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현충일, 아내가 출근하게 되면서 뜻밖에 혼자만의 시간을 맞이했다. 평소 같으면 일찌감치 계획을 세웠겠지만, 이날만큼은 달랐다. 아내가 현관문을 나선 뒤, 나도 부랴부랴 집을 챙겨 나왔지만 정해둔 목적지는 없었다. 무얼 할지도, 어딜 갈지도 정하지 않은 채, 그저 몸이 이끄는 대로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도시의 시가지 한복판을 떠돌며 조용히 머물 수 있는 곳을 찾았지만 좀처럼 마음에 드는 공간은 없었다. 탁 트인 한가로운 자리 하나 찾기 어려운 풍경 속에서, 나는 여러 번 발길을 돌려야 했다. 도심 속에서는 가만히 앉아 깊은 생각에 잠긴다는 일 자체가 어쩌면 사치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처럼 가만히 앉아 하늘을 바라볼 수 있는 광장 하나쯤은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결국 내가 쉴 수 있는 공간이라곤 카페뿐이라는 사실에, 현실이 너무 빤하고 협소하게 느껴졌다.
카페에 들어가 조용히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 가방 속에 넣어두었던 작은 노트를 꺼내 그림을 그렸다. 그러고는 백화점에 맡겨 두었던 옷을 찾아오고, 다이소에 들러 필요했던 생필품도 샀다. 겉으로 보기엔 제법 알찬 하루처럼 보였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마음속에선 불안이 연기처럼 피어올랐다. ‘이 귀한 시간을 이렇게 흘려보내도 괜찮은 걸까?’라는 생각이 쉬지 않고 나를 따라다녔다. 그것은 마치 평소 궁핍하던 이가 갑자기 금은보화를 얻고도,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허둥대는 모습 같았다.
나는 시간의 가치를 무엇보다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다. 계획하고, 계산하며 움직이는 삶에 익숙한 나에게 예고 없이 주어진 이 하루는 뜻밖에도 큰 혼란을 안겼다. 무작정 거리로 나서는 그 순간, 나는 문득 내가 얼마나 위태로운 존재인지, 내 마음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실감했다. 아무런 목적도 없이 거리 위에 서 있는 나 자신을 보는 일은 예상보다도 더 낯설고 불안했다.
그러나 그 불안과 마주하며, 나는 내가 진정으로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들여다보게 되었다.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와,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은 무엇인가. 불안은 그 자체로 무서운 게 아니다. 다만 그것에 잠식당할 때, 나는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되어버린다. 스스로를 잃고, 내 안의 어둠에 사로잡힌다.
그래서 이제는 그런 감정이 다가올 때, 그 속에 빠지기보다 한발 물러나 바라보려 한다. 마치 영화 한 장면을 감상하듯, 불안을 마주한 나 자신을 3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남의 일처럼 바라보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그러면 묘하게 마음이 가벼워진다. 주인공에게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나의 내면 깊은 곳에서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그 안에는 내가 놓치고 있던 피로, 기대, 집착이 숨어 있다. 지나친 완벽주의일 수도 있고, 말없이 켜켜이 쌓인 피곤함일 수도 있다. 혹은 아직 풀지 못한 어떤 근심이 거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세상엔 이유 없는 일이란 없다. 어떤 감정도, 어떤 사건도 다 저마다의 원인을 품고 찾아온다. 그걸 파헤치고, 해석하고, 발견해 내는 데 익숙해지면 인생은 어느새 끝없는 탐험이 된다. 그건 흥미롭고, 살아 있다는 실감을 주는 일이기도 하다. 그래서 지루한 날이 오면, 오히려 그 순간을 반갑게 맞는다. 그건 내 안의 어떤 갈증이 나를 깨우려는 신호일지도 모르니까.
나를 관찰하자. 내가 왜 지루한지, 왜 불안한지. 그 물음 속에 답이 있고, 그 답은 내 삶의 방향이 된다. 그리고 그런 날들 속에서 나는 스스로를 조금씩 단련해 간다. 게임 속 캐릭터처럼, 경험치를 쌓고 능력을 다듬으며. 어쩌면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자신을 레벨 업시키는 중일 지도 모른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