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쌓이는 눈처럼

by 오제이



자칭 기록왕이라고 자부하는 나는 지난 10 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어쩌면 하루 정도는 빠졌을 수도 있는, 순환 다이어리를 쓰고 있다. 순환 다이어리라는 말이 조금 낯설 수도 있는데, 간단히 말하자면 한 페이지에 여러 해에 걸쳐 오늘을 기록하는 일기장이다.


예를 들어 3월 1일을 펼치면 24년도의 글이 보이고 그 위에는 23년도의 글, 그 위로 쭉쭉 과거의 글들을 한 장에 볼 수 있는 매일을 기록하는 다이어리다.


오늘도 날짜에 맞춰 다이어리를 열어보니, 지난 몇 년 동안 쌓인 같은 날의 기록이 눈에 들어왔다.


'2020년 오늘, 나는 서울 용산에 있는 호텔에서 호캉스를 즐기며 20대 시절 용산 전자상가에서 주차 알바를 하던 날을 회상했다. 2021년 오늘, 나는 식탁에 앉아 인생의 의미를 떠올렸는데, 현재 고민거리라곤 저녁 메뉴와 티비 채널뿐이라는 사실에 씁쓸해했다. 2023년 오늘, 나는 <갓생일지>를 쓰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내가 놓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고민했다. 2024년의 오늘, 인생에서 가장 바쁜 시기를 살아가는 요즈음, 좋은 협력, 좋은 리더십이란 무엇인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인생이란 하루하루 살아갈 때는 그 순간의 소중함을 미쳐 알지 못한다. 그러나 그 시간들은 고요히 내리는 하얀 눈송이처럼,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 둘 쌓여 어느새 풍경을 변화 시킨다.


매일이 비슷한 날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며 살다가도, 이렇게 매년 달라지는 생각들을 관찰하며, 세상은 결코 한순간도 멈춘 적이 없음을, 나의 오늘은 단 한 번도 어제와 같은 날이 없었음을 다시금 깨닫고 만다.


오늘 만든 결실이 작고 하찮게 느껴지더라도, 너무 조급해 말자, 너무 걱정하지 말자. 그 작은 노력은 내일의 풍경을 만드는 단단한 눈송이가 되어, 소리 없이 부지런하게 쌓이고 있을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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