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 고양이 삼형제

by 오제이



지난 주말 아내와 함께 카페에 다녀왔다. 간만에 점심을 거하게 먹은 탓에, 그대로 두면 낮잠이 몰려올 것 같았다. 마침 햇살이 따뜻하고 시원한 바람도 불어오고 있으니, 조금 걸으며 커피를 마시면 좋겠다 싶었다.


간단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섰다. 공용자전거 앱을 열어봤다. 역시 집 근처에는 자전거 재고가 없었다. 점심에는 이용자가 몰리는 탓에 이 시간에 자전거를 구하는 건 하늘의 별 따기만큼 힘들다. 하는 수없이 한 정거장 가량을 걸어가기로 했다. 사람들이 많은 번화가나 대로변으로 나가면 그나마 자전거가 꽤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 아파트들은 대부분 30년 넘은 노후 주택이다. 당시에 무슨 규정이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1층에는 작은 정원이 딸려 있다. 이 공간은 암묵적으로 1층에 사는 사람들이 자기 집 마당처럼 활용하는데, 그 활용법이 너무나도 달라 동네마다 그걸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꽃씨를 뿌려 계절마다 달라지는 풍경을 감상하는 집도 있고, 상추나 당근 같은 작물을 심어 가게에 보탬을 하는 집도 있으며, 조화나 인형, 조각상 등 장식물을 두고 변함없는 모습을 유지하는 집도 있다.


그런 곳들을 보면 나도 문득 1층에 살아 나만의 정원을 꾸미고 싶어지는데, 상상으로는 이미 대궐 같은 풍경을 그려두었다. 그러나 동네를 걷다 보면 의외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파트에서 심은 나무만 덩그러니 있는 집들이 많이 보인다. 아무래도 정원을 손질하고 가꾸는 데에는 신경 쓸 게 어지간히 많은 게 아니기 때문이겠다.


그러면 그렇게 남아도는 공간을 노리는 사람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몰래 화분을 내놓는다거나, 고추를 말린다거나, 고양이 집과 밥그릇을 설치하려 경쟁하는 게 일반적인 풍경.


그런 와중에 가끔 누가 봐도 어디서 주워온 것 같은 박스로 고양이 쉼터를 만들어주는 모습도 드물게 볼 수 있는데, 오늘 내가 본 박스 쉼터는 그간 보아온 것들 가운데 가히 최고로 귀여운 풍경이었다.


나란히 놓인 박스 세 개에 고양에 삼 형제가 쏙 들어가 있는 모습이 제법 안락해 보여서, 덩달아 내 마음도 따뜻해져버렸다. 물론 실제로 보이는 것에 비해 실상 바닥은 춥지 않을까 염려도 됐지만, 편안한 표정으로 졸고 있는 녀석들을 보니 그런 우려는 금세 사그라들었다.


바쁘게 살아가는 일상 속, 이렇게 예기치 못한 귀여움을 만나면 하루 종일 마음이 너그러워진다. 덕분에 오늘은 카페에 가는 길도, 돌아와 업무를 보는 동안도 모두 넉넉하고 따뜻한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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