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는 유독 자세가 바른 사람이 있다. 식사를 할 때나 복도를 걸어 다닐 때 등 언제나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걷는데, 그 모습에서 무척 큰 자신감이 느껴진다. 심지어 그 동료는 업무 중에도 허리가 구부러지지 않고, 우리가 늘상 하는 목을 쭉 빼고 모니터를 바라보는 거북목이 되는 버릇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릴 때부터 단련이라도 한 걸까?
그렇게 허리를 꼿꼿이 세워 걸으면 자칫 자존심 세고 새침해 보일 수도 있겠지만, 그녀는 그런 도도함보다는 정직하고 성실한 분위기를 풍기는 편이다. 나는 그렇게 좋은 자세를 유지하는 비결이 궁금해 어릴 때 발레를 한 적이 있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그녀는 발레를 한 적은 없고 어릴 때 아버지께서 거실을 지나다닐 때마다 자신의 구부정한 목과 등을 툭툭 건드리며 '허리 펴라~'하고 지적해 주셨다고 한다. 그건 나의 어린 시절도 마찬가지였는데, 내 자세는 그렇게 우아하진 못한 편인 걸 보면, 아무래도 자세가 좋은 건 좋은 체형을 타고난 덕일 지도 모르겠다.
좋은 자세를 하고 있는 것만으로도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이미지가 달라진다는 사실이 신비롭다. 그래서 사람들은 화장을 하고 외모를 가꾸는 것일 테다. 좋은 자세만큼이나 인상이나 관상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는 힘이 세기 마련이니까.
얼마 전, 손수 만든 매실액을 나눠주고 싶다며 어머니께서 집으로 찾아오신 적이 있다. 나는 엄마니까 뭐 어때라는 심정으로, 대충 옷을 걸쳐 입은 뒤 지저분한 몰골로 마중을 나갔다. 그런 엉망인 내 꼴을 보며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셨다.
'사람은 외모를 가꿀 줄 알아야 해. 단정하게 입고 늘 깔끔함을 유지해야 한다. 개인의 이미지가 브랜드가 되는 세상 아니더냐. 스스로 꾸밀 줄 아는 것도 경쟁력이 될 테니 늘 바르게 하고 다니거라.'
그때는 내가 봐도 내 몰골이 너무 엉망이라, 달리 생각해 볼 여력이 없었는데, 뒤늦게 그 말씀을 곱씹어 보니 인생의 양분이 되는 보석 같은 조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누군가 나를 평가할 때 내 내면 이야기나 과거를 모두 들춰보지 않는 이상, 그들은 나의 외적인 모습으로 나를 이해하려 들 텐데, 그렇다면 나의 외모는 어떤 이미지를 풍기는가 되돌아보게 됐다. 그렇게 거울 앞에 선 나는 한 마리 짐승을 마주쳤는데, '기업의 존망을 결정하는 커다란 계약을 해야 할 때 저런 사람이 나타나면 나라도 하고 싶지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번뜩 정신을 차리고 외모를 가꿔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 가꾸겠다는 결심이, 연예인이라도 될 기세로 성형을 하거나 화장을 하며 살겠다는 것까진 아니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신감 넘치고 신뢰 가는 이미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그런 결심이었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주변에서 당당한 사람을 만날 때마다 그들의 외모를 유심히 관찰하기 시작했고, 오래지 않아 <신뢰를 만드는 외모의 특징> 몇 가지를 발견해냈다.
그 특징들 가운데 가장 도드라지고 또 비교적 쉽게 갖출 수 있는 특징을 꼽자면 바로 '의복'이다. 옷을 잘 입는 것 말이다. 이때 잘 입는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꼭 맞는 옷을 입는 것뿐만 아니라, 비싸고 품질 좋은 옷을 입는 것 모두를 의미한다.
