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잠시 마트에 다녀오는 길, 지난밤에 본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가끔 영화를 보고 나면 평론회 같은 걸 연다. 이번에 본 영화는 〈퍼펙트 데이즈〉였다. 주인공은 도쿄의 공중화장실 청소부. 독신으로 혼자 살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철저할 정도로 자기만의 루틴을 지키며 살아가는, 한편으로는 고독해 보이기도 한 인물이었다.
아내는 주인공이 루틴을 지키는 모습이 꼭 내 일상과 닮았다고 했다. 나도 영화를 보며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다 보고 나서는 어딘가 닮은 듯 다른 지점이 있다고 느꼈다. 그와 나는 반복되는 삶을 산다는 것까지는 같지만, 그 반복의 방향이, 목적이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주인공의 하루는 마치 삶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으려는 도피처럼 보였다. 사람들이 꺼리는 청소 일이었지만, 그는 장인 정신이라도 가진 듯 몰두하며 현재에만 집중했다. 하지만 그 몰두가, 어쩌면 무언가를 꾹꾹 눌러 담고 숨기려는 몸부림 같았다. 그런 그의 하루는 버티는 삶, 혹은 열심히 인생을 허비하는 삶처럼 보였다. 그렇게 반복하며 무언가 잊고 싶은 현실이 있는 건 아닐까.
그런 면에서 나는 조금은 다르다. 나 역시 매일 반복되는 하루를 살고, 나만의 규칙을 정해 많은 일을 루틴으로 만들어 지키지만, 나에게는 ‘왜’라는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이유가 있다. “매일 1센티라도 전진할 것.” 어제의 나와는 조금이라도 다르길 바라며, 작게나마 변화를 이루어 내기 위해서, 나는 무수히 오늘을 반복한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가면서도, 조금도 변하지 않기를 바란다면 그게 오히려 부자연스러운 게 아닐까. 주인공의 삶은 그런 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영화 후반부, 그림자 겹치기 실험 장면에서 주인공이 울먹이며 외친 말이 있다. “변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아니냐.” 그 자신도 내면에 굳게 닫힌 무언가를 느끼고 벗어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그렇게 이야기 한 것처럼 보인다.
한편, 나와 기분 나쁠 정도로 닮은 점도 있었으니, 바로 아침에 현관문을 나설 때 애써 웃는 표정을 짓는다는 것이었다. 감독의 의도와는 다를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 장면에서 주인공의 웃음이 억지로 짜낸 듯 보였다. 스스로를 속여 긍정적인 암시라도 주지 않으면 고단한 하루를 견딜 수 없다는, 절박한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나도 그렇다. 어떤 날은 몸이 부서질 것처럼 힘들지만, 나는 그런 시련 앞에 오히려 웃음으로 맞선다. “이 정도 시련은 있어야 재미지. 이 정도로 내가 질 것 같냐? 이건 오히려 레벨 업 찬스다!” 그렇게 마음속으로 외치며 웃어넘긴다. 그러면 정말로 신기하게도 고통은 조금씩 희미해지고, 눈앞에 막혔던 길도 조금씩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주인공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그렇게라도 인생의 고단함을 이겨낼 수 있다는 사실을, 감독은 관객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오늘도 웃는다. 어떤 고통과 시련이 내 앞을 막아선다 해도, 결국 웃음으로 넘겨버릴 수 있다. 까짓것,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못할 게 뭐 있겠나. 그렇게 생각하고 나면 이상하리만큼 또다시 힘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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