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지탱하는 힘의 근원은?

by 오제이


살며 한 번쯤은 스카이다이빙을 해보고 싶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게 두렵기는 하지만, 어떤 느낌일지 궁금한 마음이 더 크다. 일전에 스위스 쪽을 지나갈 일이 있을 때 마침 여유가 있어 예약해 보려 했는데, 하필 비가 내리는 바람에 아쉬움을 삼키고 돌아섰다.


그 뒤로 국내 여행을 할 때나 동남아를 돌아다니며 스카이다이빙을 몇 번 고민해 봤었다. 하지만 이왕이면 더 멋진 풍경에서, 이왕이면 더 안전해 보이는 곳에서 하고 싶은 마음에 쉽게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괜찮지 않나?'


스카이다이빙을 대하는 나의 마음은 약간 오묘하다. 죽음을 각오한다는 말이 어울리려나? 나는 스카이다이빙을 하면 최악의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생각하는 최악은 낙하산이 펼쳐지지 않는 건데, 그러면 죽는 것 말고 별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스카이다이빙을 하기로 결심하면서 '죽을지도 모르지만 그것도 괜찮지'라는 마음을 갖고 있었다.


죽는 건 그리 겁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이미 내가 살고 싶은 대로 마음껏 살고 있고, 재미 볼 것, 누릴 것을 양껏 누려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생에 대한 미련이 별로 없었다. 결혼 전까지는 말이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챙겨야 할 가정이 있다 보니, 어린 시절처럼 죽음을 가볍게 볼 수 없게 됐다. 더 이상 모든 걸 걸고 제멋대로 살 수는 노릇이다. 그렇다 보니 이제는 스카이다이빙을 시도하는 게 조금은 두렵기도 하다. 아니, 정확히는 죽음이 두렵다고 할까?



한때 친구들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질주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당시 우리에게 그런 힘을 쥐여준 건 세상에 대한 비관과 마음속에 짙게 자리한 우울이었다. 하지만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 마음에서 공포의 존재를 지워줬고, 그 덕에 우리는 한계를 모르고 마음껏 달릴 수 있었다.


지금껏 살며 느낀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기억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 패러글라이딩을 했던 시간을 꼽고 싶다. 하늘을 훨훨 날며 내려다본 지구와 멀리 보이는 지평선 그리고 저무는 태양. 팽팽해진 낙하산 줄에 의지한 나의 생명. 그런 것들을 인지하는 순간 모든 것들에 경외심이 생겼고, 한 사람으로서 살아있음을 온몸으로 느꼈다.



그 순간이 다시 올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한계를 모르고 질주할 수 있을까. 지금 내가 유지하고자 하는 균형의 근원은 평화에서일까 공포에서일까.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


작가의 이전글밤에도 선글라스를 쓰고 다니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