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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딘지는 알고 가는 거야?

by 오제이


"너 지금 길은 알고 가는 거야?"


십년지기 친구와 처음 해외여행을 한 날, 나는 친구와 처음으로 말다툼을 했다. 10년 넘는 세월 동안 언성 한 번 높여본 적 없던 사이인데. 여행 온 첫날부터 큰 소리가 오갔다. 운전 연수와 여행은 친구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지름길이라는 풍문으로만 듣던 말들이 그제야 이해됐다.


친구는 해외여행 경험이 전무했다. 아니 어쩌면 국내에서도 여행이라 할 만한 경험이 없었다. 졸업과 동시에 공무원에 합격해 또래 친구들보다 일찍 사회생활을 시작한 탓이었다. 물론 일하는 와중에도 마음만 먹으면 휴가를 내 어디든 떠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그럴 마음이 없었다. 애초에 여행에 대한 설렘이나 기대가 없었던 친구였다.


그러다 보니 모든 계획은 내가 맡게 됐다. 떠나기 전부터 친구는 '네가 여행을 많이 다녀봤으니까 나는 그냥 따라만 다닐게'라고 말하며 전권을 내게 위임했다. 복잡한 건 생략하고 즐거움만 쏙 뽑아 먹고 싶었던 모양이었다. 나는 별로 서운하지 않았다. 말 그대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되니까.


그렇게 시작된 여행은 불과 반나절이 채 지나지 않아 파국에 이르렀다. 그도 그럴 것이 반나절 동안 10킬로가 넘는 거리를 걸었으니 친구 입장에선 뭔가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서로 여행에 대한 개념이 다르다는 걸 그제야 깨달은 친구였다.



나는 원체 걷는 걸 좋아한다. 어려서부터 걷는 거라면 자신이 있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버스비를 아낄 겸 하굣길을 걸어서 다녔는데, 그 거리가 4km 정도 됐다. 매일 한 시간은 걸었던 셈이다. 고등학교 방학 때는 국토 종단을 하겠다고 충청남도 시골집까지 걸어서 가본 적도 있고, 군 시절에는 나 홀로 국토 순례를 도전하며 열흘 넘는 휴가 기간 동안 대한민국 방방곡곡을 두 발로 누볐다.


그 밖에도 지금껏 많은 시기와 순간마다 나는 걷고 또 걸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걷는 걸 좋아하느냐 묻는데, 그러면 나는 늘 이런 말을 한다. '걸으면 마음이 편해져요' 걷기에 명상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최근이지만, 나는 마음으로는 진즉부터 그것을 느꼈던 것 같다.


뚜벅뚜벅 걷다 보면 답답했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다. 생각해 보면 내가 걷기 여행을 떠난 시점은 늘 큰 사건을 겪은 후였다. 어쩌면 걷기는 죽음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막기 위해 내 몸이 보내는 처절한 구조 신호가 아니었나 싶다. 우울감과 분노로 뒤섞여 격렬히 요동치는 마음을 고르게 펴내기 위해, 몸이 자가 치유 방법으로 걷기를 선택했던 것 같다.



사실 친구와 함께 한 해외여행에서도 나의 머릿속에는 극단적 선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내 인생에서 서른은 우울감의 위력이 가장 맹렬했던 시기였고, 나는 그 세찬 마음을 설득해 보기 위해 최후의 수단으로 유럽 여행을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 나의 방황을 그대로 방관만 할 수는 없겠기에, 타지에서 허망히 요절하는 친구의 모습을 딱히 여겨서, 최악의 상황만은 막아보고자 친구는 마음에도 없던 여행을 결심했으리라. 그리하여 나의 긴 여행 중간에 친구는 급하게 합류하게 됐고, 일주일 남짓 한 시간 동안 내게 온기를 보태고 떠났다.


첫날의 말다툼은 일종의 시차 적응이었을 뿐, 우리는 일주일 동안 먹고 마시며 평생 남을 추억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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