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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린 Feb 12. 2024

기록은 내 삶을 이끄는 꿈이었다.

나에게 기록은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쉬운 도구였다.


어린 시절 나는 유난히 책을 좋아했다. 글을 읽기 시작할 무렵부터 거실에 앉아 그림책 시리즈를 하루종일 읽었던 아이였고, 제법 구체적인 진로를 고민할 즈음에는 작가의 꿈을 꾸며 자랐다. 스무 해까지만 해도 짧은 인생 동안 단 한 순간도 책이 나를 대변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 그만큼 읽기와 쓰기를 오래 사랑했기에 자연스레 대학도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글을 잘 쓰기는 쉽지 않았고 날고 기는 친구들도 숱하게 많았다. 무엇보다 가장 견디기 힘들었던 일은 순수 문학만으로는 밥 벌어먹기 힘들다는 현실을 직면해야 했을 때였다. 교수님들의 지겨운 조언과 선배들의 적나라한 취업률을 보며 글로 밥 벌어먹겠다는 꿈은 빠르게 접었다. 그 다음으로는 어떻게 해야 좋아하는 일을 잘 하는 일로 만들어서 돈을 벌지 고민하는 게 전부였다. 문과였으니 자연스럽게 마케터를 꿈꾸기도 했으나 막상 경험해보니 나와 맞지 않는 일이었다. 고민을 거쳐 MD로 직군을 전향하고 건강이 나빠지면서 이직을 하며 BM으로 또 직군을 바꾸었다. 그러더니 이제는 핸드메이드로 다이어리를 만드는 수공예 일을 겸하고 있다.


대학을 졸업할 즈음, 내 힘으로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을 찾아서 직을 선택해왔지만, 독립한 순간부터 단 한 번도 내 업이 무엇인지는 고민하지 않았던 것 같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고 앞으로도 먹고 살 수 있어야 한다는 사실만이 중요했으니까. 직업에서 직을 우선으로 살아온 셈이다. 그런데 갑자기 홀린 듯 내 업에 대해 다시 정의해보고 싶어졌다.



돌이켜보면 나는 단 한 순간도 창작을 놓지 않았다. 중학생 시절부터 꾸준히 다이어리를 쓰고 있고 대학 시절에는 전공으로 글을 썼다. 직장인 시절에는 일기를 쓰고, 문구 작가로 그림을 그려서 굿즈를 판매했다. 그러다 이제는 손으로 다이어리를 만들고 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내 삶의 모퉁이에 앉아, 조금씩 만드는 일을 놓지 않았던 셈이다. 그렇게 만드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문장을 정리하고 나니, 잊고 있던 꿈이 떠올랐다.


잊고 지냈던 나의 오랜 꿈. 스무 살 무렵까지 나의 꿈은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일을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어렵고 힘든 시기를 책으로 버티고 글을 쓰며 나름대로 답을 찾아가면서 나도 그런 글을 쓰고 싶다는 꿈을 오래 꾸어왔었다. 비록 책 속의 문장을 남기는 사람으로 지내지는 않지만, 꼭 직접 글을 쓰지 않더라도 내가 하는 일로 다른 사람들이 문장을 쓸 수 있도록 돕는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나에게 기록은 행복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가장 쉬운 도구였으니까. 비교적 다른 경험이나 방법에 비해 경제적인 편이고, 손쉽게 나를 직면하고 돌볼 수 있는 수단이라는 특성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여태까지의 직보다 오늘의 직이 더 다른 사람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수 있는 수단에 가깝게 느껴진다.


내 작품으로 단면적으로든 심층적으로든 누군가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 있다면 그게 현 시점에서 내 업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다음의 향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하고 싶은 일에 충실한다면 그 다음의 일도 내 꿈에 닿을 수 있을 거라는 사실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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