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 되면 가장 좋은 점이 무엇일까? 법적 나이를 기준으로 볼 때 성인으로 살아온 날이, 청소년으로 산 시간보다 길어진 지금, 유년기를 떠올리는 건 안개 길을 걷는 것처럼 뿌옇기만 하다. 그럼에도 몇 가지 유년 시절 가졌던 바람들 만큼은 생생히 기억에 남는데, 그것들을 가만히 떠올리고 있으면 새삼 어른이 되길 잘 했다는 마음에 가슴이 뜨끈해진다.
어린 시절, '이다음에 어른이 되면 꼭 해봐야지'라고 마음먹은 일은, 조금 유치하지만 '불량식품을 원 없이 사다 먹는 일'이었다. 당시에는 어른만 되면 언제든 시도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내가 그것을 성취하기까지는 성인이 되고 난 뒤 무료 10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다.
성인이 된 직후, 내가 벌 수 있는 돈은 많지 않았다. 직장을 얻기 전까지는 대부분 파트 타이머로 일해야 했는데, 당시 시급은 3천 원에서 4천 원 사이였으므로 한 달을 열심히 일해봐야 수중에 떨어지는 돈은 얼마 되지 않았다.
게다가 자취를 하고 있었으므로 생활용품과 학비, 교통비 같은 필수적으로 나가는 비용을 제하고 나면 정말로 푼돈밖에 남지 않았다. 그렇게 번 돈을 불량 식품 같은 데 쓸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때문에 내가 진짜 어린 시절의 바람을 이룬 건 회사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후였고, 성인이 된지 한참 지난 뒤였다.
어른이 된고 가장 좋은 점 가운데 하나는 시험이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직장인이라면 매일매일이 시험의 연속이다!'라고 말한다면 달리 할 말은 없지만, 나는 중간고사와 기말고사가 없어진 것만으로도 큰 해방감을 느낀다.
어려서부터 나는 무언가를 달달 외는 데 그리 뛰어나지 않았다. 단순 암기와 지능은 별개의 영역이지 않을까? 우리 반에서 꼴찌에 가까웠던 친구도 쉽게 외우는 것들을 나는 도통 외울 수가 없어 절망했던 기억도 있다. 하물며 나는 앞쪽에 더 가까운 성적이었는데 말이다.
오지선다라는 악마 같은 제도는 언제부터 시작된 걸까. 남들은 객관식이 명확해서 좋다고들 하는데, 나는 오히려 조금의 빈틈 정도는 이해받을 수 있는 주관식을 더 좋아한다. 객관식 문제는 여러모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답을 전혀 몰랐던 녀석들에게 찍어서 점수를 받을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한다는 것도 그렇고 정답 문항에 말장난 같은 함정을 파 놓아 실수를 유발해 점수를 잃게 만드는 것도 그렇다.
어쨌든 성인이 된 뒤로 나는 오지선다의 악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됐다. 가끔 시험을 볼 일이 생기기도 했지만, 그 문제들이 내 운명을 가를 것이라는 압박이 없으므로 일종의 기분 전환이자 게임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중년을 앞둔 지금. 사실 나는 정말 내가 성인이 된 건지 의아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단순히 나이만 먹은 건 아닌가 모르겠다. 사람들이 으레 하는 말 가운데, '상투를 틀어야 어른이 된다'던가, '자식을 낳아봐야 진짜 어른이지'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 식으로 보면 나는 영영 어른이 될 수 없을 전망이다.
어린 시절, 꿈에 그리던 어른의 모습이 있었다. 저렇게 되고 싶다는 분명한 이미지의 어른 상이 존재했다. 매일 정장을 단정히 입고 반듯하게 자른 머리와 잘 관리된 몸으로 교양 있는 말투를 쓰는 점잖은 어른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지금 거울 속에 비친 나는 과거 내가 그리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인물이다. 지금 내 모습에 만족하며 살고 있기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상향이 달라진 건지는 알 수 없어 마음이 다소 어수선하다.
다시 그 꿈을 되살려볼까. 괜한 거울만 만지작거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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