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게 좋은 거’ 그거 아닌데요?

by 오제이


일할 때 나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지닌 편이다. 내가 맡은 일이 아니더라도 시간이 허락되면 옆 사람의 바쁜 손을 도와주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느낀다. 어차피 우리는 같은 배를 탄 동료들이니까. 서로 돕고 사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래서 나는 통계도 만지고, 문서도 작성하고, 제안 심사 서류를 정리해 제출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일에 선을 긋기보다는, 다양한 업무를 경험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크다. 나중에 내 회사를 운영하게 될 때, 분명 그 경험들이 든든한 자산이 되어줄 것이라 믿어서다.


하지만 가끔, 내 이런 성향을 ‘이용’당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친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처럼, 몇 번 도와주다 보니 어느새 그 일이 나의 고유 업무처럼 되어버렸다. 마치 맡겨둔 예금 찾듯 아무렇지 않게 요청하는 모습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오제이, OO 건 퇴근 전까지 통계 좀 보내줘요.”

“오제이 님, 이번에 발송할 콘텐츠 이미지 리스트 공유 가능하실까요?”

“오제이가 저번에 프로젝트 문서 작업했었잖아? 그럼 이번에도 하면 되겠네.”


이런 요청이 이어지던 어느 날, 나는 조심스럽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근데 이 일을 왜 자꾸 저에게 주시나요?” 돌아온 대답은 조금 황당했다. “네가 제일 잘 알잖아.” 물론,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건 내가 돕기로 마음먹은 뒤부터 스스로 시간을 들여 익힌 결과였다. 정작 그 일의 담당자는 아직까지도 제대로 모르고 있다는 사실, 아니, 어쩌면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 건 아닐까? 어차피 내가 다 처리해 줄 거라 믿고서.





한 번은 내가 자리를 오래 비운 적이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비로소 스스로 일의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모르는 것을 검색하고, 사람에게 묻고, 실수도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자리로 돌아온 후, 그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문득 스쳤다. 처음부터 내가 너무 많이 도와준 게 아닐까. 많은 일을 경험하고 싶다는 나의 욕심이 오히려 내 발목을 잡은 건 아니었을까. 쓸쓸한 자책이 남았다.


“물고기를 잡아주지 말고 낚시하는 법을 알려줘야 한다.” 오래된 격언이지만, 실무에선 늘 딜레마다. 당장 급한 마감 앞에서, 누군가에게 낚시법을 가르칠 여유는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게다가 나도 아직 초심자인데 말이다.


오늘 우연히 임원과 식사를 함께했다. 그 역시도 비슷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오 과장, 어떻게 하면 직원들이 자기 일에 주인의식을 가질 수 있을까요?” 그의 이마에는 깊은 주름이 앉아 있었다. 회사 전체에 대한 애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맡은 프로젝트만큼은 자기 일처럼 책임졌으면 한다는 바람이었다. 그 말을 들으며 문득 서늘해졌다. 주인의식을 바람으로 가져야만 하는 현실이 애처로웠다.



“대체 이 문제는 누구의 잘못이고, 어떻게 바로잡아야 할까요?” 만약 누군가 나에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소통’을 정답으로 꼽고 싶다. 물론 쉬운 문제는 아니지만, 그래도 해답에 가장 가까운 건 그것이 아닐까. 리더부터 신입사원까지, 왜 이 일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 같은 방향으로 가는지를 서로 솔직하게 나눌 수 있다면, 그게 엉킨 실타래를 푸는 출발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사실 비슷한 이야기를 예전에도 한 임원에게 꺼낸 적이 있다. 그때 돌아온 말은 이렇다.


“오 과장, 나는 더는 못하겠어. 내가 아무리 말해도 들어먹질 않으니 말이야.”


그 순간 나는 이 문제의 근본을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결국 누군가의 ‘포기’에서, 그리고 그 포기를 조용히 받아들이는 일상 속에서, 우리는 조금씩 말없이 휘청거리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독립출판사 오버플로우 히든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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