 2번에서 어느덧 1번으로 줄어든다.
물론 한번 수유할 때마다 중간에 끊고 트림을 시켜서, 늘 10분은 넘게 걸렸다.
2. 수면
안아서 재워야만 했고, 등 센서까지 제대로 있었다. (50일 무렵 수면교육을 한 결정적 이유)
안아서 재우다가 잠이 들었다 싶을 때 침대에 내려놓으면 그 순간 바로 눈을 뜨거나 울었더랬다.
조리원에 오자 마자부터 새벽에도 누워서는 안 자려고 하고, 누워서 자더라도 1시간을 넘기기 어려워, 안은 채로 겨우 선잠을 자곤 했다.
팔이 너덜너덜 해지는 것은 기본, 아기가 잘 때 쉬어야 하는데 도저히 쉴 수가 없어 생후 47일 무렵 본격적으로 수면교육을 시작했다.
곽윤철 수면연구소 유튜브를 열심히 봤고, 베이비 골드 위스퍼 책을 틈틈이 읽으며 나름대로 수면의 규칙을 만들었다.
- 안고 있을 때 잠이 들려고 하면 침대에 바로 눕히고, 쪽쪽이를 물리고, 잠깐 동안 모빌을 보여줬다.
- 중간에 잠이 깨서 울 때는 다시 잠들 기회를 스스로에게 주려고 했다. (즉, 바로 안아주기보다는 조금 지켜봤다.)
이때 울음은 사실 얕은 잠 속에서의 무의식적 반응이고, 오히려 안아서 잠에서 깨버리게 하기 때문이었다.
대신, 곁에 있으며 불편한 부분이 없는지 지켜봐 주고, 아기가 깨어있을 때 충분히 안고, 눈을 마주치며 웃고, 놀아줬다.
결과적으로 등 센서는 금방 졸업했고, 생후 7개월인 지금은 자기 방 자기 침대에서 잘 잔다.
3. 놀이
일명 국민 모빌이라고 하는 타이니러브 모빌을 친구로부터 얻어 쓰게 되었는데, 왜 국민인지 새삼 실감이 났다.
노래도 나오고, 움직이기까지 하니 아이에게 꽤나 자극을 주는 놀이인 듯하다. (모빌 덕분에 잠깐의 휴대폰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긴다.)
50일 전에는 바운서고, 모빌이고 큰 의미 없이 철저히 몸을 써야 하는 육아였다면 50일쯤에는 모빌에 집중하는 시간도 늘고,
초점책도 흑백, 빨간색 등에 조금씩 반응한다. 특히 엄마와 아빠의 목소리와 가까이 있는 사람에도 곧 잘 반응한다.
배냇짓이었겠지만, 잘 자고 일어났을 때 보여주는 미소는 나와 큰 상호작용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산후우울증은 100% 옵니다. 다만, 그 정도가 1이냐 100이냐의 차이일 뿐입니다.” (오은영 박사님의 말로 기억함)
아기가 생후 48일쯤 되던 어느 날, 아기를 겨우 재우고 거실에 나와 펑펑 울었던 적이 있다.
울면서 “지금이 행복하지 않아. 지금 이 힘든 순간이 분명 지나갈 텐데, 이 임시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어.”라고 남편에게 말했었다.
주 양육자로써 느끼는 책임은 버거웠고, 아기와 단 둘이 있는 그 시간은 혼자일 때보다도 더 외로운 시간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산후우울증이었던 것 같다.
갑자기 달라진 나의 생활 패턴, 앞으로 펼쳐질 육아의 막막함 등 처한 현실과 여러 생각이 뒤섞여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정도로 치면, 한 20쯤 됐을까. 경미한 수준이긴 했어도 처음 느끼는 혼란함은 꽤 묵직했다.
그래도 남편, 엄마, 언니, 친구 덕분에 차츰 마음의 평정을 찾았다. 물론 아기와 함께하는 날들이 쌓일수록 우리의 케미(?)도 높아졌다.
그리고 밤 9시 이후에는 산책이나 필라테스 등 나만의 시간을 ‘밖에서’ 꽤 건강하게 가지려고 노력했다.
생각해보면 그날 이후로 육아 때문에 운 적은 없다. 그렇다면, 혼란한 시기를 잘 넘어왔다는 말 아닐까?!
여전히 초보 딱지가 있는 엄마지만, 요즘엔 막막함 보다는 기대감이 더 크다. (물론, 한 49대 51로 기대감이 조금 앞선 것 같다.)
심지어 이렇게 빨리 크는 아기가 조금 아쉽기까지 하다. (근데 이 생각은 자주 바뀌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