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을 세 개째 잃어버린 건에 대하여

by 오제이

우산을 또 잃어버렸다. 애착이 있던 우산이라 유독 마음이 쓰인다. 올 해만 벌써 세 번째다.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처음에는 버스 안에 두고 내렸고, 두 번째는 버스정류장에 놓고 떠났다. 이번에는 자전거 바구니에 올려둔 채로 자리를 떴다. 요즘 왜 이리 깜빡깜빡하는 걸까. 그렇게 나의 마지막 3단 우산이 사라졌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씁쓸한 구석이 있다. 첫 번째는 어쩔 수 없었다 쳐도, 나머지 두 번은 단지 잠시 두고 온 것뿐이었다. 그 짧은 사이 누군가가 가져가 버렸다. 잃어버린 내 잘못일까? 가져간 사람의 잘못일까? 물론, 내가 원인을 제공하긴 했지만, 남의 물건을 그렇게 쉽게 가져가도 되는 걸까. 이건 양심의 문제 아닌가 싶다.


참 이상하다.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같은 건 좀처럼 가져가지 않으면서, 우산이나 자전거는 너무도 쉽게 가져간다. 스마트폰을 주우면 주인을 찾아줘야겠다는 생각이 먼저 드는데, 우산을 보면 ‘마침 잘 됐다’고 여기는 모양이다. 마치 길가에 떨어진 열매라도 되는 양. 나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얼마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 버스에 타 좌석에 앉으려 보니 창문과 좌석 사이에 우산이 끼워져 있었다. 누가 봐도 놓고 내린 물건. 마침 소나기가 오고 있었지만 나는 한순간도 그걸 가져가겠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대로 둬도 주인을 찾을 일은 희박해 보였지만, 그건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었다.


상상해 보았다. 혹시라도 그 우산의 주인이 집에 돌아가는 길에 문득 생각나 버스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면? 그리고 그 우산이 아직 보관 중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얼마나 기뻤을까. 그것만으로도 하루치 행운이 몰려온 것처럼 느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그것을 가져갔다면? 그 기쁨과 안도감은, 내 손에 의해 사라지는 셈이다. 이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겠지만, 누군가에게 있을지 모를 작고 소중한 행운을 지켜주는 일이었다.



양심은 결국, 이런 사소한 곳에서 드러나는 법이다. 큰 범죄를 저지르지 않는 건 어렵지 않다. 그건 양심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이다. 들킬까 봐, 벌을 받을까 봐 피하는 것이다. 반면 작은 잘못은 다르다. 그건 무심코, 생각 없이, 때로는 그럴듯한 이유를 붙이며 저지르기 쉽다.


그러니 기억하자. 내가 지키지 못한 양심이, 누군가의 기쁨과 안도, 행운의 가능성을 앗아갈 수 있다는 사실을. 사소한 선택이 모여 나라는 사람을 만든다. 나는 작은 일에도 떳떳한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야 언젠가 큰일 앞에서도 당당할 수 있으니까.







독립출판사 오버플로우 히든

살면서 경험한 다양한 이야기를 기록하고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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