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 싶은 마음은 분명한데, 손이 잘 가지 않는 책이 있다. 두껍거나, 한눈에 쉽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을 때면 괜히 더 먼 존재처럼 느껴진다. 그런 책 중 가장 오랫동안 내 곁에 머물러 있는 한 권이 있다면, 단연 《정의란 무엇인가》다.
이 책을 처음 산 건 아마도 20대 초반이었을 것이다. 그러니 벌써 십 년 넘게, 여러 번 펼쳐봤으면서도 한 번도 끝까지 읽지 못한 채 나와 함께 나이를 먹은 셈이다. 예전에는 짙은 주홍빛이었던 표지도 이제는 햇빛에 바래 누렇게 변해버렸다. 그래도 여전히, 읽고 싶다는 마음은 남아 있어서 책장 깊숙한 곳에 묻지 않고 항상 트롤리 위에 꺼내 두고 있다. 언젠가는 다 읽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바람으로.
이상하게도, 나는 매번 같은 곳에서 멈춘다. '트롤리 딜레마'. 생명을 두고 선택을 해야 하는 윤리학의 대표적인 사고 실험이 소개되는 부분이다. 누군가를 살리고 누군가를 희생시켜야 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 앞에서, 나는 늘 마음이 얼어붙는다. 그 선택에는 언제나 정답이 없는 탓이다. 어떤 쪽도 완전히 옳다 말할 수 없기에, 매번 같은 자리에서 책을 덮는다.
얼마 전, 로봇과학관에 간 일이 있었다. 마침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전시가 한창이었다. 코딩 체험, 로봇 축구 게임 같은 부스 사이로 '자율주행 자동차의 트롤리 딜레마'를 묻는 체험 공간이 눈에 띄었다. 나는 조심스레 의자에 앉아 테스트에 참여했다. 상황은 다양했다. 사람을 살릴 것인가, 동물을 살릴 것인가. 어린이와 노인 중 누구를, 보행자와 동승자 중 누구를. 여러 장면을 거치며 나름대로 최선의 선택을 했다고 생각했지만, 마지막에 받아든 결과지는 예상 밖이었다. 내 선택이 평균과 많이 달랐다. 특히 '타인보다 나를 먼저 보호하는 성향'이 뚜렷하다는 분석이 선명하게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혹시 무슨 오류가 있었나 싶었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 다시 비슷한 문제를 풀어봤고, 결과는 비슷했다. 나는 생각보다, 나를 우선시하고 있었다. 그 사실 앞에서 마음이 조금 고요해졌다. 그게 나라는 사람인가 싶기도 하고, 내가 알고 있던 나와 어쩐지 조금 다른 느낌이기도 해서, 한참을 곱씹게 되었다.
생각해 보면, 예전부터 ‘너는 자기중심적인 사람 같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그것은 꼭 이기적이라는 말이 아니라, 스스로의 가치에 확신이 크고, 인생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챙기려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였다. 나는 내심, 나는 이타적인 사람이라고 믿어왔다. 그렇게 살고 있다고 여겼고, 그렇게 살고 싶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저 ‘이타적이고 싶은 사람’이었는지도 모른다. 실제로는 그만큼의 용기나 여유를 갖고 있지 않으면서 마음만 앞섰던 것 같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내가 나를 중심으로 사고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게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 삶을 지키기 위해 태어난 존재니까. 순수하게 타인을 먼저 생각하는 마음, 그건 정말 가능한 일일까? 본능보다 타인을 앞세운다는 건, 어쩌면 본능을 거스르는 일은 아닐까?
그래서인지 《정의란 무엇인가》는 늘 그 지점에서 나를 붙잡는다. 트롤리 딜레마를 지나 다음 장으로 넘어가기가 어렵다. ‘정의’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누가 그것을 정의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 부딪히게 된다. 사회가 정해 놓은 규칙이 곧 옳음일까? 다수가 옳다고 믿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진짜 선일까? 나는 아직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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