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 서빙 실력이 늘지 않는 그녀

by 오제이


점심시간 30분 전, 동료들과 메뉴를 정했다. 오늘의 점심은 초계국수. 을지로에 괜찮은 집이 있다는 제보가 들어왔다. 날이 더워지면서 어느새 차가운 음식을 찾는 횟수가 늘었다. 냉면과 모밀은 이제 좀 물린 참이라, 이번엔 새로운 메뉴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초계국수는 한 번도 먹어본 적 없는 음식이었다. 낯선 이름의 음식에 기대 반, 호기심 반의 마음으로 우리는 천천히 을지로를 향해 걸었다.


식당은 회사에서 도보로 10분 정도 떨어진 거리. 막 도착했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간판이었다. 뭔가를 의도한 듯하면서도 미처 완성되지 않은 느낌. 전문가의 손길이 닿지 않은, 어설픈 초심자의 흔적 같은 간판이었다. 간판을 보면 가게의 성향이 대충 그려진다. 개성이 뚜렷한 간판은 음식도 어디 하나 평범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원색으로 치장된 광고지 같은 간판은 대체로 맛도 인스턴트처럼 느껴진다. 그런데 오늘 본 간판은 어느 쪽도 아니었다. 당황스러울 정도로 기이한 인상. 문득 ‘이게 맞나?’ 싶었지만, 여기까지 와서 다시 돌아설 용기는 없었다.



가게는 2층에 있었다. 다른 건물보다 유난히 낮은 계단 높이에 약간의 불편함을 느끼며 출입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건넸지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매장엔 테이블이 10개 남짓 있었고, 여유 공간이 많았지만 일부러 자리를 꽉 채우지 않는 느낌이었다. 직원은 단 한 명. 연세가 지긋해 보이는 아주머니가 종이와 펜을 들고 테이블을 돌며 주문을 받고 있었다. 빈 테이블을 치우는 것도 그녀의 몫이었다.


우리는 입구에서 한참을 서서 기다렸다. 아주머니는 연신 테이블을 치우고, 주문을 받고, 서빙을 하며 종종걸음을 쳤다. 그 와중에도 조용하고 덤덤했다. 식사가 진행 중인 테이블은 두 개 정도. 대부분의 손님은 아직 음식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아주머니는 만들어진 음식을 전부 서빙 한 후에야 우리에게 다가왔다.


“여기 두 자리 치워드릴게요.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행주와 트롤리를 들고 오신 아주머니는 두 테이블을 차례로 정리한 뒤 우리를 앉혔다. 그러나 곧 또 다른 테이블로 향하셨다. 주문까지도 시간이 꽤 걸렸다. 테이블을 정리하다가 음식이 나오면 서빙하러 가고, 계산 요청이 들어오면 또 그쪽으로 향했다. 우리를 잊은 건 아닐까 싶을 즈음, 아주머니는 다시 우리 자리로 돌아왔다.


“초계국수 다섯 그릇이랑 닭곰탕 하나요.”


우리는 주문을 마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이후의 상황은 마치 슬랩스틱 코미디 같았다. 그릇을 깨뜨리고, 테이블을 헷갈리고, 메뉴를 착각하며, 홀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실수는 전부 발생했다. 정신없는 점심시간. 우리는 오늘 음식을 빨리 먹긴 어렵겠다는 걸 직감했다. 괜히 짜증 낼 필요 없이 그냥 느긋하게 카페에 온 셈 치고 이야기나 나누기로 했다.



점심시간이 시작된 지 50분이 지나서야 음식이 나왔다. 다른 회사였다면 이미 포기하고 돌아갔을 시간. 하지만 우리는 점심시간이 넉넉한 회사에 다니고 있었고, 그 덕에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었다. 초계국수는 처음 먹어봤지만 꽤 맛있었다. 오랜 기다림 끝에 받은 음식이라 더 그랬는지도 모른다.


식사를 마친 뒤에도 계산을 하려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아주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라고 말했지만, 그 미안함이 정말로 느껴지지는 않았다. 그냥 머쓱한 기분 정도였다. 우리도 “잘 먹었습니다” 하고 으레 하는 인사말을 건네며 문을 나섰다. 1층으로 내려오는 계단참에서 내가 말했다.


