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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Jul 05. 2024

신입 호텔리어의 OJT

“고객님 체크인 도와드릴까요?”

3주간의 그룹 신입사원 연수를 마치고 드디어 호텔에 출근했다. 지원 당시, 희망했던 객실 세일즈 팀으로 배정받았으나 실무에 투입되기 앞서 현장 훈련 ‘OJT(on the job training)’를 거쳐야 했다. 당시, 신입사원의 OJT는 6개월 프로그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호텔 고객 접점 부서에서 어떤 일을 하는지 직간적 접으로 경험을 쌓고 업무 이해도를 높이기 위한 프로그램으로 프런트 오피스 파트에서 실습을 하게 된다. 특히, 객실 세일즈 팀은 관계 있는 부서(유관부서)가 많기 때문에 그만큼 현장 이해도가 중요하다. 

(직무 상관없이 호텔리어라면 프런트 오피스에 대한 높은 이해도가 필수다)


OJT 프로그램은 객실 팀(프런트 데스크, 클럽 라운지, 벨, 하우스키핑), 식음팀(레스토랑), 조리팀(주방), 기타 연회 판촉 팀 순이었다. 그 중에서도 비교적 현장 실습이 용이한 객실 팀이 약 4개월로 70%를 차지했다. OJT의 스타트는 객실 팀의 프런트 데스크였다. 가장 긴 실습을 진행한 파트로 무려 3개월 동안이나 프런트에 있었다. 초기에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 마냥 뒤에서 쳐다만 보았다. 실습생이었기 때문에 선배 유니폼 중에 핏이 들어 맞는 것을 빌려다 입고 말이다. 선배들은 실제 업무를 하면서 틈틈이 내게 교육을 해줘야 했기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가장 중점적으로 배운 것은 체크인, 체크아웃의 기본 절차였다. 체크인은 고객의 예약 정보를 확인하고 객실료 지불 유무와 수단을 체크한 뒤, 객실을 배정하고 키를 발급한다. 이 과정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시스템 내에서 객실의 준비 상태를 체크하고 배정하는 일이었다. Clean(청소 완료), Dirty(청소 전), OOO(판매 불가한, Out of Order) 중에서 청소 후, 점검까지 완료된 것을 의미하는 ‘Inspected(점검 완료)’ 객실 중에서만 배정이 가능하다. 이 과정에서 ‘고층 객실’, ‘엘리베이터에서 가까운 곳’ ‘레이트 체크아웃’ 등의 고객의 별도 요청사항은 없었는지 함께 확인한다. 

**필요한 요청사항이 있다면 일단 하고 보는 것을 추천한다. 특급 호텔은 최대한 고객의 요청사항을 반영해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요청하지 않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다. 

(예) 객실 업그레이드, 레이트 체크아웃(정규 체크아웃 시간 보다 늦게 체크아웃 하는 것), 

     가습기/공기 청정기 세팅, 뷰 좋은 방 배정 등  

             Clean: 청소 완료 / Inspected: 청소 및 점검 완료 / Out of Order: 수리중 / Dirty: 청소 전 

             OCC: Occupied. 현재 투숙중인 손님이 있는 객실 (Stayover 재실) 

             VAC: Vacant. 비어 있는 객실 (Departed 체크아웃함, NotReserved 예약되지 않음)

             Departed / Arrival (기존 손님 체크아웃 완료. 다음 손님 체크인 예정 객실)

    

예약률이 높을 때는 청소가 늦어져 Clean 객실이 없거나 고객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 예컨대 고객이 가장 높은 층 배정을 청 했으나 이미 만실일 경우, 나 같으면 동공 지진에 손이 덜덜 떨렸을 텐데 선배들의 응대는 달랐다. “너의 객실은 10층이야. 가장 높은 층은 아니지만 덕수궁과 청와대가 보이는 뷰가 끝내주는 방으로 배정 했어. 오늘 객실이 만실이라 가장 높은 층이 아닌 부분은 이해해 줘” (실제로는 고객님 등의 극존칭을 사용한다). 프로페셔널 했다. 고객의 요청사항을 100% 수용할 수 없는 경우, 다른 대안을 제시하거나 보완책을 활용해 고객이 기대하는 그 이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고객이 실망하지 않도록 쿠션 어를 사용하는 것 등 세심한 서비스를 직접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게 OJT의 묘미였다. 