나는 명품이나 의류 브랜드에 대해 지식이 많지는 않다. 누군가 명품 가방을 들고 다녀도 그 브랜드가 무엇인지 잘 구분해 내지 못한다. 하지만 브랜드만 모를 뿐 그게 좋은 옷인지 아닌지는 기가 막히게 알아차린다. 그냥 척 보면 느껴지는 것 같다. 비싼 옷은 내뿜는 '태'가 다르니까.
저렴한 옷을 폄하하고 싶지는 않지만, 싼 옷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눈물의 덤핑'이니 '기간 임박 세일'이니 포장은 그럴듯하게 하지만, 가격을 후려쳐서 싸게 파는 옷은 대부분 태생부터 저렴한 옷 들이다.
애초에 저렴할 목적으로 생산된 옷들, 그런 옷은 모양이 좋지 않거나 섬유의 품질이 좋지 않다. 처음엔 그럴듯해 보일 수도 있지만 몇 번 입으면 금세 옷의 생기가 달아나 없어진다. '내가 이런 옷을 왜 샀지?'라는 후회가 밀려온다. 그런 옷을 입으면 후줄근해 보이기 쉽고, 그런 자신을 보면 스스로 위축될 수밖에 없다.
한 번은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고 출근한 적이 있다. 그날따라 종일 누군가 나를 쳐다보는 것 같아 자신감이 곤두박질 쳐버렸고, 집에 올 때까지 기운이 나지 않았다. 사실 그날 내게 뭐라고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괜히 내 볼품없는 모습에 스스로 신경이 쓰였고, 그로 인해 하루 종일 어깨를 펴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므로 좋은 옷을 입는 건 중요하다. 좋은 옷은 일종의 건강기능식품이라고 보면 된다. 좋은 옷을 입으면 자신감이 절로 생기고, 에너지 드링크를 먹은 것처럼 힘이 불끈 솟으며, 어깨에 뽕이 차올라 어떤 면접이나 제안도 따낼 수 있을 것 같아진다.
좋은 옷이라고 해서 늘 명품일 필요는 없다. 나는 살며 거듭된 구매 실패를 통해 괜찮은 옷을 찾는 작은 노하우를 알게 됐는데, 방법은 무척 간단하다. 우선 가격을 후려치기 위해 질 낮은 원단을 사용했다던가, 재봉을 날림으로 한 옷만 피하면 된다. 그것만으로도 그럭저럭 괜찮은 옷을 추려낼 수 있다. 거기에 한 가지를 덧붙이면 끝이다. 입었을 때 몸에 착 감기는, 품이 모자라거나 남지 않은, 몸에 잘 맞는 옷. 그런 옷을 찾으면 된다.
만약 좋은 옷을 찾는 데 수고를 들이기 귀찮다면 아주 좋은 대안이 있다. 정장을 입는 것이다. 나는 당당한 이미지를 만드는 가장 쉬운 길은 단연 정장이라고 생각한다. 다들 이런 경험이 한 번쯤 있을 거다. 평소에는 거지 같은 차림으로 다니던 친구가, 졸업 앨범 촬영 날 정장을 입고 나타났는데 왠지 그날따라 잘생기고 예쁘게 느껴졌던 순간 말이다.
정장에는 그런 힘이 있다. 곡선과 직선이 유려하게 어우러지며 고고한 품위를 만들어내는 옷. 정장은 올바르게 입으려면 어깨를 펴고 허리를 꼿꼿이 세워야만 한다. 자칫 느슨해지면 옷이 적당한 불편함을 주므로 지속적으로 좋은 자세를 유지하게 된다.
이때 만들어진 좋은 자세가 당당한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건지, 아니면 옷 자체가 갖고 있는 이미지가 그 사람을 더 당차게 만드는 건지, 나도 아직은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옷이 갖고 있는 힘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옷을 이용해 신뢰를 만들겠는가, 후줄근하더라도 대충 편하게 입고 살겠는가. 나는 전자를 택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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