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촌 말고 이웃사람

by 오제이


나는 8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 이곳으로 전입한지도 8년이 다 되어가지만, 아직 모든 곳을 구석구석 방문해 보지는 못했다. 지하실이나 옥상, 노인회관, 피트니스클럽 등 아직 미탐사 공간이 여전히 꽤나 많다.


어린 시절 같았더라면, 술래잡기나 숨바꼭질을 하며 여기저기 누비고 다녔겠지만, 이제는 그럴 시간도 친구도 예전 같지 않다. 체력 또한 보잘것없어진 바람에 회사와 집을 오가는 것만으로도 지쳐, 옛 시절 활달함은 이제 먼 풍경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이웃 간의 교류는 할 것 없이 단절된 상태다. 이웃 간의 정이란 게 남아있던 시절 지어진 복도식 아파트에 살면서도, 이웃끼리 따뜻한 대화를 나눠 본 기억은 손에 꼽는다. 가끔 가뭄에 콩 나듯 엘리베이터에서 스몰 톡을 하는 일도 생기긴 하지만, 그건 마치 백화점 출입문을 잡아주는 다정한 시민처럼 예의범절 이상도 이하도 아닌 요식행위일 뿐이다. '이웃사촌'이라는 단어는 이제 더 이상 설자리를 잃은듯하다.


관심이라는 건 늘 쌍방일 때 성립되는 법이거늘, 이웃 간 서로 궁금한 게 있어야 대화의 물꼬도 틀어지겠지만, 요즘 사람들은 자기 집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타인을 경계의 대상으로 인식한다. 하여 이웃과 친해지는 일은 점점 더 어렵고, 그렇게 이웃 간에는 얇고 투명한 벽들이 층층이 쌓여간다.


나는 이왕 한 동네에 사는 이웃들과 기분 좋게 소통하며 지내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괜히 말을 걸었다가 선을 넘어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을까 싶은 조심스러운 마음이 있다. 한 번은 용기를 내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이웃 아주머니와 그녀의 강아지에게 관심을 보여본 적이 있는데, 그 둘 모두 수줍음이 많은 탓에 제대로 된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도망치듯 사라져버렸다.



그럼에도 나는 이웃에 대한 관심을 놓지는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 집을 사이에 둔 양옆 집 이웃들 모두 무척 개성 넘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어 눈길을 주지 않을 방도가 없었다.


오른쪽 집에는 대학생 자녀를 하나 둔 부부가 살고 있다. 가끔 집에 들어가는 길에 복도에 나와 있는 아들을 보게 되는데, 담배를 태우는 모습이 꼭 제 아버지를 빼닮았다. 담배를 피우다 나와 눈이 마주치면 황급히 끄는 척하지만, 실제로 끄지는 않는 그 어설픈 모습까지 빼다 박은 모습이다. 그 밖에도 이 집에서는 부부 싸움이 일상이고, 바람을 피우다 상간녀와 삼자대면한 사건까지, 벽 너머로 들려오는 이야기를 풀자면 하룻밤을 꼬박 새워도 모자랄 판이다.


왼쪽 집도 만만치 않다. 이 집 주인은 젊은 청년으로 개와 단둘이 살고 있는 듯한데, 방범에 민감한 성격인지 도어록과 방범 카메라가 우리 동네에서 가장 고급스럽다. 그런데 오히려 그런 고급 장비들 때문에 더 도둑들의 눈길을 끌지는 않을까 우려스럽기도 하다. 사실 그가 개를 키우고 있다고 생각하는 건 오직 내 추측일 뿐이다. 나는 그 집 주인이 개를 산책시키는 모습을 본 적도, 문 앞을 지나며 개 냄새를 맡은 적도 없다. 다만 밤마다 들리는, 개라고 하기에 묘한 울음소리가 유일한 단서일 뿐이다. 그 우는소리가 하도 묘해서 이것이 정녕 개 우는소리인지 사람 신음 소리인지 아직도 잘 가늠이 안된다.


그럼에도 이 두 집과의 관계가 불편할지언정 치명적인 문제를 만들지는 않았기에, 이대로 오래도록 옆에 살아주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특히 오른쪽 집의 아저씨는 나름 '상남자'라, 외부인이 아파트에서 소란을 피우거나 문제가 생기면 거침없는 욕지거리와 함께 해결을 보고 오므로, 함께 지내는 것도 나쁠 것 없게 느껴진다.


마음 같아선, 이웃들과 다정히, 가깝게 지내고 싶다. 하지만 그러기에 지금의 우리는, 너무 바쁘고, 또 너무 불편할 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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