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이맘때쯤에도 이런 연락이 온 것 같은데...'
오랜만에 걸려 온 친구의 전화를 끊으며 생각했다. 친구는 우리 동네를 지나다 내 생각이 나서 연락해 봤다고 말했다. 나는 그 마음이 너무 고맙고 예쁘게 느껴져 진심으로 깊은 감사를 전했다.
내 생각을 해준 것도 고마운데 직접 전화까지 해주다니, 참으로 큰 선물을 받은 느낌이다. 자기 시간을 내어 누군가의 안무를 묻는다는 건 무척 큰 희생이라 생각하는 내게, 안부전화는 꽤나 의미 있는 행동이다.
나는 전화 통화를 싫어한다. 싫어한다고 말하면 조금 비겁한가?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나는 전화 통화를 두려워한다. 상대방의 눈을 보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두렵다.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감추고 있는지, 목소리만으로는 가늠할 수 없어 답답하고 막연하다.
전화 통화를 하는 건 마치 불 꺼진 터널을 걷는 느낌이다. 그대로만 가면 출구가 나온다는 걸 알지만, 한 발 한 발 내딛는 게 불안하다. 앞에 무엇이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 때문에 스태프가 꼬이는 것처럼, 내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혓바닥이 꼬이고 만다.
회사에서 말 많은 사람을 꼽으면 상위 권을 차지하는 나인데, 수 백 명 앞에 서도 한 치의 떨림도 없는 나인데, 왜 유독 전화기만 붙들면 입이 닫히고 머리가 하얗게 변하는 걸까. 전화벨이 울리면 가슴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든다. 이런 심리를 두고 학계에서는 '콜 포비아'라는 용어까지 붙여 두었더라.
그렇다고 내가 텍스트 기반 대화에 더 익숙한 세대의 사고방식을 갖고 있다는 건 아니다. 물론 나도 문자나 카톡을 하며 자란 세대인 건 맞지만, 나는 텍스트보다는 소리 내 말하는 대화가 더 좋다. 텍스트를 입력하는 것보다 말로 하는 게 더 편하니까. 그래서 이왕이면 화상 전화를 선호한다.
그래도 먹고살자면 싫고 두려운 것에도 익숙해져야 하는 법이다. 입사 초기 내 자리에는 유선 전화가 없었다. 회사 측에서 나의 콜 포비아를 배려해 아예 전화기 자체를 지급하지 않은 따름이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직급이 달라지고 책임의 무게가 늘어났다. 기술적인 문제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된 탓에, 외부와 적극적으로 소통할 일이 많아졌다.
처음엔 정말 억지로 통화했다. 그 통화를 할 사람이 나밖에 없다는 사실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마치 보약을 마신다는 느낌으로 속으로는 벌벌 떨지만 겉으로는 태연한 척 통화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마주하면 정말 친절한데, 전화 통화에서 유독 땍땍 거리는 사람들이 있다. 전화로는 자신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가면 속 진짜 정체를 드러내는 건지, 아니면 비언어적 표현이 어우러지지 않아서 괜히 기분만 불쾌하게 느껴지는 건지 나는 잘 모르겠다.
재미있는 사실은 지금까지 통화로는 떨떠름했던 사람이 만나서까지 기분 나빴던 적은 없다는 점이다. 그 모든 통화 속 불쾌함이 다 오해였고 기분 탓이었다니. 그래서인지 이런 일이 거듭될수록 통화하는 불편함은 더 커지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은 피할 수가 없다. 앞으로는 얼굴 보지 않고 이야기 나눌 일이 더 많아질 일만 남았으니 말이다. 지금 내 위치는 물론이고, 앞으로 내가 헤쳐 나가야 할 일에도, 수많은 통화가 기다리고 있다.
이 또한 반복되면 적응하지 않겠는가. 무슨 일이든 처음이 어려운 법이다. 하다 보면 다 순응하게 되어 있다. 친절을 베풀면 친절로 돌아온다는 불변의 진리를 믿고, 상대가 어떤 사람이든 친절을 베풀자. 그러면 세상이 온몸으로 나를 끌어안아주는 걸 느끼게 될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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