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함께 숨 참기 시합을 해봤다. 자신만만한 표정의 아내를 보며 나는 그녀가 그리 오래 버티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였다. 아내는 무려 1분 30초나 버텼고, 나는 그보다 한참 더 긴 2분 30초까지 숨을 참았다. 내 기록에 내가 더 놀랐다. 내가 이렇게 오래 참을 수 있었던가? 마음만 굳게 먹으면 3분도 넘길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마저 들었다. 문득, 나는 언제 이렇게 폐활량이 좋아진 걸까, 궁금해졌다.
알고 보니 숨 참기는 폐활량과는 크게 상관없다고 한다.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숨을 쉬지 않고도 평균 4분 이상 버틸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 정말 숨 참기의 대들은 10분을 넘기기도 한다. 그런데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겨우 1분, 2분만 숨을 참아도 고통에 휘청거리고, 생명이 위태로운 것처럼 느낀다. 이상하지 않은가? 몸은 아직 충분히 버틸 수 있는데, 왜 그렇게 빨리 괴로워지는 걸까?
그 이유는 몸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뇌가 보내는 거짓말 때문이다. 우리의 몸은 실제 위급한 상황이 오기도 전에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보수적인 알람을 울린다. 숨을 오래 참으면 가슴이 답답해지고, 마치 공기가 완전히 고갈된 듯한 착각에 빠진다. 뇌는 필사적으로 우리에게 외친다. 지금 당장 숨을 쉬라고, 그렇지 않으면 위험하다고. 그러면서 가슴 한복판에 마치 무거운 돌덩이를 얹어 놓은 듯한 압박감을 만들어 숨쉬기를 재촉한다. 그렇게 사람들은 스스로 위기의 한가운데 있다고 믿게 되고, 결국 참지 못하고 숨을 들이마신다.
불교에서는 이런 말을 한다.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은 선택이다.” 몸의 고통과 마음의 괴로움은 별개의 것이며, 우리는 흔히 외부의 사건 때문에 마음까지 고통에 빠트린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미 벌어진 일이라면 그것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을 두고 굳이 괴로워할 필요는 없다. 기차가 역을 지나가듯, 우리는 그저 역이 되어 감정이라는 기차가 지나가도록 가만히 기다리면 된다. 잠시 가슴이 조이고 고통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마음속에 눌러앉아 괴로움으로 자리 잡게 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지금 느끼는 고통이 정말 어쩔 수 없는 진짜 고통인지, 아니면 뇌가 보내는 과장된 신호에 불과한 가짜 고통인지 구분할 수 있는 눈을 기르는 일이다. 나는 이 힘을 키우기 위해 내면을 꾸준히 들여다보는 연습을 권하고 싶다. 처음에는 잘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근육이 조금씩 자라듯, 매일 아주 짧은 시간이라도 마음을 관찰하다 보면 어느새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씨앗을 뿌리고 다음 날 바로 열매를 맺을 수는 없다. 내면을 단련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다. 조급해하지 말고 장기적인 안목으로 천천히, 그러나 꾸준히 내면의 근육을 키워나가자. 어느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세상이 전혀 다르게 보이는 마법 같은 순간을 마주하게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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