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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하는 사람 Nov 11. 2021

생각보다 기적은 없더라. 생후 100일까지의 육아일기

아이를 키우는 일

백일만을 기다려왔다. 백일의 기적이라는 말을 너무도 많이 들어서 육아의 힘든 순간에, “그래 백일만 와라.” 하는 마음이 있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그것은 국룰. 생각보다 드라마틱한 기적은 없었다. 대신 드라마틱하게 머리가 숭숭 빠졌다. 그것은 백일의 기절.

생후 50일 부터 손싸개를 빼주기 시작했다. 손싸개를 빼줘도 평소에 손을 꽉 쥐고 있어 손에서 쿰쿰한 냄새가 났었다. 터미타임도 제법하는 50일 이후 아기.

거의 봄이 가까운 2월 말의 늦겨울에 태어난 아기다 보니 100일이 가까워질 무렵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했다.

그래서 일찌감치 낮에는 바디수트만 입혔고 손싸개도 빼줬다.

혹시라도 얇은 손톱 때문에 얼굴에 상처가 나지 않을까 싶어 이틀에 한번 꼴로 손톱을 체크하고 긴 손톱은 부들부들 떨며 다듬어줬다.

이쯤부터 아침마다 따뜻한 정수물에 적신 가제 손수건으로 입안도 닦고, 얼굴이랑 손도 닦고, 촉촉한 로션도 발라줬다. 나름대로 아침 세수 루틴이었다.

가끔 아기 닦는 일은 그렇게 열정적이면서, 정작 세수도 못한 나 자신을 발견할 때 자괴감이 오기도 했다. 물론 요즘도 자주 느낀다. 자괴감ㅎ.   

특히 이 시기에 손싸개를 빼긴 해도, 여전히 주먹을 꽉 쥐고 있으니 땀이 차서 쿰쿰한 냄새가 나기도 한다.  

처음에 내가 상상한 신생아 냄새가 아니라 놀랐지만, 그게 또 그리워지는 신생아 특유의 냄새다.


[100일까지 아기 성장 요약]


1. 수면 

낮잠이 정말 짧은 아기였다. 한 시간 이상을 겨우 자고, 거의 40~50분 정도를 4번 정도 나눠서 잤다.

대신 밤잠이 잘 형성되어, 8시가 넘으면, 제법 긴 밤잠을 잤다.

생후 50일 이후에는 밤잠이 꽤 자리가 잡혀서, 7시 반 막수 후 밤잠에 들면, 11시쯤 꿈수를 해서 잠을 연장시켜줬다.

꿈수는 아기가 자고 있는 동안 빨기 반사를 이용해 수유를 해주는 건데, 정말 깨지 않고 분유를 꿀꺽꿀꺽 먹고, 새벽 4까지는 쭉 자줬다.

생후 76일부터는 꿈수를 끊고 통잠의 형태를 띠기 시작했는데, 8시 반부터 4시 반~ 5시 정도까지 약 8시간 정도의 시간이었다.

이때부터 새벽 수유는 정말 끊었고, 분리 수면을 시작했다. 완전히 통잠의 형태로 자리 잡은 건 120일 정도가 지나서였다.


2. 수유

의외의 소식가로 하루 700~800ml를 겨우 먹었는데, 한 번에 160ml 정도를 먹고 꼭 나눠서 먹었다.

80ml 정도를 먹고, 트림을 시켜주고 남은걸 먹이는 식이었고, 총양을 채워주려고 하루 5번씩 수유를 했다.

수유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 편이라, 80일 무렵에 젖병을 바꿔줬는데, 젖병 탓인지 성장하면서 습득한 것인지 먹는 속도가 빨라지긴 했다.

6개월이 지나서는 200ml 10분 컷. 7개월에 자기가 젖병을 들고 스스로 먹었다.


3. 놀이

조금씩 놀이의 의미가 생기는 시기인 것 같다. 50일 이후 아기 체육관을 개시해줬는데, 피아노 건반을 신나게 발차기로 두드렸다.

물론 의도적으로 두드리는 행동은 아니었을게다. 모빌에도 꽤 집중하고, 불이 반짝이는 튤립 사운드에도 약간의 흥분을 보였다.

주먹 탐색전이 시작되고, 간간히 커다란 주먹을 입안에 넣으려고 시도하기도 한다. 이름하여 주먹 고기 발달과정이다.

선선한 오전이나 늦은 오후에는 아기띠를 하고 아파트 한 바퀴를 돌거나 가까운 카페에서 라떼를 사 오는 나름대로의 산책을 즐기기도 했다.


아기 체육관과 모빌은 아마 100일 전후 아가를 둔 집은 필수템 인 듯 하다. 엄마에게 10분이라도 여유를 주는 고마운 아이템이다.


집에서 간소하게 백일을 축하하고, (간소한 듯 간소하지 않았던 것 같다.) 곱게 한복을 입은 아기의 사진을 인스타그램에 올렸었다.

축하와 함께, 아기를 기르고 있는 주변 친구들이 “고생 많았다.”라는 의미의 댓글을 달아줬는데, 그게 참 고맙고 뭉클했다.

큰 시험을 치른 사람에게, 중요한 보고를 마친 사람에게 으레 하는 말이 “고생 많았어.”인데, 아기의 백일에 들은 이 말이 왜 이렇게 찡했는지

아무래도 호르몬의 영향이 컸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뭐랄까 백일 간의 여정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달까.

큰 병치레 없이 아기를 키운 나 자신, 잠과의 사투를 벌이며 어쨌거나 백일까지 끌고 온 (아니 끌려왔을까) 나 자신,

이제는 제법 아기와 상호작용을 하며 아기를 재우고, 먹이고, 입히고, 씻기는데 능통해진 듯한  자신이 조금 대견하기도 했다. (자기애 충만)

물론, 처음 겪었을 세상과 삶에 백일 동안 잘 적응하며 자라준 아기도 기특하고 고마웠다.

짜잔! 하고 등장한 기적은 없었지만, 백일을 돌아보니 하루하루 서서히 우리 세명이 ‘가족’으로 살게 되고, 각자의 역할을 채워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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