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밤마다 업무 일지를 쓴다. 내일 할 일을 계획하고, 오늘 한 일을 돌아보는 노트다. 일종의 금전출납부 같달까. 하루를 반추하다 보면 내가 잘한 점과 부족했던 점이 떠오르고, 그 덕에 하루하루를 조금 더 선명하게 살아갈 수 있다.
처음 업무 일지를 쓰게 된 건, 신입 멤버들에게 이룸 다이어리(목표 달성형 다이어리)를 선물하면서부터였다. 아이세이 님이나 허신사 님이 입사했을 때, 그들의 미래를 응원하며 다이어리를 하나씩 건넸다. 단지 예쁜 문구류 하나를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었다. 기록과 계획이 얼마나 사람을 바꾸는지를 전하고 싶었다. 그때 그들 것과 함께 내 것도 하나 샀는데, 의외로 그게 참 좋았다. 나의 하루가 더 명료해졌고, 보다 효율적으로 흘러갔다. 그 이후로 나는 매일 밤 노트에 하루를 기록하게 됐다.
아이세이 님이 입사한 지도 벌써 1년이 넘었다. 그러니 나 역시 1년 넘게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일지를 써온 셈이다. 그렇게 시간이 쌓이자 노하우도 따라왔다. 내게 맞는 방식으로 기록을 정리하고, 결국 나만의 템플릿이 생겼다. 필요에 따라 형식을 조율하고, 내 리듬에 맞춰 다듬어간 결과였다.
그렇게 어젯밤도 일지를 쓰다 문득 스치는 생각이 있었다. 나는 혹시, 너무 많은 시간을 불필요한 일에 쓰고 있는 게 아닐까? 하루의 구석을 찬찬히 들여다보니, '가짜 바쁨'이 생각보다 깊게 침투해 있었다. 당장 눈앞의 결과가 없더라도 ‘해두면 좋을 것 같은’ 일들을 미련하게도 반복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것보단 이거라도 하는 게 낫지’란 마음으로 시작했던 일들이, 어느새 본업인 양 내 시간을 점령하고 있었다.
이걸 알아챘을 때, 마음속에 조용한 파문이 일었다. 이 상태로 두어도 괜찮을까? 아니면 과감히 도려내야 할까? 고민이 시작됐다. 어쨌든 나쁜 일은 아니잖아. 그래도 긍정적인데, 굳이 없앨 필요가 있을까? 그런 유혹이 들었다. 하지만 결국, 그 시간에 진짜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다면 지금 이 방식은 그저 ‘가짜 바쁨’을 위안 삼는 일일뿐이었다. 진짜 중요한 일보다 쉽고 덜 아프기 때문에 선택했던, 일종의 도피처였다.
그래서 결심했다. 가짜 바쁨을 도려내자. 문제는, 그 자리에 무엇을 채워 넣을 것인가였다. 내 안엔 아직 뚜렷한 그림이 없었다. 해야 할 일은 알 것 같으면서도 명확하지 않았고, 그 불분명함은 내게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정확한 미래 지도를 그려야 하는데, 그리려면 실패도 견뎌야 하고 고통도 감수해야 한다. 그 피로를 피하고 싶어서 나는 쉬운 일로 도망쳤던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당장 눈에 보이는 결과가 없고, 설령 실패하더라도 결국 나는 내 일을 해야 한다. 씨를 뿌리지 않으면 열매도 없다. 벌레가 먹을까 봐 파종조차 하지 않는 건, 농사를 포기하는 것과 같다. 논과 밭은 놀리면 금세 메마른다. 내 몸과 시간이 바로 그 논과 밭이다. 지금 뿌리지 않으면, 훗날 농사지을 땅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그러니 지금, 뿌려야 한다. 실패하더라도, 씨를 뿌리는 사람으로 남아야 한다.
내가 아끼는 책 《무기가 되는 스토리》에는 이런 말이 있다. “헷갈리면 이미 진 것이다.” 고객은 어떤 이득이 있는지 명확히 알아야 하고, 회사는 모든 직원이 자기 일을 왜 하는지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 경영자는 미션을 계속해서 상기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명확한 목표와 방향 없이 움직이면, 그건 에너지 낭비라는 생각이 나를 찔렀다.
그 문장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내가 매일 업무 일지를 쓰듯, 만약 내 인생이 하나의 회사라면, 나는 과연 그 회사를 잘 운영하고 있는 걸까? 나는 경영자로서 내 머리와 몸이 헷갈리지 않도록 잘 이끌고 있는가?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 조금 헷갈리고 있다. 목표는 흐릿하고 미래 지도는 아직 비어 있다. 방황하고 있고, 헛스윙을 반복하는 중일 지도 모른다. 매번 깨닫고 다시 마음을 다잡지만, 늘 중간에 포기한다. 왜냐고? 힘들고 불안하니까. 괜히 고생만 하다 실패할 것 같고, 의미 없는 노력이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 불안을 이기려면 단단한 힘이 필요하다. 그 힘은 어디서 오는 걸까. 미래에 대한 확신? 아니면 지금의 체력과 정신력? 올해 초, 내가 세운 목표를 다시 꺼내 본다. ‘인생 최고의 체력을 만들 것.’ 아, 그래. 지금 내가 놓치고 있는 건 바로 이거다.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내 몸과 마음의 체력을 단단히 세우는 것, 그리고 아직 그려지지 않은 미래 지도를 그려나가는 것. 두려워하지 말고, 후회 없이, 의심 없이.
지금은 씨를 뿌릴 시간이다.
*독립출판사 오버플로우 히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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