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 지하철 풍경에서 얻은 문장력

by 오제이


퇴근길 지하철 풍경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사람들은 서로 비슷한 듯하면서도 어딘가 묘하게 다르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옷차림의 닮음이다. 거의 대부분 검은색이나 회색처럼 무채색 계열의 옷을 입고 있는데, 그건 아마 그 색이 자주 입기에 무난하고 오염에도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물론 나조차도 같은 이유로 검은 옷이나 어두운 계열의 옷을 즐겨 입는다.


또 하나의 공통점은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숙이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점이다. 그들의 눈길을 따라가 보면 영화가 재생되고 있기도, 화려한 액션 게임 캐릭터가 보이기도 한다. 나는 이 익숙한 풍경을 관찰하다 문득, 이상하고 엉뚱한 상상을 해봤다. 만약 이 지하철 칸에 비밀 채팅방이 열린다면 어떨까? '오늘 참 힘들었어요'라는 고된 하루를 담은 한 줄에 '저도요'라는 답변이 돌아오고, 그런 사소한 교류가 오가며 퇴근길 속 작은 온기가 퍼져 나갈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보통 지하철에서 책을 읽거나 강의 영상을 본다. 어제는 영어 강의를 한 편 봤는데, 의외의 조언이 인상 깊었다. 강사는 단어를 억지로 외우기보다, 자신에게 가장 익숙한 것에서부터 시작하라고 조언했다. 그러면서 자신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공간은 주방이라며, 그 안에서 이뤄지는 것들을 예로 들어 설명했다.


"주방에 있는 집기나 식자재를 영어로 설명할 수 있나요? 이런 것들에서부터 시작해 보세요. 내가 자주 쓰는 것들과 자주 하는 행동을 영어로 표현해 보는 거죠."


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동시에 내가 그동안 글쓰기에서 느꼈던 아쉬움의 정체를 조금 이해하게 됐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것들을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겼다. 너무 익숙한 것, 혹은 너무 당연한 것은 생략하는 편이 군더더기를 없애는 일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 생략이, 내 글의 생기를 앗아가는 이유였을지도 모르겠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나는 내가 보고 싶은 것, 관심 있는 것만 골라서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다. 한 장면을 마주해도 전체적인 분위기보다는 어떤 디테일한 감정, 내가 반응하는 포인트에만 집착했다. 그러다 보니 내 글에는 종종 배경이 빠져 있었다. 그 안에서 무언가가 벌어지고 있다는 설명은 있지만,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를 감싸는 맥락이 빠져 있었다. 덩그러니 감정만 놓인, 조금 위태로워 보이는, 그래서 내 문장들은 어설펐다.


사람은 자기가 이해한 것만 설명할 수 있다고 한다. 그 말을 부정할 수 없다. 한 장면을 풍부하게 설명하려면, 그 장면의 앞과 뒤, 주변을 감싸는 맥락과 향기, 온도까지 섬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이제야 문장을 쓴다는 게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건 단지 생각을 꺼내 놓는 일이 아니라, 그 생각이 놓인 자리까지 함께 내주어야 한다는 것을.


달리는 지하철에서 나는 그 안에 가득 찬 검은 옷들, 어깨를 낮추고 스마트폰을 향하는 시선들을 다시 바라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해 본다. 다음 문장을 쓸 때는, 내가 지금 본 것을 생생히 표현할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너머에 담긴 의미도 전달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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