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물 드라마를 보다 문득, 이상한 상상이 스쳤다. 만약 내가 오늘 변사체로 발견된다면, 어떻게 될까. TV 속 형사들처럼 내 죽음에 의문을 품고 꼼꼼하게 수사를 해줄까.
“이 형사, 오제이의 사건 당일 동선 전부 파악해 줘. 최근 일주일간 통화기록, 탄 버스 번호, 탑승 시간, 안에 누가 있었는지, 어디에 앉았는지까지 전부. 놓치지 말고.”
“선배님, 이미 확인 끝났습니다. 별로 확인할 것도 없더라고요. 오제이는 통화기록이 전혀 없고요. 매일 같은 시간 같은 버스를 타서 같은 자리에 앉았고, 집과 회사만 오갔습니다.”
“그래? 그거 참, 끔찍할 정도로 성실한 인생이군. 이 사건, 예상보다 난이도가 높겠어. 시신 발견 당시 소지품은 그대로였는데, 회사 출입카드 키만 사라졌더군. 면식범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주변 인물부터 조사해 봐.”
“그것도 이미 조사했습니다. 동료와 가족 외에는 특별한 인간관계가 없고, 갈등이나 다툰 정황도 없습니다.”
“……지독하리만치 평온하고 재미없는 삶이로군.”
아마, 이런 식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나는 매일 비슷한 옷을 입고, 같은 시간에 같은 버스를 타며, 같은 위치에 앉고, 같은 커피를 같은 시간에 마신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자리에 눕는다. 나는 그 단조로움 속에 안도하는 사람이다. 지루하다는 말이 어울릴 수도 있지만, 나는 그 틀 안에서 나만의 균형을 느낀다.
다만,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런 내 삶이 세상에 낱낱이 드러난다면, 조금은 부끄러울 것 같다. 누가 봐도 평범하고 무난하며, 감탄 거리라곤 없는 일상의 연속. 물론 핫플레이스를 누비거나 수많은 사람과 어울리는 삶만이 흥미로운 것은 아닐 테지만, 나처럼 일정한 틀 속에 안주한 인생은 누군가에겐 ‘심심한 삶’으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그 반복의 결 속에서 조용한 즐거움을 찾을 줄 안다. 하루의 틈마다 나만이 알아챌 수 있는 작은 기쁨을 책갈피처럼 끼워두곤 한다. 남들은 보지 못하지만, 나는 그것들을 천천히 꺼내어 나만의 속도로 음미한다. 글을 쓰는 시간, 그림을 그리는 순간, 고요한 사색에 잠기는 밤. 그 모든 것이 나의 작은 행복들이다.
나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언젠가 세상을 놀래킬만한 어떤 기발한 사고 하나쯤을 터뜨겠다고 마음먹고는 있지만, 그런 순간이 오지 않더라도 괜찮다. 지금처럼 무해한 사람으로 남아도 좋겠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도 든다. 오늘 떠올린 상상들을 엮어 진짜로 소설 하나 써보는 것도 재미있겠다고. 혹시 모르지, 그러다 엄청난 게 탄생할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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