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던 시절, 친구와의 약속을 앞두고 나는 한껏 멋을 부렸다. 새로 산 옷을 입고 머리엔 헤어 제품을 잔뜩 발랐다. 잘 다려진 소라색 옥스포드 셔츠와 두 번 접어 올린 셀비지 데님, 목 뒷부분을 반듯하게 정리한 단정한 머리. 모든 것이 깔끔하게 맞춰진 날이었다. 전신 거울 앞에 섰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분명 잘 준비했는데, 내가 상상하던 느낌이 아니었다.
옷을 갈아입어보고, 머리 모양도 다시 만져보았다. 그런데도 이상한 느낌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도대체 뭐가 문제인 걸까. 내가 나를 평소에 잘못 인지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어쩌면 이 부자연스럽고 어색한 모습이 실은 나의 진짜 모습인 걸까. 거울 앞에 서서 한참을 그렇게 속상해하며 마음을 다잡지 못했다. 실망한 채로 외출 준비를 마치고 현관을 나서려던 순간, 거울을 무심코 비스듬히 돌려보았고, 그제야 무엇이 잘못된 건지 알 수 있었다.
문제는 내게 있지 않았다. 자취방에 이사 들어올 때 선배에게 물려받은 그 저렴한 전신 거울, 그 거울이 문제였다. 나는 그때까지 거울은 모두 같은 거울인 줄 알았다. 거울이 왜곡될 수 있다는 사실 자체를 의심해 본 적이 없었다. 그 거울은 플라스틱 판위에 은박 필름을 덧댄, 멀리서 보면 좌우가 일그러지듯 형태가 휘는, 한마디로 싸구려 거울이었다. 가까이서는 멀쩡해 보이지만, 한 발짝만 물러나면 내 모습이 엷게 비틀어져 있었다.
이유를 알고 나니, 이상하게 느껴졌던 내 모습은 더 이상 낯설지 않았다. 욕실에 있는 제대로 된 거울 앞에서 다시 모습을 정돈하자, 거울 속의 나는 훨씬 편안해 보였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나는 그대로인데, 나를 비추는 매개체가 달라졌을 뿐인데, 그 차이가 나의 기분을, 나의 자신감을 그렇게까지 바꿀 수 있다니. 그날 나는 하나의 통찰을 얻었다. 내가 나를 바라보는 방식조차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면, 타인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는 과연 내가 확신할 수 있는 일일까. 결국 그들의 시선은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고, 통제할 수 없는 일이라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일 아닐까. 그런 생각이 마음속에 잔잔히 내려앉았다.
사진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인물 사진은 렌즈의 종류에 따라 인상이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광각렌즈는 얼굴을 넓고 길게 왜곡시키고, 망원렌즈는 오히려 눌린 듯 좁게 만든다. 스마트폰으로 셀카를 찍으면 얼굴이 오이처럼 길쭉하게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고, 친구가 찍어준 사진 속 내 모습이 셀카 속 나와 전혀 달라 보이는 것도 렌즈 왜곡의 대표적인 예다.
그렇다면, 대체 내 진짜 얼굴은 무엇일까. 사람의 눈과 가장 유사한 화각이라는 50mm 표준렌즈로 찍은 모습이라면 진짜라고 할 수 있을까? 이 궁금증을 안고 나는 오랫동안 주변 사람들에게 묻곤 했다. 이 사진 속의 내가, 실제의 나와 같냐고. 거의 대부분은 ‘그렇다’고 대답했다. 어떤 렌즈로 찍든, 그 차이를 다르게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분명 왜곡이 존재하고, 내 눈엔 차이가 분명한데도 왜 사람들은 그 차이를 구분하지 못하는 걸까. 내 눈이 이상한 걸까, 아니면 내가 뭔가를 잘못 인식하고 있는 걸까. 혹시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하는 어떤 비밀이 숨어 있는 건 아닐까. 생각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사진의 왜곡도, 저품질 거울의 왜곡도 결국은 동일한 인식을 가리킨다. 내 머릿속에는, 내가 상상하는 ‘나’의 이미지가 따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 이미지 속 나는 고정되어 있다. 마치 움직이지 않는 사진처럼, 완결된 형상으로 존재한다. 그것이 곧 고정관념이자, 정체성에 대한 착각이다. 내가 나라는 존재의 유연함을 인정할 수 있다면, 더는 거울을 보든 사진을 보든 낯섦을 느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이 모습 또한 나의 모습이다.’ 인정할수록 마음이 편해진다. 누군가는 나를 이렇게 볼 수도 있고, 나 스스로도 언제든 그런 사람이었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건 문제가 아니다. 나라는 존재가, 나라는 삶이 타인의 눈에 어떤 식으로 인식되든 그것은 내 영역이 아니다. 나는 그들의 눈을 조정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내가 집중해야 할 것은 그 너머에 있지 않을까. 변화와 다름에 순응하며, 내가 나를 보다 넓은 시선으로 인식하는 것. 그게 더 나은 선택이다.
이 깨달음 이후, 나는 점차 남의 시선을 신경 쓰는 빈도가 줄어들었다. 대신, 그 순간 나는 어떤 존재로 있는지, 어떤 생각과 의도를 품고 있는지에 집중하는 시간이 많아졌다. 인정하고 놓아주는 것, 본질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내가 지금 배우고 있는 삶의 방식이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오제이의 <사는 게 기록>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