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 새지 말란 말이야

by 오제이


지난 수요일 밤엔 꽤 늦게까지 일을 했다. 오래 준비해온 프로젝트를 마무리하던 날이었다. 새벽 2시가 훌쩍 넘어서야 모든 작업이 끝났다.


자정이 넘으면 택시 잡기가 어려운 을지로. 그런데 이번엔 이상하리만큼 운이 좋았다. 콜 버튼을 누르자마자 바로 배정됐다. 피로한 하루 끝에 받은 조그만 선물 같았다.


“아파트 입구까지만 부탁드릴게요.”


기사님께는 그렇게 말씀드렸다. 이 시간 우리 아파트는 이미 2중 주차를 넘어 3중 주차까지 되어 있어서, 안까지 들어가면 차를 돌려 나오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밤중에 먼 길을 달려오신 분께 그런 고생까지 시키고 싶지 않았다.



희미한 가로등 불빛 아래에서 주차된 차들 사이를 조심스레 지나쳤다. 너무 캄캄해서 스마트폰 플래시를 켠 채 발끝을 살피며 집으로 향했다. 현관문을 열었을 땐 정적이 흘렀다. 아내는 기다리다 지쳤는지 먼저 잠든 듯했다. 괜히 깨울까 봐 조심스럽게 짐을 풀며 시계를 봤다.


2시 40분. 평소처럼 일어나려면 겨우 두 시간 남짓 남아 있었다. 그대로 쓰러지고 싶었지만, 망설였다. 샤워는 생략하고 대충 씻고 잘까? 아니, 하루의 끝을 제대로 씻고 마무리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마음을 다잡고, 따뜻한 물에 하루 내내 뒤집어쓴 피로와 먼지를 정성껏 씻어냈다.


머리까지 다 말리고 침대에 누웠을 땐, 어느덧 3시가 다 됐다. 두 시간도 못 자겠다는 생각에 불안해졌다. 알람을 재설정했다. 최소한 2시간 반은 잘 수 있게. 그리고 베개에 머리를 뉘었을 때,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잠이 몰려왔다. 피로는 잡생각조차 허락하지 않았다.



6시 40분. 평소보다 10분 늦게 출근 카드를 찍었다. 출근길 버스에서는 거의 의식이 끊겼다. 환승 버스를 타고 4정거장을 가는 사이, 졸다가 정류장을 놓칠 뻔했다. 겨우 정신을 붙잡고 회사에 도착했지만, 자리에 앉자마자 눈꺼풀이 저절로 감겼다.


‘이러다 큰일 나겠는데.’


어젯밤 프로젝트를 오픈했으니, 오늘은 수정 요청이 물밀듯 들어올 게 분명했다. 이 상태로는 실수가 뻔했다. 커피를 연거푸 두 잔 마시고, 박카스 하나, 비타 500 하나. 마지막으로 타우린 영양제까지 입에 털어 넣었다. 그런데 조금 있으니 머리가 띵해졌다. 두통의 기운이었다. 해열 진통제까지 한 알 더했다. 그렇게 나를 약으로 부추기고 나서야 정신이 조금씩 돌아왔다.


예상대로 오전 내내 수정 사항이 쏟아졌다. 하나하나 처리하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 다행히 오늘은 오전 근무만 예정되어 있었고, 나와 교대할 파트너가 제시간보다 일찍 도착해 줬다. 간단히 인수인계를 마치고 서둘러 사무실을 빠져나왔다.



가는 길에 아내의 사무실 근처에 들렀다. 둘이 함께 뜨끈한 뼈해장국을 한 그릇 비웠다. 후식으로는 배스킨라빈스의 이달의 맛 ‘애망빙’을 먹었다. 매달 한 번씩 ‘이달의 맛’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이번 달에도 지킬 수 있었다.


평소 같으면 운동 삼아 집까지 걸었겠지만, 오늘만큼은 버스를 탔다. 야근의 여파라는 핑계를 댔지만, 사실은 찜통 같은 기온이 더 큰 이유였다. 더위와 피로는 무적의 조합이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밀린 개인 작업을 하고 싶어 노트를 펼쳤다. 책상 앞에 앉아 펜을 드는 순간, 몸이 뚝 꺾이듯 졸음이 몰려왔다. 피로와 혈당이 동시에 밀려오며 나를 덮쳤다. 머릿속은 흐리멍덩했고, 눈은 감기고, 정신은 자꾸만 멀어졌다.


‘안 되겠다. 15분만 자자.’


알람을 맞추고 눈을 감았다. 또다시, 베개에 머리가 닿자마자 잠이 몰려왔다. 알람 소리에 눈을 떴지만,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힘이 빠진 상태로 다시 15분을 더 잤다. 그렇게 몇 번의 짧은 전투 끝에 결국 한 시간 넘게 자고 나서야 겨우 몸이 조금 가벼워졌다.



다시 책상에 앉았다. 펜을 들었다. 이제야 겨우 생각이란 걸 할 수 있는 상태. 완전히는 아니지만, 간신히 작업할 만큼의 집중력은 되찾은 듯했다. 하지만 그 집중력도 마치 끊어지기 직전의 동아줄처럼 아슬아슬했다. 이 틈을 놓치면 다시 무너질 것 같았다. 나는 재빨리 밀린 일들을 마무리했다.


돌이켜보면, 나는 나의 체력을 너무 맹신하고 있었다. 한계가 어딘지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그냥 괜찮을 거라고 믿고 버텼다. 그런데 이번엔 분명히 알게 됐다. 나는 철인이 아니며, 잠을 이길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없다는 걸.


다행히 당분간은 밤샘 일정이 없지만, 몇 달 뒤면 또다시 반복될지도 모른다. 그때는 어떻게 하면 더 잘 분배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더 깊게 잘 수 있을지, 지금부터라도 머리를 굴려봐야겠다.


세상에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건 건강이고, 그 건강의 기초는 잠이다. 나는 앞으로 잠과 돈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 잠과 성공을 바꾸지도 않을 것이다. 잠은 내 삶의 균형이고, 나를 지키는 마지막 방패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







독립출판사 오버플로우 히든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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