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아이가 유치원에 입학했다. 정확히 말하면 ‘유아 체능단’이라는 기관이다. 일반 유치원과 달리 수영, 인라인, 발레 등 유아들의 눈높이에 맞춘 체육 활동을 통해 기초 운동능력을 길러주고 한글, 영어 수업도 병행해 지적 발달을 조화롭게 돕는 곳이다. 무엇보다 ‘수영’ 수업이 매일 있어 기초 체력을 길러주는데 이만한 게 없겠다 싶었다. 게다가 언어나 인지 수업도 충분해 전반 커리큘럼이 마음에 쏙 들었다. 입학 후, 아이가 밤마다 울고 아침 셔틀을 탈 때마다 발버둥 치는 바람에 걱정이 컸다. 적응하는데 꼬박 2달이 걸리며 그만둬야 하나 고민했지만 다행히 지금은 체능단 가는 게 제일 재미있다고 할 만큼 잘 다니고 있다. 주 5일 수영 수업으로 얻은 튼실한 허벅지와 있는 “뤠~~빗” 힘껏 혀를 굴리는 영어 발음은 덤이다. “엄마, 나 이제 한 팔 돌리기 진짜 잘해.” 이번 주말, 수영 공개 수업을 한다는데 제 키를 훌쩍 넘는 수심에서 한 팔 돌리기를 하는 아이의 모습이 무척 궁금하다.
2. 팀원 5명을 떠나 보냈다. 모두 이유가 있었다. 남편의 해외 발령, 계약직 종료, 자진 퇴사, 계열사 이동 그리고 육아 휴직이다. 일부 팀원은 개인이나 회사 차원에서 서로에게 더 나은 선택이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 경우, 오히려 속이 시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짐 끝에 결국 남은 사람이 더 힘들지 않던가? 리더로서 업무에 차질이 없도록 하루빨리 후임자를 뽑아야겠다는 생각에 꽤나 스트레스를 받았다. 통상 채용까지의 시간은 최소 1달 이상이 소요되고 인수인계와 적응 기간 등을 고려했을 때 업무가 다시 재생되기까지 3달 이상은 걸린다. 5명의 팀원이 떠나고 올 초 2월부터 9월까지 총 4명의 팀원이 새로 조인했다. 1년의 계약 평가 기간을 거쳐 정규직 전환 심사를 앞둔 팀원도 있고 한창 적응 중인 팀원도 있다. 그간 팀의 톱니바퀴가 예쁘게 맞물려 잘 돌아가나 싶을 때면 늘 하나씩 틈이 생겼기 때문에 걱정은 계속되었다. 예를 들어 기혼자인 여성 팀원들이 임신을 하고 육아휴직 절차를 밟게 되는 경우다. 하지만 이 역시 불가항력적인 일임을 알기에 미리 하는 걱정은 조금씩 내려놓고 있는 중이다. 구성원이 수시로 변경될 수 있다는 전제하에 효율적인 시스템과 인력 운영을 해 내는 것은 결국 리더인 나의 몫임을 또 한 번 깨닫는다.
3. 남편의 ‘배스 낚시’ 취미 생활이 부활했다. ‘배스’는 농어과에 속하는 물고기들인데 흔히 알고 잇는 낚시(낚싯대를 던져 놓고 기다리는 것)와는 다르다. 배스 낚시는 가짜 미끼(루어)를 사용해 주로 민물에서 이루어지며 배스가 있는 포인트를 찾고 입질을 유도해 내기 위해 휘젓고 다닌다. 과거 늘 혼자서 낚시를 갔다는데 나와 연애를 시작하고서 가는 걸 한 번도 못 봤다. 그 후, 결혼하고 아이가 생기면서 시간도 여의치 않았지만 딱히 낚시를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지는 않아서 그러려니 했다. 24시간 집돌이 남편이 점점 더 세상사와 멀어지는 것 같아 내심 안타까웠다. 이 세상에 보고 듣고 경험해 볼 만한 재미난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무엇보다 사람이 살면서 최소한 취미생활은 영위해야 정신 건강에 좋다고 믿기에 남편 취미의 부활이 매우 반가웠다. 1박 2일 낚시를 간다 해도 툴툴대는 척했지만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2박 3일 낚시를 가기 위해 내 눈치를 보는 것도 마냥 귀여웠다. 안타깝게도 남편의 피싱 메이트가 내년부터 함께 낚시를 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소식을 들었다. 와이프가 둘째를 임신했기 때문에 당분간 취미생활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 고민하던 남편은 이제 혼자서는 낚시 가기가 싫은지 스리슬쩍 나를 꼬신다. 남편이 주장하는 낚시의 매력인 ‘손 맛’을 경험해보지 않았고 궁금하지도 않기에 반대로 나는 축구를 같이 하자고 꼬신다. 설마 내년 이맘때쯤 내가 낚시를 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부디 남편이 취미생활이 꾸준히 이어질 수 있기를 격하게 바란다.
