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제이 Jun 29. 2024

생각에 관한 생각

고요함 중독


고요함에 취할 수도 있는가. 기쁨도 고통도 없는 아무런 감정이 들지 않는 상태를 고요함이라 할 수 있을까. 나는 그 상태를 지독히 싫어하면서도 갈구한다. 마치 쾌락처럼 그것에 빠져 그 상태에 놓이고자 한다. 그렇다면 그것은 중독되었다는 뜻인데, 아무 감정도 없는 상태에 중독이 가능한 건가.



나는 고요함을 즐기는 걸까, 고요함을 필요로 하는 걸까. 만약 필요로 한다면 이유가 있을 것이다. 무언가 상쇄시키고 싶은 것이 있을 것이다. 슬픔은 기쁨으로 상쇄하고, 쓴맛은 단 맛으로 잊어버리듯, 고요함도 무언가의 상쇄를 위해 추구하는 것 아닐까.



고요함의 반대를 떠올려 본다. 바쁘고 힘들고 집중하고 요동치고. 그런 역동적인 것들, 주의가 산만해지거나 신경이 곤두선 것들. 현 상태가 그러하기 때문에 그것들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고요함을 추구하는 것일까. 그렇다고 말하기엔 나는 현재 너무나도 바쁘지 않다. 오히려 여유롭고 편안하다.



상쇄가 정답이 아니라면 나는 고요함을 즐기고 있는 걸까. 그렇다고 말하기엔 나는 너무 고통스럽다. 답답하고 골치 아프다. 그것은 마치 초대하지 않았는데 마음대로 찾아온 손님 같다. 오랜 시간 알고 지냈음에도 어설픈 질문밖에 주고받지 못하는 친구 관계 같다. 어째서 나는 이 감정을 수십 년간 끌어안고 살았음에도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는가.



노 박사가 묻는다. “어떠셨어요?” 그러면 나는 답한다. “좋았습니다” 나는 그가 묻기 전까지 어떤 진실도 공유하지 않는다. 그게 그의 역할이자 방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어느 순간 우리 관계에 대해 의문을 가졌다. ‘어쩌면 그는 나를 잊은 게 아닐까’, ‘나는 지금 허공에 대고 방망이를 휘두르고 있는 게 아닐까’ 그의 매너리즘 속에서 나는 여름날 녹아내리는 아이스크림처럼 흘러 없어지고 마는 건 아닐까.



아이스크림이 흘러내려 손에 닿기 전에 ‘습~!’하고 빨아들여주길 바라는 건 욕심일까. 혹시 치료가 필요한 건 노 박사가 아닐까. 그렇다면 내가 관계를 다시 설정해 줘야지. 그의 눈빛에서는 어떤 욕망도 생명력도 느껴지지 않으니까. 무엇이 그를 그렇게 만들었을까. 나에게도 찾아올지 모를 그것을 피해 가기 위해서라도 이유를 알아야 할 것만 같다.



다음 번 방문에는 물어야겠다. “어떠셨어요?” 그러면 나는 답하겠다. “가스불은 끄고 나오셨나요?” 전혀 생각지 못한 질문으로 허를 찌르는 것, 최면술사가 사람의 마음속에 파고드는 기술이라고 한다. ‘인덕션을 사용하면 어쩌지?’ 괜한 질문이 허공을 맴돈다. 그것이 지금의 고요함을 대변하고 있다.



상념으로부터의 해방, 자유로운 상상. 고요함은 무념이 아니다. 그것은 질서 정연한 생각이다. 그것들을 그대로 두면 망상이 되고, 그것들을 글로 쓰면 소설이 된다. 오와 열을 맞춘 수 많은 상념들. 혹시 나는 소설가로서 재능이 타고 난 건 아닐까?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작가의 이전글 아침에 눈을 뜬 직후 떠올라야 하는 생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