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연하고 고요한 기분이 들 땐

by 오제이


요즘은 유난히 고요한 기분이 든다. 뭔가를 해야 하는 것도 같고, 뭔가를 놓치고 있는 것만 같은데, 정작 그게 뭔지를 알 수 없어 마음이 탁 막힌다. 사실은, 놓치고 있는 것이 아예 없을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있는 시간이, 어쩌면 그 자체로 불안을 자아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고요한 시간은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면 공허함이 되고, 한 걸음만 앞으로 내디디면 고독함이 될 것만 같다.


최근 들어 이 막연하고 고요한 시간이 부쩍 늘었고, 나는 그 시간을 어떻게 써야 할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냥 흘려보내기에는 마음이 조급하고, 뭔가 하지 않으면 불안함이 나를 삼켜버릴 것만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그리고 해야만 하는 일들을 하나하나 나열해 보았다. 그 안에서 집중해야 할 단 하나의 본질을 골라내기 위해서였다.



본질에 집중하기 위해선, 무엇이 본질인지를 먼저 알아야 한다. 그런데 나는 그게 무엇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내가 진정으로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은 흐려졌고, 생각은 희미해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건 내가 취미처럼 하고 있는 일들이었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취미를 늘릴 생각이 없다. 이미 나는 충분히 많은 취미를 가지고 있고, 그것들이 내 삶의 중심이 되기는 어렵다고 느꼈다.


그다음엔 내가 지금 ‘일’로서 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들여다보았다.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일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글쓰기는 지난 몇 년 동안 나름대로 일상의 일부가 되었고, 본질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애써왔다. 그렇다면 그림은 어떨까. 그림 그리는 일에 글을 쓰는 시간만큼의 집중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그 안에서 지금껏 보지 못했던 어떤 다름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능이라는 건 그 유무를 확인하려면 반드시 그만한 시간을 들여야만 드러나는 법이다. 돌잡이처럼 운 좋게 하나 집어 든다고 손에 쥐어지는 것이 아니다. 어떤 일을 마음먹고 꾸준히 해 나가다 보면, 그 일에 재능이 있는지 없는지는 결국 천천히 드러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번 기회에 나의 그림 재능을 시험하기로 했다. 정확히는, 그림을 통해 상업적인 활동이 가능할지를 확인해 보고 싶었다. 그림으로 먹고살 수 있을지를, 아니, 적어도 그림으로 나만의 무언가를 만들 수 있을지를 보고 싶었다.


그러려면 일단 그림을 잘 그리는 것. 그것이 본질이겠다. 그 본질을 키우기 위해 나는 고요한 느낌이 들 때마다, 틈이 날 때마다 그림을 그리기로 했다. 정석대로 하나하나, 요행 없이 차분히 시간을 축적하기로 했다. 그러면 언젠가, 어느 순간에는 분명한 확신이 찾아올 거라고 믿는다.


나는 늘 무언가를 시작할 땐 끝을 정해둔다. 기한이 있어야 그 일이 시작되고 유지되는 데 힘이 붙는다고 믿기 때문이다. 실행의 시간을 구체적으로 설정해두면, 어느새 그것은 습관이 되고, 그러면 나도 모르는 새에 내 안의 본질이 자라난다. ‘고요한 느낌이 드는 틈틈이 올해 말까지’, 어떤 변화를 만들 수 있을지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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