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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Aug 26. 2023

나는 엄마가 불편하다.

엄마와 나는 상극이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그녀가 하는 모든 말이 몸서리 쳐지게 싫었다. 매일 전쟁 같은 충돌을 견디다 못해 6년 전 원룸을 얻어 집을 나왔다. 눈에서 멀어지니 다툴 일이 없었고 오히려 가끔 엄마 밥이 그립거나 애틋해지기까지 했다. 내가 결혼을 한 뒤 딸아이를 낳고 다음 해 복직하기 전까지는 그랬다. 출산하기 직전, 부모님이 30여 년 동안 운영했던 고깃집이 문을 닫았다. “그동안 고생했소” 이렇게 서로 어깨를 토닥이는 아름다운 은퇴였으면 좋았으련만 자금 사정으로 인한 강제 영업 종료였다. 살던 집까지 정리하고 나니 갈 곳이 없던 아빠는 일자리를 찾으러 지방에 내려갔고 엄마는 서울에 홀로 남았다. 결국 우리 집 근처에 방을 하나 얻어 드리고 내가 복직하면서 자연스럽게 엄마가 육아에 동참하게 되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만난 그녀와 나는 부딪히기 시작했다. 남편의 보는 눈도 있으니 최대한 참으며 노력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 안의 시한폭탄은 커져가고 있었다. 남들은 쉬이 이해하지 못할 나의 분노 포인트들을 나열해 본다면 밤을 새워도 모자랄 판이다. 이를테면 구겨진 것을 참지 못하는 그녀는 사위의 속옷이나 손주의 양말까지 다림질을 하고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몰래 화장실 청소를 한다. 눈이 펑펑 오던 날, 추위에 떨며 밖에 주차된 차에 쌓인 눈을 치우고 시동을 켜 놓고 대기시킨다. 하지 말라는 걸레질을 몰래 하고는 들키지 않도록 걸레를 챙겨가서 빨아온다. 부탁하지도 않은 수많은 일들을 애써 하는 엄마에게 나는 하나도 고맙지 않았다. 아무리 하지 말라고 악다구니를 써도 듣는 법이 없다.

 

“우리 밥 챙기지 말고, 아이 저녁만 하셔요.” 애써 한 부탁이 무색하게 엄마는 퇴근한 딸을 위해 버젓이 밥상을 차려 놓는다. 집에서 일하는 사위 점심까지 화려하게 차려주면서도 절대 밥을 함께 먹지 않는다. 본인은 먼저 배부르게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쓰레기통에는그녀가 먹은 게 확실한 컵라면이 들어있다. 도대체 무슨 마음인 걸까? 본인 밥은 왜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지 그 이유는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최대한 화를 내지 않고 침착하게 말해본다. “먹고 내가 치울 테니까 들어가.” 하지만 엄마는 그냥 갈리 없다. 수명을 다한 것만 같은 어깨 덕에 팔도 올라가지 않으면서 달그락 설거지를 한다. 몇 달 전 구매한 식기세척기는 그녀에게 무용지물이다. “빨리 들어가라고.” “다 했어. 이것만 하고 갈게” 그렇게 30분이 지난다. “들어가 제발” 옆에 있던 아이가 화가 잔뜩 난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빨리 가라고! 왜 도대체 하지 말라면 더 하고 가라면 안 가는 거야!! 몇 번을 말해!!! 제발 남의 말 좀 들어!!” 남편이 거든다. “장모님, 그냥 들어가세요. 저희가 할게요.” 결국 모든 설거지를 다 하고 나서야 말도 없이 집을 나선다.


어느새 내 일상은 3년째 이 같은 상황의 도돌이표다. 얼마 전 나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 엄마에게 육두문자가 나오고 눈이 뒤집혀 물건을 던질 뻔할 걸 꾹 참아냈다. 참지 못했다면 부모한테 쌍 욕을 하고 물건을 던지는 패륜아가 되어 뉴스에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다. 어느새 딸 아이도 내가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에게 소리를 지르는 걸 봤다. 아차 싶었다. 아이 앞에서는 절대 큰 소리 치지 말자고 하루에도 수십 번 손이 아리도록 주먹을 쥐며 참는다. "다, 너 생각해서 그러는 거야." 많은 이들이 나에게 말한다. 물론 일하느라 힘든 딸의 가사 노동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은 안다. 하지만 내가 그녀에게 바라는 건 지나친 희생이 아니다. 그저 아이 밥, 목욕 정도의 기본 케어다. 엄마는 10년 넘게 앓고 지병들로 매일 먹어야 하는 약만 해도 10개가 넘는다. 그만 큼 아픈 곳이 많다. 본인 몸이 건강해야 오랜 시간 딸과 손주를 볼 수 있다는 걸 모르는 걸까? 그녀를 마주하는 매일매일 속이 문드러진다. 서로를 걱정하나 결국 서로를 미워하게 되면서 최악의 불협화음을 쌓아갈 수밖에 없는 걸까?


친구가 부모님과의 문제로 상담을 받은 적이 있다고 한다. 당시 상담사가 말하길 부모와 자식은 다른 관계와 다르게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위와 아래의 관계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단다. 부모가 위, 자식이 아래에 있고 자식이 부모에게 편하게 기댈 수 있어야 이상적이라는 이야기다. 위, 아래가 바뀔 만큼 사이가 벌어지거나 자식이 부모에게 기댈 수가 없는 상황이 되면 싸우게 된단다. 나는 유년 시절 주말에도 일하는 부모님과 겸상해서 밥을 먹거나 대화를 한 기억이 거의 없다. 아무리 힘든 일이 있어도 엄마를 찾지 않는다. 그녀는 내가 기대어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불편했다. 그 상담사의 말처럼 나의 어미가 위를 지키지 못하고 어느 순간 나와 위아래가 바뀌고 흐트러졌을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엄마와 나는 물 흐르듯 편하고 자연스러운 관계가 될 수는 없다. 그 사실이 아쉽고 슬프기 보다는 “아, 그렇구나. 어쩔 수 없지.“ 하고 서서히 받아들이는 중이다. 할머니와 놀고 있는 딸아이를 보며 문득 생각해 본다. 훗날 나는 딸이 마음으로 기댈 수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부모가 되기를 간절히바라지만 그게 쉽게 될 리는 없을 테지. 이게 부모와 자식인가. 참 어렵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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