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쟁의 이유

by 오제이


얼마 전 연봉 협상이 있었다. 말이 협상이었지만 실상은 통보에 가까웠다. 직원들을 한데 불러 모아 “다 같이 같은 비율로 인상하니 불만 갖지 말라”는 회사 측의 입장은 담담했고, 그 담담함 속에 오히려 차가운 단호함이 배어 있었다. 동결보다는 나은 일이었으나, 그 자리에 앉아 있던 누구도 기뻐하지 않았다. 얼굴은 침착했지만, 마음속에선 어딘가 공기가 새어 나가는 것처럼 서글픔이 피어올랐다.



신입 시절, 나의 첫 연봉 협상은 '동결'이었다. 1년 넘게 기꺼이 시간을 바치고, 묵묵히 버텨낸 결과가 고작 동결이라니. 서러운 마음에 밤마다 속앓이를 했다. 그때 나는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주머니 속 숫자를 들여다볼 때마다 결혼은커녕 홀로서기도 벅찬 현실에 가슴이 답답해졌다. 벽은 높고 두터웠고, 나는 그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기만 했다.


더 올려달라 말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모두가 동결인데, 나만 욕심을 낼 순 없었다. 어필 정도는 할 수 있었겠지만, 목 안에서 말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했다. 나는 선배도 후배도 없는 외로운 신입이었다. 그 무력한 시간 속에서, 홀로 지는 해를 바라보며 마음을 다잡는 일이 고작이었다.



올해도 비슷한 광경이 펼쳐졌다. 하지만 이제 나는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어느덧 선배라 불리는 자리에 섰고, 내 뒤엔 적지 않은 후배들이 버티고 있다. 성난 눈빛 속에 서린 말 못 할 서러움과 울분이 낯설지 않았다. 나는 그들에게 작은 힘이라도 보태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


과거의 나를 떠올렸다. 그때의 나는 어떤 손길을, 어떤 말을 기다렸을까? 그 물음 앞에 서니, 어느새 후배들의 자리에 과거의 내 모습이 겹쳐 보였다. 나는 ‘언젠가 후배가 생기면 꼭 이렇게 해줘야지’라고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다짐들을 조심스레 꺼내어 펼쳐 보았다.



10년 전, 나에게도 누군가 선배라는 이름으로 옆에 있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회사라는 차가운 구조 안에서 조금 더 목소리를 내주고, 내 서툰 손을 잡아주었더라면, 내가 내지 못한 말들을 대신 전해주었다면 어땠을까. 비록 결과가 달라지지 않더라도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덜 춥게 느껴졌으리라. 그 작은 온기로 다시 하루를 버틸 수 있었으리라.


그래서 지금 나는 이의를 제기하고, 작은 싸움을 멈추지 않는다. 더 나은 처지를 위해 홀로 싸우던 시기를 지나, 이제는 나와 함께 이곳을 살아갈 사람들, 아직은 미완성인 꿈을 쥐고 서 있는 후배들을 위해 목소리를 낸다. 그것이 비록 바람 한 점에 스쳐가는 미약한 외침일지라도, 언젠가 그 바람이 순풍이 되어 이 황량한 회사를 조금은 따뜻하게 덮어주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때, 후배들이 나처럼 외롭지 않기를, 그늘진 창밖으로 지는 해만 바라보지 않기를, 마음 깊이 소망한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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