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화를 낸 게 언제였더라?

by 오제이


가장 마지막으로 화를 낸 게 언제였을까. 아무리 떠올려보려 해도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좀처럼 화를 내지 않는다. 화가 나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설령 분노가 치밀어 오를지라도 겉으로 드러내는 법이 없다. 화를 낸다는 건 결국 그 순간의 패배를 인정하는 일이고, 시간이 지난 뒤돌아보면 어김없이 부끄러운 기억으로 남을 걸 알기 때문이다. 나는 웬만해선, 그런 을 감수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화를 억지로 눌러 참는 것도 아니다. 참는다는 건 결국 언젠가 터질 걸 억눌러둔다는 뜻이고, 그 끝은 대개 홧병이라는 이름으로 찾아온다고들 하지 않던가. 나는 그보다는 차라리, 화라는 감정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인정하는 편을 택한다. 예컨대 화가 치밀면, 우선 그 감정의 출처를 더듬어본다. 내 심박이 왜 이렇게 요동치는지, 무엇이 이토록 나를 뒤흔드는지를 곰곰이 들여다본다.


그리고 그 화가 정말 정당한가, 스스로 묻는다. “이 상황에서 내가 화를 냄으로써 더 나은 결과를 만들 수 있을까?” 이 질문을 붙잡고 골몰하다 보면, 어느새 분노는 그 끝을 잃고 조용히 가라앉는다. 그렇게 나를 끓게 했던 상황도 슬그머니 지나가버린다.


사실 내가 이렇게 온화할 수 있는 이유는, 내 일상에서 마주치는 화들이 그다지 격렬하거나 파괴적인 것들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작해야 누군가 새치기를 한다거나, 신발을 밟고 간다거나, 조금 불쾌한 말을 듣는 일 정도다. 생사를 다투거나 삶이 송두리째 뒤흔들릴 일은 좀처럼 없다. 그러니 감정 또한 잔잔한 리듬에 익숙해진다. 그런 평평한 날들이 이어진 덕에, 나의 마음도 점차 잔잔한 호수처럼 변해온 것이 아닐까 싶다.



마지막으로 화를 냈던 기억은, 아마도 10년은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다. 회사에서 폭력적인 상황에 휘말렸을 때, 나는 분명히 화를 냈다. 그러나 지금 같으면 아마 그렇게까지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다. 감정을 쏟아내는 대신, 충분히 감내하고 흘려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물론, 심장이 쿵쿵 뛰고 속이 끓어오르는 순간이 전혀 없었던 건 아니다. 그런 때마다 나는 걷기를 택했다. 걷고 나면 마음이 진정되고, 어지럽던 상황들이 조금씩 제 모습을 드러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걷는다는 건 일종의 명상이었다. 규칙적인 리듬의 움직임은 뇌의 편도체를 안정시켜, 심박을 원래대로 돌려놓는다. 심박이 가라앉으면 분노도 자연스럽게 식어 없진다.


그 과정을 반복하다 보니, 내 안에는 하나의 습관이 자리 잡았다. 화를 내지 않는 게 아니라, 화가 되지 않는 마음을 길들여온 것이다. 마음이 쉽게 요동치지 않는다는 건 평화로운 일이지만, 문득 나는 스스로를 의심하게 되기도 한다. 혹시 오랜 시간 우울을 겪으며, 이제는 무엇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되어버린 건 아닐까 하고.


하지만 어찌 됐건, 마음이 잔잔해지는 습관을 갖게 된 건 삶의 큰 축복 중 하나라고 믿는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옛말처럼, 때로는 과정보다 방향이 중요할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도 웃으며 살고 싶다. 기뻐할 시간도 부족한 인생 아닌가.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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