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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에 만족하지 못할 때

by 오제이


‘리더급 직원들이 퇴근 시간 이후에도 일하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 이유는 연차 때문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다. 그 말은 일리가 있지만 완벽히 그렇다고도 할 수 없기에 나는 즉답하지 못하고 답변을 되새김질했다.



나도 사회생활 초기에는 일과 삶의 분리를 철저히 지키고 싶었다. 회사와 계약된 시간에만 일하고 그 이후 시간에는 일에서 벗어날 권리를 보장받고 싶었다. 당시 나는 팀장에게 ‘주말에는 연락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카카오톡으로 업무 이야기를 하고 싶지도 않아요’라고 말했다. 물론 이제 와서 그 발언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다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넓어졌을 뿐이다.



지금의 나는 퇴근 후 갑작스럽게 일이 생기는 것도, 휴가 중이나 주말에 일 생각을 해야 하는 것도 즐겁게 받아들인다. 마지 못해 하는 게 아니라 즐거운 마음이다. ‘연차가 쌓였으니 이 정도 책임감은 가져야 해’라는 마음가짐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생긴 일에 대한 애착이다.




주인의식이라는 말을 쓰면 조금 거창하게 느껴진다. 그렇다고 조금 더 능동적이어졌다고 하기엔 무언가 부족한 느낌이다. 지금 내가 일을 대하는 감정을 또렷한 문장으로 만드는 건 어려울 것 같다. 그래도 막연하게나마 문장을 만들어 본다면, ‘나의 시간과 돈을 바꾼다는 생각을 넘어서, 내가 만들어낸 가치로 고객(클라이언트나 회사, 동료)에게 편안함을 전해주고 싶다’라고 표현할 수 있겠다.



나는 회사에 고용된 직장인이고, 내 시간을 제공하며 보수를 받고 있다. 그것은 분명히 사실이지만 그것이 내가 일하는 주된 목적은 아니다. 나는 내 가치와 신념을 전할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고 판단했기에 이 회사를 선택했다.



내가 머물게 된 대가로 보수를 받는 건 부수적인 목적이다. 게다가 그 보수는 내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제공했는가가 아니라, 어떤 가치를 창출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고 믿는다. 회사는 나의 마음과 가치를 꿰뚫어 보고 있고, 그만큼 가치를 인정해주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긴 시간 이곳에 머무는 중이다.




자신의 보수가 마음에 들지 않다면 스스로 두 가지를 되물어 보는 게 좋다. 하나는 ‘나는 더 많은 책임을 질 자신이 있는가?’ 그것은 이미 준비되어 있는지를 묻는 게 아니다. 앞으로 그럴 결심을 가질 수 있는가를 묻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한 가지 질문은 ‘나는 다른 직장에 간다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가치란 이곳에서는 절대 창출할 수 없는 가치인가?’이다.



이 두 가지 질문에 확실히 답변할 수 없다면, 다른 직장으로 자리를 옮긴다고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비슷한 고민으로 마음 고생을 하게 될 것이다.



나는 일 앞에서 두 고객을 만난다. 한 고객은 내게 보수를 주는 고객(회사)이고 다른 한 고객은 그 고객(회사)에게 보수를 주는 고객(클라이언트)이다. 이 두 고객에게 가치를 선물하는 것이 내가 일하는 목적이자 행동력의 원인이다.



정확히 몇 년 차가 된 다음부터 그런 느낌이 들 거라고는 말할 수 없다. 나조차도 이런 생각을 갖게 된 시점을 확실히 산정하지 못하니 말이다. 시간이 모든 걸 해결해줄 수 없는 것처럼, 단순히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책임감이나 주인의식이 쌓이지는 않는 것 같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내가 생각을 고쳐 먹게 된 것은 시간 때문이 아니었다. 내가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내면을 관찰하게 된 순간부터가 아닐까 싶다. 오늘 내가 살아있음에 감사하고, 지금 이 시간과 순간들을 살아갈 수 있음에 감동할 줄 아는 시점부터 나는 달라졌다.



그런 마음의 변화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지 않는다. 대게는 어떤 사건을 겪으며 그런 마음이 들곤 한다. 누군가는 그런 사건을 두고 〈대오각성 사건〉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 같다. 깨달음을 얻을 정도로 충격이 큰 사건이라는 뜻에서다.



나 역시 그와 비슷한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고 그때부터 삶을 대하는 마음가짐이 달라지기는 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런 사건을 겪어야만 마음의 변화를 겪을 수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그런 고통을 겪지 않고도 마음의 변화를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방법을 찾기 위해 고민하고 있다. 고통을 겪어야만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건 너무 가혹하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나는 여전히 그 고민에 대한 답을 찾는 중이다. 하지만 머지않아 그 답을 찾아낼 것이고, 그것을 여러분에게 전할 날이 올 것이다.



나의 궁극적인 목표는 여러분이 ‘자신의 삶이 얼마나 소중하고 가치 있는지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마음으로 느끼고 알아차린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게 될 것이다. 더불어 일과 삶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선을 선물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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