“참 묘한 곳이네.”


그러자 동료들은 실없이 웃었다.



가게의 아주머니는 다시 떠올려도 참 특이했다. 내 짐작으로는 이 식당을 노부부가 함께 운영하는 듯했다. 주방은 아저씨가, 홀은 아주머니가. 근거 없는 추측일 수도 있지만, 그렇게 느껴졌다.


가장 인상 깊었던 건 아주머니의 태도였다. 손님이 기다리든, 불만을 품든 그녀는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늦으면 늦는 대로, 실수하면 실수하는 대로. 마치 세상 유유자적한 강태공처럼 일하고 있었다. 미안하다는 말조차 담담했다. 그저 자기의 서툰 일머리에 대한 머쓱한 기분으로만 보였다.


회사에 돌아와 리뷰를 찾아봤다. 신장개업인가 싶었지만, 첫 리뷰는 작년 4월. 1년이 넘은 가게였다. 1년을 일했는데도 이렇게 미숙할 수가 있을까? 오늘만 아주머니가 나온 걸까? 그런데 리뷰에도 그녀에 대한 이야기가 자주 언급되는 걸 보면, 그렇지도 않은 듯했다.


신기하게도 그날 매장엔 손님이 꽤 있었다. 이런 운영 방식이라면 손님이 끊겼어야 할 것 같은데. 맛이 괜찮아서일까? 청결해서일까? 사람들이 그저 이런 느긋함을 즐기는 걸까? 나는 이 의문에 대한 답을 찾지는 못했지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떠올리게 됐다.


그녀는 실력이 없어서 못 바뀐 게 아니라, 굳이 바뀔 필요를 느끼지 못해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대로도 충분하니까. 크게 돈을 벌진 못해도 먹고살 수는 있으니까. 손님은 줄지 않고, 불만도 크지 않으니 굳이 애써 개선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그 순간, 나는 우리 회사가 떠올랐다. 왜 이토록 오랫동안 변화하지 못했는지. 지금 시스템이 불편하다는 걸 모두 알면서도 왜 누구도 고치려 하지 않는지 알 것 같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굳이 바꾸지 않아도, 지금은 살만하니까.” 회사도, 우리도, 모두 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회사는 엄청난 성장을 꿈꾸지 않는다. 월급을 대폭 올려주진 못하지만 단 한 번도 밀린 적은 없었다. 일과 삶의 균형도 나름대로 괜찮다. 그래서 회사는 '이 정도면 괜찮은 직장이지'라는 위안을 품고 있는 것이다.


그게 회사가 멈춰있는 이유였다. 무모한 도전 대신, 적당한 안정을 택했다. 그것이 사장의 선택이건 회사의 선택이건 간에, 그 안의 조직원으로서 내 책임도 있었다. 나 역시 ‘이만하면 괜찮잖아’라는 생각으로 현실에 안주해 있었다. 위태롭더라도 도전하는 대신, 허기진 안정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래도 지금 그럭저럭 살만하니까.”라는 이유로. 눈앞에 더 큰 세상이 있음에도, 추락이 두려워 한 발짝도 나서지 못했다.



겁쟁이는 안전하게 오래 산다. 하지만 만족하지 못한다. 자신이 포기한 것들이 마음속에 남기 때문이다. 반면, 모험가는 위험을 감수한다. 실패할 수도 있고 모든 걸 잃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삶은 충만하고 자신감이 넘친다. 하고 싶은 일을 해본 사람은, 후회가 없다.


나는 어떤 삶을 살아갈 것인가. 이제 선택해야 한다. 지금의 울타리를 더 높이 쌓고 안정을 꾀할 것인가, 아니면 담을 허물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것인가. “내가 왜? 지금도 괜찮은데.”라는 말은 나를 가두는 주문이다. 이제는 이렇게 말해야 한다.


“왜 안 돼? 나라면, 충분히 해낼 수 있을 것 같은데.”








독립출판사 오버플로우 히든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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