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명동을 둘러보고 왔다. 내가 명동에서 구입할 게 있다고 하자, 아내는 단숨에 달려왔다. 평소 물건을 잘 사지 않는 내가 갖고 싶은 게 생겼다는 말에,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나 보다. 아내는 오후 반차를 내고 미리 출발했고, 나는 퇴근하자마자 명동으로 뛰었다. 회사에서 명동까지는 5분 거리. 다행히 날이 선선해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착했다.
저녁 시간대의 명동은 낯설었다. 평소 오전이나 점심에 오던 풍경과는 전혀 달랐다. 한국 최고의 관광지답게, 이국적인 언어와 얼굴이 거리 곳곳에 흩어져 있었다. 명동 중심을 가로지르는 큰 길에는 노점들이 가지런히 줄지어 있었고, 메뉴판에는 온통 외래어가 적혀 있었다. 그 덕에 아내와 나는 마치 해외여행을 온 듯한 기분에 잠시 들떴다. 태국 치앙마이의 선데이마켓이나 일본의 지역 축제가 떠올랐고, 수시로 들려오는 외국어 발음과 향수 냄새는 우리의 감각을 자극했다. 명동 한복판인데도, 잠깐 한국을 벗어난 듯한 착각마저 들었다.
우리는 우선 밥부터 먹기로 했다. 입맛은 없었지만, 뭔가를 넣어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메뉴가 오르내렸지만, 딱히 당기는 건 없었다. 그렇게 네이버 지도를 뒤적이다 보니 어느덧 6시를 훌쩍 넘겼고, 퇴근 러시가 몰려올 시간이었다. 나는 두 군데를 추려 아내에게 선택권을 넘겼다. 열 개 중에 하나를 고르는 건 어렵지만, 두 개 중 하나는 쉬울 테니까. 최종 후보는 남산 돈까스와 딤섬 레스토랑. 아내는 둘 다 괜찮다고 했다. 익숙한 메뉴라 더 고르기 어려웠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늘 새로운 곳, 새로운 맛을 선호한다. 처음 가보는 곳이라면 더 좋다. 그런 기준에서 보자면 딤섬 쪽이 좀 더 낯설었다. 우리가 들어선 곳은 딘타이펑. 대만에서 온 딤섬 전문점이라 했다. 입구에서부터 활기가 느껴졌다. 오픈 키친에서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과, 밝고 친절한 안내. 그들의 에너지에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우리는 딤섬 샘플러와 중국식 냉면을 주문했다. 모든 딤섬을 하나씩 맛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우리의 위장은 그럴 여유가 없었다. 게다가 잠시 뒤 명동 거리의 길거리 음식도 챙겨야 했기에, 배 속 공간을 조금은 남겨두기로 했다. 주문을 마치고 아내와 오늘 하루에 대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음식이 나왔다. 종업원은 활기찬 목소리로 요리를 하나하나 설명해 줬고, 그 덕에 식사 내내 기분이 좋았다. 맛도, 분위기도, 응대도 흠잡을 데 없는 근사한 한 끼였다.
식사를 마친 우리는 본래의 목적지인 매장으로 향했다. 지난달 점심 산책 중 눈여겨봤던 선글라스를 사기 위해서였다. 3층 건물을 통째로 쓰는 대형 매장이었고, 명품관처럼 안경을 띄엄띄엄 전시해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덕분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여유 있게 착용해 볼 수 있었다.
결국 아내가 골라준 모델로 구매했다. 사실 내가 마음에 두었던 제품도 있었지만, 아내는 그보다 자신이 고른 게 더 잘 어울린다고 했다. 듣는 순간 마음이 기울었다. 기능은 둘 다 충분했기에, 날 가장 자주 보는 아내가 좋다고 한 쪽이 더 맞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도 부르고, 물건도 샀으니 이제는 자유 시간. 어디부터 가볼까 고민하던 찰나, 매장 문을 나서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작은 구슬처럼 무겁고 둔탁한 빗방울이었다. 운치 있는 명동의 밤거리였지만, 인파가 몰린 거리를 비 맞으며 걷기엔 다소 부담스러웠다. 게다가 조금 전 먹은 딤섬과 냉면이 배 속에서 불고 있었고, 길거리 음식에 대한 미련도 자연스레 사라졌다.
우리는 그간 가보고 싶었던 매장과 카페를 구경했다. 우리 동네에도 있는 브랜드였지만, 명동점은 확실히 규모도 크고 멋졌다. 최근 리모델링을 했다고 하는데, 꽤 그럴싸했다. 이어서 직장 동료 할라피뇨 님에게 줄 생일 선물을 골라보기로 했다. 노란색이 추구미라는 그녀를 위해 이것저것 찾아봤다. 우산부터 양말, 키보드, 미니 선풍기까지 마음이 확 끌리는 건 없었다. 결국 빈손으로 매장을 나왔다.
선물 사냥에는 실패했지만, 간식 사냥에는 성공했다. 집으로 가는 길목에 백화점 지하 식품관에 들렀다. 우리에겐 방앗간 같은 곳. 다양한 수입 식료품들을 구경하며 우리는 또 한참을 보냈다. 패키지 디자인이 예뻐 눈이 즐거웠고, 시식코너에서 맛본 빵이 너무 맛있어 몇 개 집어 들었다. 부산에서 유명한 베이커리라던데, 주말 아침이 기대될 만큼 기분 좋은 구매였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귀가하려 버스를 기다렸다. 이상하게도 한참이 지나도 오질 않았다. 언제 줄어드나 싶던 정류장 전광판 숫자는 계속 2 정거장에서 멈춰 있었다. 알고 보니 숭례문부터 을지로입구까지 대규모 시위가 벌어졌단다. 경찰들이 시민과 시위대 모두를 보호하려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더니, 오늘이 딱 그랬다.
*독립출판사 오버플로우 히든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블로그를 방문해 더 많은 아티클을 만나보세요.
https://blog.naver.com/abovethesurfa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