4. 가계부를 쓰고 매달 생활비 예산을 책정해 그 안에서 살아내는 연습을 시작했다. 남편과 각자 관리하던 돈을 합쳐 내가 가계부를 쓰고 예산을 책정하며 통합 관리한다. 가계부를 쓴다고 생활비가 팍팍 줄고 저축이 좋겠지만 단 기간에 해내기는 어려웠다. 몇 달 하고 말 게 아니기 때문에 돈 관리를 위한 습관 형성, 정해진 예산 한도 내에서 살아 내겠다는 마인드를 장착에 힘을 기울였다. 먼저, 많게는 월 100만 원 이상 썼던 나의 용돈부터 줄였다. 쉽게 통제가 안 되는 변동지출이었기에 개인 모임 회비 포함 50만 원으로 삭감해 버렸다. 처음에는 턱없이 부족한 것 같고 힘들었지만 쓸데없이 퍼주거나 지나친 만남을 자제하게 되었다. 용돈이 떨어지면 오히려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그 안에서 행복을 찾았다. 식비는 어떤가. 냉장고의 남은 식재료를 바탕으로 주별로 식단을 짠다던지 외식이나 배달도 조금씩 줄여 나갔다. 제일 큰 변화는 신용카드를 끊어내고 체크 카드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카드를 쓰고 후불로 카드 값을 내다보니 수입 이상의 지출이 일어나도 모르고 살아왔다. 일생일대의 변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9월부터 시작한 돈 관리로 월평균 생활비가 20% 줄었다. 무엇보다 가족과 함께 스스로 지출을 통제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 기쁨이 크다.
5. 풋살 대회에서 처음으로 우승을 했다. 내가 소속된 팀은 아니었고 친분이 있는 팀의 인원이 부족해 용병으로 참가한 대회였다. 풋살 대회가 워낙 많기 때문에 대회마다 참가하는 팀의 평균 실력이 모두 상이하다. 어마 무시한 실력을 가진 팀들이 많은 대회도 있고 경험을 목적으로 비기너들이 참석하는 대회도 많다. 내가 용병으로 참가한 팀도 창단한지 반년이 채 안 되었고 대회에 처음 출전하는 인원이 반 이상이었다. 대기하며 예선 경기를 살펴보니 이번 대회의 평균 실력이 그다지 높은 것 같지 않았다. 그렇다고 우승이 쉬운 건 아니지 않는가? 하물며 결승에서 만난 상대는 예선에서 무패로 올라와 그들의 우승이 당연시되었다. 결승 시작 전, 상대팀이 말했다. “3골만 넣지 뭐. 3골만 가자.” 어림없지. 용병으로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했지만 결승까지 올라가게 되자 사력을 다할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1:0으로 우리 팀 우승이다. 처음이자 마지막 골은 역습에서 나왔다. 상대팀의 패스를 끊고 공격수에게 찔러 넣은 나의 결정적인 어시스트가 다행히 득점까지 이어졌다. 골이 들어가는 걸 보고 “와~~~이게 되네.” 짜릿한 어시스트와 환상적인 마무리로 공격수와 내 두 눈은 튀어나올 것만 같았고 연신 “대박”을 외쳐댔다. 상대팀은 당황했고 1득점 이후, 우리는 전원 수비 모드로 골문을 걸어 잠갔다. 그리고 결국 우승했다. 결승에서 나의 어시스트를 생각하면 아직도 심장이 바운스 바운스 난리다. 생각해 보니 예선에서 골도 넣었다. 대회 첫 골. 올해 잊지 못할 짜릿함으로 두고두고 기억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