두 번째 파트는 벨 데스크였다. 벨 데스크는 대개 프런트 데스크 근처나 로비에 있으며 투숙 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고객의 짐 관리와 객실로 물품을 배달 등이 주요 업무다. 호텔에 들어서는 고객이 어딘가를 찾을 때, “고객님 도와드릴까요?” 라고 먼저 다가가 안내하며 캐리어를 들고 이동하는 고객에게 “체크아웃 하시나요? 짐 운반 도와 드리겠습니다.” 먼저 묻는 것. 모든 호텔리어가 그렇지만 로비에서 가장 선제적이고 적극적인 응대가 필요한 곳이 벨 데스크였다. 그저 멋있게 폼만 잡고 서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 었다. 간혹 고객을 응대하느라 반대편의 고객을 인지하지 못했을 때 프런트 데스크나 컨시어지 등 다른 파트의 직원이 블루투스 이어폰으로 콜 해준다. “빨간 니트 입으신 남성 고객님 체크인 완료 하셨습니다. 짐 운반 도와주세요.” “네 확인했습니다. 객실로 안내하겠습니다” 로비에 벨 데스크 직원이 보이지 않는다면 다른 고객을 안내 중이거나 고객의 짐을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객실 팀에서 현장 교육을 받던 시기는 8월 말로 한참 성수기였다. 눈코 틀새 없이 바쁜 시기였기에 OJT 교육을 전담하는 선배가 없었다. 각 파트에서 같은 시간대 근무하는 선배들이 틈틈이 교육을 해주었다. 일반적으로 OJT의 퀄리티는 선배의 교육 능력이나 세심함에 따라 많이 영향을 받는다. 하지만 교육을 받는 수강생의 자세가 그보다 더 중요하다.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는 더욱 그렇다. 쭈뼛쭈뼛 서 있고 시키는 일만 하며 눈치 없이 시간을 보낸다면 누가 좋아할까? 특히, 앞으로 같은 파트에서 근무할 후배가 아니라 백 오피스로 다시 돌아갈 신입사원은 바쁜 성수기에 귀찮은 존재일 뿐이다. 그렇지만 굳은 일이나 귀찮은 일을 도맡아 하거나 일 처리에 내가 도움이 된다면? 더 알려줄 수밖에 없다. 내가 6살 딸 아이에게 “수저 좀 놓아주세요”에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물까지 떠서 세팅해 주니 상차림 시간에 도움이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일단 내가 직접 고객을 응대할 수 있어야 도움이 될 것 같아 멘트부터 연습했다. 고객이 다가오면 피하기 보다 “고객님, 체크인 도와드릴까요?” 하고 나서서 체크인을 해보고 중간에 막히는 과정이 있다면 눈치껏 선배에게 도움을 요청하면서 배워나갔다. 당시에는 일본 고객이 많아 자주 쓰는 문장은 일본어로 외우기도 했다. “쇼쇼 오마치 구다사이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맛쓰구 이떼 히다리니 아리마쓰(직진 하시면 왼쪽에 있습니다)” 주도적으로 일을 처리하고 업무에 도움이 되니 “일 좀 하네?” 하며 선배들이 하나씩 더 알려주었고 어느새 스킬 업 되어 자연스럽게 고객을 응대하고 있었다. 


프런트 오피스와 벨 데스크에서의 OJT는 호텔 서비스의 첫 장을 펼치는 것과 같았다. 고객을 맞이하고 때로는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은 호텔리어로서 겪을 무수한 일 가운데 시작이자 기본이었다. 이는 호텔리어라는 책의 한 챕터에 불과했다. 객실을 관리하고 유지하는 하우스킵핑, 미각을 자극하는 식음팀과 조리팀, 이벤트 장인 연회 세일즈 팀 등 다양한 부서가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아직 읽지 못한 호텔 서비스의 또 다른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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