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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제이 Jun 17. 2024

지적 허영을 밀어 올리는 형벌

600일의 기록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모든 것이 변한다. 계절이 바뀌었고, 함께 일하는 사람이 바뀌었다. 아내의 흰머리가 늘었고, 나의 뱃살도 줄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좀처럼 변하지 않는 게 있다. 바로 나의 내면이다. 그래서 초조하다. 시간이 흐르면 성장할 줄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영 제자리걸음인 느낌이 들어 속이 불편하다. 시간은 만병통치약이 아니라, 오히려 시간이 나를 초조하게 만든다. 내가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나를 가장 초조하게 만든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그래도 참 다행이다. 내가 불편한 원인을 알고 있어서.





 우리는 왜 사는 걸까. 나는 지금 무얼 원하는 걸까. ‘먹는 게 남는 거지’, ‘금강산도 식후경’, ‘다 먹고살자고 하는 것 아니겠어?’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마음 한 편이 멋쩍어진다. 맛있는 걸 먹는 삶? 나는 맛있은 음식도, 새로운 요리도 원하지 않는다. 음식은 그저 생존을 위해 필요한 영향 공급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산해 진미를 다 먹어보고 맛있는 게 더 이상 없어지면 어쩌지?’ 그런 생각도 든다. 나는 아직 산해 진미를 다 맛보진 못했다. 하지만 그럴 마음도 욕심도 갖고 있지 않다.



 반면 멋진 통찰에는 늘 갈증을 느낀다. 많이 먹어 머리와 가슴을 배불리 채우고 싶다. 살며 알아가는 재밌는 자연법칙이나 인과 관계, 그런 것들에서 즐거움을 느낀다. 포만감도 든다. 나는 그런 것들을 통틀어 인사이트라고 표현한다. 어쩌면 그것은 다른 말로 지적 허영심이라고 부를지도 모른다. 하지만 별 수 없다. 지금 나는 그런 사람이까. 맛있는 걸 탐하는 건 생존을 위한 인간의 본능이다. 내가 지적 허영을 탐하는 것 역시 그렇다. 나의 생존을 위해 지식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나의 본능이 일으키는 착각일 테다.





 생각은 가만히 두면 사라져 없어진다. 그러므로 우리는 생각을 꼭 기록하고 말해야 한다. 그럼으로써 생각은 생명력을 갖는다. 오랜 시간 살아남아 언젠가 쓸모를 갖게 된다. 그런 이유로 나는 기록하는 행위를 좋아한다. 좋게 보면 좋아한다 말할 수 있고, 나쁘게 보면 약간 병적인 집착 수준이다. 나는 눈 뜬 시간 전부를 기록하기를 원한다. 내가 언제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했는지를 기록한다. 모든 시간 내가 어떻게 살고 있는지 알고 싶다. 그걸 아는 것이 시간을 제대로 사용하는 길이라는 믿음이다. 하지만 그 믿음이 나를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내가 어떻게 사는지 또렷이 보게 될수록, 나의 게으름과 허접함도 덩달아 또렷하게 남기 때문이다.



 시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할까? 그건 마치 이런 것과 같다. 지식에 대한 통찰을 버리고 맛있는 음식과 오락거리를 구경하며 사는 데서 삶의 만족을 느끼는 것 말이다. 본능은 거스를 수 없다. 한 사람이 여자를 좋아하다가 갑자기 ‘그래. 오늘부터 나는 남자를 좋아하겠어!’라고 마음먹으면 그때부터 남자를 좋아할 수 있게 될까? 나의 마음 역시 그렇다. 시간에 대한 집착, 지적 허영에 대한 허기 그것들이 나의 마음 깊은 곳에서 생존에 대한 필수 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나는 아무래도 이렇게 살아야 할 운명인 것 같다. 그것이 나를 꾸준히 괴롭히더라도, 그저 받아들이며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며 살아야 하는 운명 말이다. 계속 굴러떨어지는 돌을 다시 올려놓아야 하는 시지푸스처럼. 나도 이런 나의 허영과 허기를 끊임없이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시 마음이 차분해지고 또 충만해지도록 애쓰며 살아갈 테다. 자주 반복해서 끊임없이 말이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말처럼 쉽지는 않지만, 나는 내가 그래야만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게 나의 형벌이다. 나는 그 무거운 짐을 지고 태어났을 뿐이다.



 나는 내가 타고난 것을 탓하지 않는다. 그 누구도 원망하고 미워하지 않는다. 다만 나의 마음을 아프게 만드는 건, 그 힘듦을 감내할 만큼 나의 내면이 탄탄하지 않다는 걸 스스로 충분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게 나의 우울함의 원인이다. 그게 현재 조급함의 근원이다. 나는 문제를 알면 답을 구할 수 있다고 누누이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그 문제가 본능에 따른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래서 더 마음이 조급해진다. 갈피를 잃는다. 이런 상황을 극복한 멋진 선례가 있다면 추천받고 싶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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