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유난히 쓴 날

by 오제이


한 달에 커피를 몇 잔이나 마시는 걸까. 나는 세어본 적은 없지만 어림잡아 계산해 보면 한 달에 90잔쯤 마시는 것 같다. 하루에 최소 3잔은 마시고, 미팅이 있는 날은 더 마시게 되니 바쁜 시기엔 100잔도 넘길 때가 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카페를 자주 가게 된다. 지난 몇 년 동안 회사 근처 카페란 카페는 거의 다 가봤다. 그중 가장 많이 간 곳을 꼽자면 역시 우리 회사와 같은 건물에 입점한 카페다. 종업원과는 반갑게 인사할 정도로 익숙하고, 오래된 직원은 내 이름을 기억할 만큼 자주 들른 곳이다.



생각해 보면 정말 카페가 많다. 우리 회사 건물 안에만 해도 5개의 카페가 입점해 있고, 반경 100미터 안에는 20곳이 훌쩍 넘는다. 프랜차이즈도 많고, 개인 카페도 그만큼 많다.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카페 간판이 눈에 들어온다.


그중에는 한 번 가보고 다시는 안 가게 되는 곳도 있고, 입구에서부터 발길이 꺾이는 곳도 있으며, 좋긴 한데 내 돈 주고는 사 먹고 싶지 않은 곳도 있다. 방문 경험이 천차만별이다. 사람들은 어떤 기준으로 카페를 고를까. 나는 처음 가는 곳은 청결과 매장 분위기, 가격대를 본다. 재방문 여부는 맛과 서비스, 그리고 다시 한번 청결이 좌우한다. 결국 가장 중요한 건 청결이다.


청결 다음으로 중요한 건 의외로 맛보다 서비스다. 맛이 처참하지 않은 이상, 서비스가 좋으면 다시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반면 맛이 훌륭해도 서비스가 형편없으면 다시는 가지 않는다. 고개만 돌리면 수많은 대안이 있는데 굳이 그런 곳을 택할 이유는 없다.




어제 점심에도 그런 일이 있었다. 1시 무렵, 점심 러시가 끝나고 종로 거리에 인파가 한풀 꺾였을 때였다. 산책 삼아 밖으로 나섰는데, 날이 더워도 너무 더웠다. 시원한 음료로 목을 축이고 싶던 찰나, 반가운 카페가 눈에 띄었다. 가성비가 좋아 직원들과 자주 찾던 곳이었다. 최근 몇 달은 뜸했지만 수십 번은 들른 곳이라 내겐 익숙한 공간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니 예전 직원이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문득 포인트가 얼마나 쌓였는지 궁금해졌다. 두어 번은 무료 커피로 교환한 기억이 있고, 그 이후에도 여러 번 들렀으니 꽤 남아 있을 것 같았다.


“안녕하세요. 혹시 제 포인트 얼마 남았는지 확인 가능할까요?”

그곳은 포스기에서만 포인트를 조회할 수 있어서 당연히 직원에게 물었다. 그런데 돌아온 대답은 의외였다.


“키오스크 교체하고 안 옮기셨어요? 전화번호 불러보세요.”

말투에는 짜증이 배어 있었다. 내가 뭘 잘못했는지 몰랐지만, 일단 조회를 위해 번호를 불렀다.


“포인트 10점 있네요. 옮겨드렸어요.”

나는 고맙다고 말하고 키오스크로 가서 주문을 마쳤다. 그 시간에 손님은 나 혼자였다. 내가 무슨 실수를 했을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궁금하지 않았다. 직원이 왜 그런 말투였는지, 뭐가 문제였는지 알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았다. 그 순간 내 마음에 가장 먼저 스친 생각은 ‘한 잔만 더 마시고 다시는 오지 말아야겠다’는 것이었다. (참고로 이곳은 포인트 12점에 무료 음료 1잔을 제공한다.)


이런 생각이 든 건, 고개만 돌리면 카페가 있으니 굳이 감정 소모를 할 필요가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유를 묻고, 따지고 들며 서로 에너지를 낭비할 이유가 없었다. 아니,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가 들지 않았다. 마치 바지락칼국수를 먹다 열리지 않은 조개는 건너뛰고 다음 조개를 여는 것처럼, 너무나 자연스러운 반응이었다.



그런데 나를 스스로 소름 돋게 만든 건, 그런 내가 낯설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진짜 무서웠던 건, 나 역시 누군가에게 그렇게 걸러질 수 있는 사람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대체 가능한 사람인가? 마음속으로는 “아니”라고 말하고 싶지만, 내 깊은 내면 어딘가에서 “어쩌면 그럴지도?” 하는 목소리가 킥킥대며 웃는 게 느껴졌다.



사실 내가 무서운 느낌이 들었던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내가 서비스가 별로인 카페를 거른 것처럼, 누군가도 나라는 사람을 거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나는 생각해 봤다. 나는 천지삐깔 깔린 사람, 즉 대체 가능한 사람인가? 마음으로는 분명 그렇지 않다고 말하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렇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이 킥킥대며 웃고 있는 게 느껴졌다.


더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대체되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저 아무나로 치환될 수 있는, 갈아 끼워지는 사람이 되긴 싫다.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존재, 한 번 보고 지나칠 수 없는 사람, 내 앞에 설 때는 조금 더 신경 쓰고 싶은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내 인생을 그렇게 흘려보내진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단단히 되뇌었다. 어제 마신 커피는 유난히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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