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근거 없는 막연한 불안 습관이 하나 있다. 아침에 컨디션 관리를 잘못하면 하루 종일 피곤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숙면을 충분히 취하지 못했거나, 아침 운동을 무리하게 했거나, 버스에서 편히 앉아가지 못하면 안 될 것 같다는 강박이 있다. 마치 내가 아침에 만든 에너지가 그날 하루의 나를 결정짓는다는 듯, 아침 시간과 집중력을 허비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이 불안은 아마 출근길에서 비롯된 것 같다. 출근길이 유독 힘들었던 날은 어김없이 하루 종일 피로가 따라다녔다. 그래서 요즘은 출근할 때 버스를, 퇴근할 때는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이 시간은 10%가량 단축되지만 더 많이 걸어야 하고, 아침부터 진땀을 빼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 체력과 집중력이 무너진 채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내겐 치명적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강남으로 출근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의 출근길은 걷는 시간만 해도 30분이 훌쩍 넘었고, 지하철에서는 꽉 찬 전동차 틈에 몸을 밀어 넣고 파도처럼 밀려다녀야 했다. 그저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뿐, 그것이 하루의 시작이라고는 느껴지지 않았다.
내가 탔던 7호선은 산 아래를 통과하고 한강을 건너는 노선이었다. 말 그대로 산 넘고 물 건너 출근하는 길이다. 그렇게 회사에 도착하면 몸은 이미 지쳐 있었다. 아직 오전인데도 퇴근하고 싶은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고, 점심시간만을 기다리며 하루를 시작했다.
그 무렵부터였던 것 같다. 아침 출근길은 무조건 편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안에 자리 잡았다. 조금이라도 덜 피곤해야 오전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고 믿게 됐다. 그래서 걷는 시간을 줄이고, 시간은 조금 더 걸리더라도 체력 소모가 적은 코스를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선택한 게 버스다.
나는 버스에서는 눈을 감고 조용히 앉아 있는다. 부족한 잠을 보충하면 좋겠지만, 아침 샤워와 출근 준비로 이미 잠이 다 깨버린 터라 좀처럼 잠들지 못한다. 대신 눈을 감고 조용히 머릿속을 정리하거나 생각을 떠올리며 시간을 보낸다.
출근길 버스 위의 시간은 약 40분. 그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고 싶어 여러 시도를 해봤다. 그림을 그리거나, 글을 쓰거나, 일정을 정리하거나, 책을 읽거나. 하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멀미였다. 나는 멀미가 심한 편이라, 5분만 스마트폰을 응시해도 곧 울렁거리기 시작한다. 이후에는 세상이 빙글빙글 돌고, 내릴 때까지 버텨야 한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오디오북이었다. 눈을 감고 귀로만 듣는 방식이라 괜찮을 줄 알았지만, 그것도 쉽지 않았다. 버스의 엔진 소음, 승객들의 대화 소리, 굴러가는 바퀴 소리가 책 속 문장들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결국 지금은 ASMR을 틀어놓고 눈을 감는 게 나름의 루틴이 되었다.
가끔은 그렇게 앉아 있다 보면 잠이 들기도 하고, 비몽사몽 졸음이 오가는 날도 있다. 멀미는 덜하지만, 이상하게 더 피곤한 느낌이 든다. 회사에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기 전까진 도무지 정신이 또렷해지지 않는다. 이건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다. 어떻게 하면 버스에서의 시간을 좀 더 유익하게 보내면서도, 맑은 정신을 유지할 수 있을까. 답을 알고 싶다.
드라마나 쇼츠, 미니 게임처럼 버스에서 즐길 수 있는 오락거리는 어떨까 싶다가도, 뇌과학적으로는 추천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망설이게 된다. 도파민 둔감증, 집중력 소진 같은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고 한다.
실제로 퇴근길에 너무 피곤해서 책을 읽기 힘든 날에는 숏츠를 보기도 한다. 그러면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흐른다. 몇 개 보고 나면 어느새 하차 알림이 들려온다. 하지만 정신은 몽롱하다. 명확히 설명하긴 어렵지만, 약간은 취한 기분과 유사하다. 그래서 아침에는 되도록 숏츠를 피하려 한다.
나는 이 불안이 나를 성장시킨다고 믿는다. 아침을 효율적으로 보내고 싶은 욕망이 있고, 그것은 강박을 낳았다. 하지만 그 강박이 있기에 나는 더 나은 방법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결국엔 조금씩 나아지려 노력한다. 불안과 강박은 나의 힘이자 동반자다.
오늘보다 내일이 조금 더 선명해지리라 염원하며 부단히 답을 찾아 나아가겠다. 머지않아 답에 이르길 바라본다.
*독립출판사 오버플로우 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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