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리즘의 간택을 기다리고 있나요?

by 오제이


요즘처럼 ‘알고리즘’이란 말을 자주 듣는 시대도 드물다. 심지어 ‘알고리즘의 간택을 받았다’는 표현까지 나돈다. 마치 알고리즘이 무슨 신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개념에 인격을 부여하는 건 어딘가 우스운 일이지만, 그런 말들이 하도 흔하게 오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 언어에 물들어 살아가고 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신발을 자주 검색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알고리즘은 그에게 더 많은 신발 콘텐츠를 보여준다. 인스타그램을 켜도, 유튜브를 봐도, 네이버 배너에도 온통 신발 이야기뿐이다. 마치 세상은 신발로 가득 찬 박람회라도 되는 듯하다. 알고리즘은 사람을 더 깊고 좁은 골짜기로 이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은 착각한다. 세상 사람들이 다 신발에 빠져 있는 줄로.


그런데 만약 그 신발이 정치였다면? 범죄, 음모, 공포, 혐오였다면? 알고리즘은 그 주제에 부합하는 콘텐츠를 차곡차곡 쌓아 보여줄 것이다. 자신도 모르게 타임라인은 의혹과 선동으로 덧칠되고, 가랑비에 옷 젖듯 그는 자기가 보는 것들을 통해 이 세상이 그렇게 돌아간다고 믿게 된다.



소셜미디어는 어느새 우리의 또 하나의 방이 되었다. 침실처럼, 거실처럼, 하루 중 가장 오래 머무는 공간이다. 그런데 그 방이 정작 나의 취향이 아닌,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져 있다면 어떨까? 내 사진이 아닌 남의 사진으로 도배된 벽, 내 말이 아닌 남의 언어로 흘러넘치는 대화. 낯익은 듯 낯선 공간 속에서 우리는 슬며시, 자기 자신을 잃어간다.


지금의 삶이 어쩐지 불만족스럽고 무기력하다면, 우선 내가 머무는 그 공간을 들여다보자. 사람은 결국 자신이 서 있는 환경에 맞춰 몸짓을 바꾸는 법이다. 좁은 방에선 어깨가 움츠러들고, 탁 트인 들판에선 자연히 고개가 든다. 옷도 달라진다. 정글에선 벌레를 피하기 위한 기능성 옷을, 사막에선 숨통을 틔울 헐렁한 옷을 택한다. 삶은, 결국 입고 걷는 공간의 반영이다.



얼마 전 ‘메트로놈 동조화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제각기 다른 속도로 흔들리던 메트로놈이 시간이 지나며 하나의 리듬으로 맞춰지는 현상. 유연한 바닥을 통해 진동이 서로에게 전해지면 결국 하나의 박자로 동기화된다는 것이다. 그 장면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머무는 공간, 나와 이웃한 사람들의 무게가 더욱 깊숙이 다가온다.


누군가 하품을 하면 나도 모르게 하품이 터지고, 한 사람이 한숨을 쉬면 옆 사람도 막막해진다. 사람은 그렇게 쉽게 감염되고, 쉽게 흔들린다. 그래서 지금 나의 삶이 바닥을 기고 있다면, 그 원인을 꼭 나에게서만 찾을 일은 아니다. 나 자신을 탓하기에 앞서 지금의 환경을 돌아보아야 한다. 어쩌면, 지금 내가 서 있는 자리가 너무도 음습하고 막혀 있는 건 아닐까 되돌아봐야 한다.



환경을 바꾸는 가장 간단한 시작은 알고리즘을 뒤엎는 일이다. 매일 보는 것을 다르게 골라보는 것. 관심의 초점을 바꾸고, 낯선 것을 클릭하고, 전혀 다른 장르에 한 번 발을 담가봄으로써 알고리즘을 바꿀 수 있다. 만일 그게 통하지 않는다면, 회사를 옮겨볼 수도 있고, 하고 있는 일을 바꾸거나, 자주 보던 사람들과 잠시 거리를 두는 것도 방법이다. 나 자신에게서만 끊임없이 문제를 찾다 보면, 어느새 자존감은 갉아먹히고 마음은 곪아 간다.


이제는 고개를 들어야 할 때다. 내 인생의 알고리즘은 내 손으로 설계해야 한다. 내 방의 풍경을 다시 보자. 그리고 아주 천천히, 알고리즘을 내 입맛에 맞게 설계해 보자. 세상이 던져준 것이 아닌, 내가 선택한 문장과 이미지, 내가 고른 감정과 사유로 나의 피드를, 나의 삶을 다시 꾸며보자. 그래야 비로소 내 삶도 나의 정신을 닮아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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