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 모험을 시작할 나이

by 오제이


지금껏 살면서 가장 큰 모험이 무엇이었을까. 저질러버렸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대범했던 결정을 해본 적이 있었던가. 언뜻 떠오르는 건 혼자 유럽으로 한 달 넘게 배낭여행을 떠났던 일이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그때의 나는 이미 혼자 여행하는 데 익숙해져 있었으니, 과연 그것이 큰 모험이라 부를 수 있을까 싶다.


그렇다면, 처음 무작정 여행을 떠나겠다고 마음먹은 건 언제였을까. 유년 시절, 한창 마음이 요동치고 방황하던 그 시기였다. 자전거도 없고, 자가용은 더더욱 꿈도 꾸지 못하던 고등학교 시절, 나는 오로지 내 두 발에 의지해 전국을 거닐기로 결심했다. 경기 북부에서 충청남도 논산까지, 며칠을 걸어 도착한 그 길 위의 풍경과 공기, 심지어 스치던 냄새까지도 여전 또렷하다. 해 질 녘, 발바닥이 부르튼 채 걸었던 시멘트 도로 위의 노을빛, 다 쓰러져 가던 휴게소의 퀴퀴한 먼지 냄새, 어딘가 짠 내 섞인 논두렁 바람까지. 그 시절 그 길 위에서 세상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그 밖에도 바보 같을 만큼 엉뚱하고 유쾌한 사건들을 쏟아내듯 만들어가며 자랐다. 유리병에 가스를 주입해 불을 붙였다가 폭발시킨 적도 있고, 팔 힘이 얼마나 센지 알아보겠다고 담벼락 밖으로 바위를 던지다 아버지의 새로 산 차 지붕을 찌그러뜨린 적도 있다. 그러다 큰소리로 혼이 나기도 하고 가슴 졸이며 밤을 지새우며 나이를 먹었다. 그렇게 자란 나는 성인이 된 후에 다양한 직업을 전전하고, 낯선 모임에 덜컥 뛰어들며 도전적인 청춘을 보냈다.



그러나 마흔이 된 지금, 문득 뒤를 돌아보면 어쩐지 마음이 한없이 옹졸해진 듯한 기분에 사로잡힌다. 가질 수 없던 것에 대한 갈망으로 가슴이 뛰던 그때와는 달리, 이젠 오히려 가질 수 있는 것들에 대해 끊임없이 계산하고 고민한다. 생각의 폭이 넓어졌다고, 세상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었다고 자부했지만, 어쩌면 그것은 오만함이었고 착각이었다. 어느새 더 조심스럽고, 더 보수적으로 변해버린 나 자신을 본다. 낯선 길을 걷는 대신 익숙한 길을 택하고, 모험보다는 안정을, 설렘보다는 안전한 결과를 고집하는 나를.


왜 이렇게 되었을까. 한 가지 이유로 단정 지을 수는 없겠지만, 나는 문득 이 변화의 배후에 체력이 있다는 생각에 닿는다. 마흔이 되면 스무 살 때보다 오히려 더 강한 체력을 가져야 한다. 머리는 점점 커지고 생각은 깊어지는데, 그것을 담아낼 그릇은 여전히 스무 살 때의 것이라면, 어느 순간 넘쳐흐를 수밖에 없다. 20대에 만든 몸을 100세까지 쓰려는 건 욕심이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몸이 처지고 근력이 떨어진다. 그러므로 지혜를 쌓는 만큼, 그 지혜를 현실로 옮길 힘과 체력도 함께 키워야 한다.



다시 마음속에 힘껏 기운을 불어넣는다. 예전처럼 무턱대고 길을 나설 순 없더라도, 적어도 내 안에서 사그러드는 불꽃은 스스로 밝힐 수는 있지 않겠는가. 어쩌면, 지금 내게 필요한 모험은 세상 밖이 아니라, 다시 나 자신 안으로 한 발 깊이 들어가는 일이 아닌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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