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기약과의 사투

by 오제이


오랜만 감기가 다녀갔다. 지난 주말, 비에 흠뻑 젖은 채로 장거리 이동을 한 탓인듯하다. 이번 감기는 이전과 비교하면 가벼운 축에 속했다. 열이 나지도 목이 붓지도 않았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가벼움이 더 교묘하게 나를 괴롭혔다. 감기 자체보다, 감기약의 부작용이 나를 더 깊은 골로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다.


콧물은 끊임없이 흘렀고 재채기는 수시로 코를 간지럽혔다. 몸살이라 부를 정도는 아니지만 근육통도 가볍게 나타났다. 평소 같았으면 조용히 견디며 지나가기를 기다렸을 텐데, 이번에는 이상하게 마음이 조급해져 약을 집어 들었다. 그러나 이 사소한 선택이 내게 얼마나 큰 파장을 불러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약을 먹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이 희뿌옇게 안개 낀 듯 흐려졌다. 온몸이 무겁게 가라앉았고, 팔과 다리는 저려서 가만히 서 있기도 힘들었다. 마치 내 몸의 모든 기운이 지구 표면으로 흡수되는 기분이었다. 몹시 피로해져 주저앉고 싶어졌고, 어디든 누워서 쉬고 싶은 심정이었다. 눈은 떴지만 마음은 닫힌 듯, 그렇게 온몸을 흐느적거리며 나는 온종일 무기력과 싸웠다.


무엇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건 '도둑맞은 집중력'이었다. 오락가락하는 의식 사이로 일도, 생각도 자리를 잡지 못하고 흘러내렸다. 방금 전 했던 말도 잊고, 문득 떠올랐던 생각들도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 사라졌다. 혼란스러웠다. 마치 거센 파도와 폭풍이 부딪치는 절벽 위에 홀로 서 있는 느낌이었다.


이 혼란이 정녕 약 때문인지 아니면 감기 자체 증세인지는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것은, 이번 감기와의 사투가 꽤나 지독했다는 점이다. 평소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는 건강한 몸이라 자부해왔는데, 이번에 제대로 한 방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어쩌면 이건 몸이 내게 보내는 경고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건강 오만함에 경각심을 가지라는 몸이 보내는 신호 아니었을까.



나는 감기를 앓으며 한 가지 실험을 감행했다. 이 흐려진 정신과 무너진 집중력을 과연 '의지'만으로 회복할 수 있을까. 뇌의 이 어긋난 작동을 마음가짐 하나로 붙들어맬 수 있을까. 말하자면, 약기운을 떨쳐낼 수 있는 의지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느냐는 실험이었다.


결과는 처참했다. 사람의 의지는 어떤 일을 성공시키는 데 중요한 변수일 수 있어도, 뇌의 상태는 절대적인 상수에 가까웠다. 마음만으로 뇌를 단시간에 이길 수는 없었다. 나의 마음은 약의 작용 앞에서 속절없이 무너졌다. 훈련도 연습도 없이, 단지 정신력 하나만으로 왜곡된 신호를 개선할 수는 없었다.


그제야 깨달았다. 결국 의지보다 중요한 것은, 제대로 기능하는 몸 즉 '건강한 몸과 또렷한 정신'이라는 것을. 몸이 흐트러지면 마음도 따라 흐트러지고, 마음이 지치면 몸도 더욱 고장 난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이 더 이상 오래된 격언이 아니라, 나의 체험을 통해 실감되는 진실이 되었다.


앞으로는 마음을 단단히 먹는 것만큼이나, 몸을 돌보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으리라. 나는 조금 더 조심스럽게 나를 챙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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