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배탈이 나서 화장실을 세 번이나 들락거렸다. 어젯밤에 먹은 매운 팟타이 탓인 듯하다. 매운 음식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아서 덩달아 매운 걸 종종 맛보게 된다. 그렇게 조금씩 적응하다 보니 이제는 엽떡 보통맛 정도는 눈물 없이 먹을 수 있게 됐다.
과학 시간에 배운 걸 떠올려보면, 매운맛은 사실 맛이 아니라 통증이다. 상처에 고춧가루를 뿌리면 쓰라린 것처럼, 혓바닥 위에서 퍼지는 매운맛도 결국 고통이다. 매운맛을 좋아한다는 건 곧, 고춧가루로 스스로를 괴롭히고 그 고통을 즐긴다는 뜻이니, 생각해 보면 다소 변태적인 취향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매운 음식은 먹는 순간만 괴로운 게 아니라는 게 문제다. 유당불내증이 있는 사람이 복통을 감수하고 우유를 먹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당불내증은 탈이 한 번 나고 나면 당분간은 괜찮지만, 매운 음식은 먹을 때마다 다음 날 배탈과 함께 뒤끝이 찾아온다. 말 그대로 고통은 ‘그때부터’ 시작이다.
매운맛에 점점 적응해간다는 건, 다시 말해 통증에 무감각해진다는 뜻 아닐까. 고통에 익숙해질수록 사람은 더 센 자극을 찾게 된다. 나는 전형적인 ‘맵찔이’였다. 짠맛, 단맛, 심지어 쓴맛에도 거리낌 없었지만, 유독 매운맛만큼은 이겨내지 못했다.
그 이유는 어릴 적부터 김치를 피하며 살아온 탓이 크다. 쉰내 나는 김치를 억지로 먹었다가 입맛을 버린 이후로는 김치라는 단어만 들어도 인상이 찌푸려졌다. 그나마 갓 담근 김치는 가끔 먹었지만, 그때도 고춧가루가 진한 잎보다는 하얗게 속이 드러난 줄기 족을 더 선호했다. 결국 매운맛에 대한 조기 교육은 실패했고, ‘한국인의 맛’이라는 신라면조차도 쉽게 넘기지 못했다.
그랬던 내가 매운맛에 발을 들이게 된 데에는 8할쯤 엽떡의 책임이 있다. 한동안 엽떡이 유행처럼 번지던 시기가 있었다. 회사에서도, 친구들과의 모임에서도 모두가 엽떡을 외쳤다. 맵찔이로서 모임마다 나 혼자 순한 맛을 따로 시켜야 하는 상황은 번번이 미안함을 안겼다. 나도 적어도 ‘덜 매운맛’ 정도는 먹을 줄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 하지 않는가. 나는 엽떡을 먹기 위해 매운맛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도대체 매운맛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이 고통을 이겨낼 수 있을까. 맵지 않은 사람이 실제로 존재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저 고통을 견뎌내는 능력이 뛰어난 것인지 의심이 들었다. 공부하면, 연습하면, 매운맛도 정복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우유를 곁들이거나, 올리브유로 입안을 헹구는 식의 작은 요령들은 분명 효과가 있었다. 하지만 그런 식으로 먹는 건 온전한 ‘음식’이 아니라고 느꼈다. 그러다 문득, 매운맛은 맛이 아닌 ‘통증’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마치 전봇대에 머리를 부딪힌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나는 고통을 꽤 잘 참는 편이다. 어린 시절 수술 중 마취가 풀리는 바람에 극심한 통증을 견뎌야 했고, 그 경험은 내게 아픔을 무시하는 법을 가르쳐 주었다. ‘아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으면 된다. 이 단순한 원칙은 의외로 효과가 좋았다. 이후로 나는 많은 고통을 그렇게 버텼다.
그렇다면 매운맛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나는 떡볶이를 한가득 입에 넣고 씹었다. 고춧가루가 입안 가득 퍼졌다. 뜨겁고 아리고 화끈거렸지만, 생각했다. 어차피 고춧가룬데 죽기야 하겠나. 입에서 불이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실제로 입에 불이 난 건 아니니까. 식은땀이 맺히고 눈물이 찔끔 흘렀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 고통은 통증일 뿐, 통증은 무시하면 그만이었다. 나는 매운맛을 무시했고, 그렇게 그것을 정복해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후유증이 없다는 건 아니다. 여전히 배는 아프고, 뒤는 따갑다. 오리지널 맛 이상을 먹으면 진심으로 정신이 혼미해진다. 그냥 표현이 아니라, 정말로 눈앞이 아득해지고 의식이 흐릿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나는 그걸 생물학적 한계라고 생각한다. 그 선 이상은 넘지 않는 것이 철칙이다.
이제는 웬만한 매운맛은 참을 수 있다. 예전엔 사람들이 매운 음식을 즐기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들 참고 있었던 거였다. 매운맛에 강한 사람이란 건 결국 고통을 잘 참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못 먹는 게 아니라, 못 참는 것이다. 그렇다면 맵부심이란 건 통증을 견뎌낸 자가 갖는, 사실 별거 아닌 자부심이 아니겠는가.
무언가를 모르면 괜히 겁을 먹게 된다. 그래서 도전하고 공부해야 한다. 물론 세상에는 알고 싶지 않은 일도 있고, 알고 싶지 않은 고통도 있다. 하지만 그걸 끝내 외면하고 살면, 무리에서 한 발짝씩 멀어질 수밖에 없다. 인간은 무리로 살아가는 존재다. 혼자 살아가기에는 한계가 있다.
우리는 모두 성공하고 싶어 한다. 돈도 벌고, 인정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무리의 중심으로 들어가야 한다. 바깥에서 성공할 확률보다는 안쪽에서의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니 늘 공부하고, 도전하고, 알아가야 한다. 그 자세만이 우리를 더 큰 세상으로 이끌고,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매운맛처럼, 고통마저도 이해하고 나면 결국 이겨낼 수 있는 법이니까.
- 당신의 언어가 책이 되는 순간
독립출판의 언어로 여러분만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에세이, 시, 인터뷰, 실험적인 포맷도 환영합니다.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 도서출판 <오버플로우 히든>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